스스로를 아티스트, 예술가라고 생각하던 독재자가 있었다. 전 세계 몇 안 되는 세습왕조의 후계자였던 독재자는 아버지가 가진 힘 덕분에 무탈하게 권좌에 오를 수 있었지만, 아버지에 비해 한참 부족한 카리스마와 권력 승계 정당성을 예술중흥을 통한 체제 선전으로 메우고 싶었다. 실로 엄청난 영화광이었던 독재자는 자국의 영화 수준을 끌어올리고자, 평소 자기가 마음에 들어 하던 유명 감독과 여배우의 ‘납치’를 지시한다.

영화에서나 일어날 법한 황당하고 끔찍한 이야기이지만, 실제 있었던 사건이다. 유명 감독, 배우의 납치를 지시한 독재자는 고 김정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국방위원장이고, 그에 의해 영문도 모른 채 북한으로 끌러간 인물들은 고 신상옥 감독과 배우 최은희였다. 당시 대한민국에는 수많은 유명 감독들과 배우들이 있었지만, 김정일이 선택한 감독과 배우는 신상옥과 최은희였다. 김정일이 많고 많은 남한의 영화계 인사들 가운데 신상옥과 최은희를 택한 정확한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이들이 납치된 이후 한동안 ‘신상옥 자진월북설’이 신빙성을 얻을 정도로 당시 신 감독의 사정이 좋지 않았다는 것이 영화계의 중론이다.

영롸 <연인과 독재자> 스틸 이미지

우여곡절 끝에 북한으로 납치된 신상옥과 최은희는 김정은의 전폭적인 지지와 감시 하에 수십 편의 영화를 만들었다. 명실상부 대한민국 최고의 영화감독이었지만, 1974년 정부로부터 영화 예고편을 검열 받지 않았다는 이유로 4년 동안 영화를 만들지 못했던 신상옥에게, 아이러니하게도 북한은 그의 못다 피운 예술혼을 불태울 수 있는 새로운 기회의 땅이기도 했다. 그곳에서 자기보다 먼저 북한에 납치된 전 부인 최은희와 해후한 신상옥은 김정일의 요구대로 영화를 만들며 북한 탈출 기회만을 엿보고 있던 차, 결국 1986년 꿈에도 그리던 탈출에 성공한다.

대한민국 사람들에게는 잊혀질 만하면 회자되는 세기의 가십거리가, 영국에 사는 두 다큐멘터리 감독들에게는 놀랍고도 충격적으로 다가왔는가 보다. 전대미문 납치사건의 영화화를 원치 않았던 당사자 최은희와 가족들을 2년 동안 끈질기게 설득한 끝에, <연인과 독재자> 이름으로 세상에 나온 다큐멘터리 영화는 예상대로 전 세계 영화제를 뜨겁게 달구었다. 미스터리하면서 불가사의한 나라로 남아있는 북한을 전면으로 다루기도 했지만, 자국의 영화 산업 발전을 위해 휴전 중인 국가의 영화감독, 여배우를 납치한 사건 자체가 영화다.

영롸 <연인과 독재자> 스틸 이미지

신상옥과 최은희가 각각 북한에 납치를 당하고, 몇 년 뒤 목숨 걸고 탈출한 사건만 나열해도 영화가 구현할 수 있는 상상력을 능가하지만, <연인과 독재자>는 신상옥, 최은희 납치와 탈출을 둘러싼 가십성 폭로에 매달리지 않는다. 한때 부부 사이였고 납치 이후 재회한 신상옥과 최은희의 사이를 상징하는 연인, 그리고 김정일을 지칭하는 독재자라는 영화 타이틀처럼, 이 영화가 중점으로 다루고자 하는 이야기는 영화라는 예술을 통해 정치적 입지를 굳건히 다지고 싶은 독재자와, 그의 강권에 못 이겨 어쩔 수 없이 작품을 만들어야하는 예술가 부부의 상충된 이해관계다.

영화 제작에 직접 뛰어들 정도로 영화에 관심이 많았던 김정일은, 북한에서도 대한민국이 제작한 영화보다 뛰어나고 전 세계 영화계를 휩쓰는 놀라운 영화를 만들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 그리고 대한민국 영화계에서도 가장 독보적인 스펙터클을 보여주었던 신상옥 감독과 대한민국 최고의 여배우 최은희만 있으면, 최고의 영화를 만들 수 있다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게다가 당시 대한민국 영화계도 유신체제에 이어 전두환 정권의 표현의 자유 억압 정책으로 오랜 침체기를 겪고 있었기 때문에, 적어도 대한민국보다는 훌륭한 영화를 만들 수 있겠다는 확신이 있었다.

영롸 <연인과 독재자> 스틸 이미지

그래서 김정일은 신상옥이 만드는 영화만큼은 어떠한 간섭도 하지 않았고 동양 최대의 스튜디오 건립을 약속하는 등 파격적인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대한민국에서 영화를 만들 때는, 언제나 제작비에 쫓기던 신상옥 감독의 귀를 솔깃하게 하는 달콤한 제안이었다. 하지만 영화 한 편을 만드는 데 천문학적 제작비가 지원된다고 한들, 김정일이 밥 먹으라면 무조건 밥을 먹어야 하고 그가 시키는 대로 옷을 입어야 하고, 그의 눈 밖에 나면 생명의 위협까지 느끼는 억압적인 환경에서는 아무리 머리를 쥐어짜도 좋은 영화가 나올 수 없는 법이다. 김정일의 꼭두각시놀음에 지친 두 예술가는 언제나 탈출만을 생각했고, 기어이 김정일의 손아귀에서 벗어나는 데 성공을 거둔다.

신상옥과 최은희를 통해 체제의 우월성을 강조하고 싶었던 김정일은 영화 촬영 혹은 국제영화제 참가 차 해외로 나가는 신상옥에게, 북한은 남한과 달리 창작의 자유가 보장되어 있고 그래서 원하는 영화를 마음껏 만들 수 있다는 말을 하라고 지시한 바 있다. 실제 대한민국에서는 유신체제의 엄격한 영화 검열 제도로 자신이 가진 역량을 발휘할 수 없었던 비운의 천재 감독은, 남한보다 더 억압된 체제 하에서 영화를 실컷 만들 수 있었고 그에게만큼은 특별한 제약이 가해지지 않았다고 한다. 그래서 당시 해외에서 신상옥을 만났던 지인들은 영화를 원없이 찍을 수 있다며 해맑게 웃던 그의 표정을 여전히 잊지 못한다고 한다.

영롸 <연인과 독재자> 포스터

그러나 북한은 1994년 김일성 주석 사망 당시 그의 죽음을 진심으로 슬퍼하는 것처럼 보이지 않았던 주민들을 엄벌에 처할 정도로, 타인에게 보이는 감정조차 연기해야 하는 공포 독재국가다. 그런 곳에서 아무리 돈 걱정 없이 영화를 찍는다고 한들 진심으로 행복했을까. 뛰어난 예술적 재능을 가졌지만, 억압의 시대에 자신들이 가진 예술혼을 마음껏 발휘하지 못하고 분단국가의 희생양으로 파란만장한 인생을 살아야했던 신상옥과 최은희. 그리고 북한의 영화 발전을 위해 많은 돈과 노력을 기울었지만 영원히 이룰 수 없었던 김정일의 이야기를 통해 진정한 예술은 표현의 자유가 보장된 사회 분위기에서 나온다는 만고불변의 진리를 확인할 수 있었던 다큐멘터리 영화다. 9월 22일 개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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