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발전국민위원회(미디어위)가 출범 이후 여러차례 고비를 넘겨왔으나, 지금 상황이 가장 위험해 보인다. 미디어위가 ‘여론조사 실시’라는 암초에 걸리면서 가지도 오지도 못하는 국면에 봉착했다.

지난해 12월에 한나라당이 기습적으로 언론관계법을 제출하고, 일반국민은 물론이고 소속당 의원 심지어 공동발의한 의원들조차 그 내용을 모르는 채 국회 통과를 기도, 그것도 2차례의 입법전쟁을 도발하다 실패한 결과로 만들어진 것이 ‘충분한 소통’을 위한 ‘여론수렴의 절차’를 전제로 출범한 미디어위이다.

여론수렴의 절차라는 전제로 현재 4회의 서울공청회와 4회의 지역공청회가 진행중에 있고, 지난 금요일 미디어위 전체회의에서 지역공청회 4회가 부족하다는 민주당 추천위원들의 주장에 그 횟수를 ‘충분히 더 확보’하기로 합의했다. 이 와중에 여론수렴의 절차가 ‘공청회밖에 없는가’는 문제가 제기되면서 여론조사의 필요성을 민주당측 추천위원들이 강하게 주장하고 있고, 한나라당 추천위원 일부가 동의하고 있다. 하지만 한나라당 추천위원 간사들이 미적거리며 결국 정쟁으로 비화되고 있는 양상이다.

지금 미디어발전위 홈페이지에는 쟁점별 주제별 의견을 수렴하는 최소한의 장치조차 확보되어 있지 않다. 또한 지역공청회 확대마저 한나라당 추천위원들의 반대로 지지부진하다가 겨우 지난 금요일에야 그 횟수와 지역을 확장하기로 합의했다. 이것 외에 여론수렴의 절차라는 전제에 따른 실행계획이 전무하다.

여론수렴의 절차 중 핵심 중 핵심은 여론조사다. 단순히 한나라당의 법안에 대해서 찬성하는가 반대하는가의 수준낮은 질문이 아니라 심층인터뷰 등 다양한 여론조사 기법을 동원해 국민들의 의견을 수렴할 수 있다. 언론학자들, 신문과 방송에 종사하는 현업인들, 일반국민들이 조사 대상이고, 이들의 생각과 판단이 국회가 판단하는 데 주요 근거가 되어야 한다. 그런데 한나라당 추천위원들 몇몇은 이에 대해서 심정적으로 공개적으로 동의하고 있는데, 한나라당 문방위 위원 특히 나경원 의원이 병적으로 여론조사를 반대하고 있다.

▲ 나경원 한나라당 의원 ⓒ여의도통신
문방위 한나라당 간사인 나경원 의원은 지난 12일 KBS라디오 ‘안녕하십니까 홍지명입니다’에 출연해 “법안에 국민의 의견을 담아야 한다는 데는 동의하지만 반드시 여론조사라는 방법으로 해야 한다는 데는 동의하지 않는다…여론조사는 맹점이나 허구성이 있기 때문에 여론수렴 방법으로 바람직하지 않다”며 여론조사에 반대 의견을 분명히했다. 나 의원은 이어 “미디어위의 활동이 끝나면 표결처리 한다고 합의했다… 여론수렴의 절차라는 논리로 여론조사가 없으면 물리력으로 저지한다는 것은 합의정신을 전면 부정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국민의 의견을 담는 데는 동의, 하지만 맹점이나 허구성이 있기 때문에 여론조사는 반대’가 나경원 의원의 주장이다. 여론조사의 맹점이나 허구성이 있어 문제가 되는 것이 아니라 나경원 의원의 주장에 맹정이나 허구성이 무수해 문제가 되는 발언이다.

여론조사로 한국 사회에서 가장 큰 혜택을 입은 사람이 누굴까? 그는 다름 아닌 이명박 대통령이다. 한나라당내 경선에서 대통령 후보로 나선 이명박 후보와 박근혜 후보가 치열한 경쟁을 벌였고, 결국 이명박 후보가 한나라당 대통령 후보로 당선되었다. 그 때 이명박 후보가 승리한 결정적인 원인은 근소한 차이로 여론조사에서 이겼기 때문이다. 한나라당 당원 대상 투표와 일반국민 투표에서는 박근혜 후보가 이겼지만 여론조사에서 패함으로써 한나라당의 후보경선에서 결과적으로 패하고 만다.

맹점과 허구성이 없는 사회과학은 존재하지 않는다. 사회현실은 더욱 더. 하지만 그 맹점과 허구성보다 장점과 현실성이 상대적으로 높기 때문에 사회과학적 방법론을 동원하게 되고, 그 중 가장 유용하게 이용되는 방법론이 여론조사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경원 의원은 이런 여론조사에 대해서 맹점과 허구성이라는, 개념마저 아주 모호한 용어를 동원해서 여론조사를 회피하려고 한다.

솔직하지 못한 나경원 의원의 평소 행태를 또 한 번 과시하는 것이다. 나경원 의원이 보다 솔직하게 정치를 하고자했다면, ‘1차 2차 입법전쟁 와중에서 여러 언론사들이 여론조사를 한 결과가 재현될까 두렵다, 그래서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말해야 한다.

당시 한나라당 언론관계법을 반대하는 여론이 적게는 57%에서 많게는 67%까지 나왔고, 찬성하는 여론은 절반 근처에도 오지 못했다. 그래서 나경원 의원은 여론조사, 자당의 대통령 후보 당내 경선에서 결정적인 역할을 했던 바로 그 여론조사를 ‘맹점과 허구성’이라는 허약한 논리로 반대 분위기를 조성하고 있다. 아니 한나라당 추천 위원들에 대한 공개적인 ‘명령’을 통해 ‘여론조사 실행 거부’라는 압박을 가하고 있다.

이런 나경원 의원의 허무맹랑한 논리와 억지춘향격 떼쓰기는 민주당 추천위원들뿐만 아니라 민주당 문광위 위원들까지 자극하면서, 합리적인 논쟁 영역에서 합리적인 합의의 대상이었던 여론조사가 ‘정쟁영역’으로 비화되고 있다.

12일 국회 문방위 민주당측 간사인 전병헌 의원은 “미디어발전국민위에서 이 달 중 여론조사가 이뤄지지 않을 경우 6월 국회 개원 직후 상임위 차원에서 여론조사를 추진할 것”이라며, 나경원 의원의 여론조사 거부입장을 맹렬히 비판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나경원 의원의 정쟁적 계산법에 따른, 미디어위에 대한 모욕적인 개입으로 인해, 전병헌 의원이 어쩔 수 없이 발언해야 하는, 그러나 결국 국민들의 눈에는 ‘정쟁적 분위기’로 전락하는 상황을 연출하고 있다. 주범은 나경원 의원이다.

나경원 의원에게 분명히 경고한다. 말 같지 않은 주장과 논리로 미디어위 한나라당 추천위원들을 자극하고, 미디어위 자체의 합리적인 논의를 방해하면, 그 모든 책임을 져야 할 것이다.

여론조사라는 여론수렴의 절차를 밟지 않는다면, 미디어위가 존재할 이유가 극히 적어지고, 이는 곧 존폐의 문제를 즉각적으로 고려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을 초래한다. 나경원 의원의 여론조사 반대 발언은 미디어위 존폐에 대한 논의로 비약할 수밖에 없는 상황을 초래하고 있고, 그 결과의 책임은 나경원 의원이 져야 할 것이다.

나경원 의원이 좀 더 솔직하고 정직한 정치를 함으로써 국민들의 사랑을 받기를 기대했으나… 안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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