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저는 ‘젊은층의 진보정당 선호 현상’에 대한 기사를 썼습니다. 기사의 모티브는 일본사례였습니다. 1920년대 프롤레타리아 문학의 대표작인 <게공선>이 이례적으로 80여년 만에 서점가 베스트셀러로 진입했다던가, 젊은층이 커플로 공산당 입당이 늘었다는 기사가 최근 국제면에 심심치않게 등장했지요. 일본의 이른바 <로스 제네>(로스트 제네레이션)의 조직화라던가, <워킹푸어>와 같은 일본사회의 신조류가 한국사회의 <88만원세대>와 닮은 것도 일조했습니다.

경험적으로, <이글루스> 등에 들어가면 지난해 촛불시위를 전후로 진보정당 지지자가 많이 늘어났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물론 이들의 지지가 진정성 있는 지지인지, 기호나 패션 쯤으로 진보정당을 지지하는 것을 선택한 것은 아닌지에 대한 비판도 제기됩니다.

여기까지는 기사에서 다룬 내용입니다.

저는 한국사회의 대표적 진보정당들을 접촉했습니다. 특히 촛불시위 이후 새로 젊은층의 ‘가입 트렌드’는 혹시 없었는지 파악하기 위해서였입니다. (개인적 경험이지만, 사회에 나온 지 한참이 되었고, 학교 다닐 때 학생운동에 전혀 관심없던 부류의 사람들이 열혈 진보정당 지지자가 된 경우를 꽤 보았습니다.)

각 정당의 대외협력 파트나 홍보 파트에 있는 분들을 접촉했는데, 구체적인 연령별 데이터를 제시한 정당은 하나도 없었습니다. “다만 촛불시위 이후에 과거의 조직세를 회복했다”, “지방선거 이후 가입자가 다시 늘기 시작했다”는 막연한 이야기만 들었을 뿐입니다. 게다가 “내 소관사항이 아니다. 그 경우는 어느 어느 부서에서 들어라”라는 익숙한 말(어디일까요? 바로 공무원들 취재할 때 가장 많이 듣는 소리입니다.)을 진보정당에서도 듣게 될지는 몰랐습니다.

한국사회에서 진보정당의 등장은, 언론사에도 몇 가지 과제를 던져줬습니다. 제가 전에 있던 언론사에서는 ‘기자의 진보정당 당원 가입을 어떻게 봐야 하느냐’를 두고 논란이 있었습니다. 당원과 후원당원을 합쳐 두 자리 수까지는 안되지만 몇몇 후배기자들이 진보정당에 ‘참여’하고 있었거든요. 개인적으로 어떤 정당에도 가입하지 않았지만, 진보정당, 구체적으로 국민승리21이 태동할 때부터 관심을 가지고 지켜봤습니다. 온라인에서 ‘글빨’을 세우던 몇몇 친구들은 나중에 민주노동당이 된 이 흐름에 참여하기도 했고요. 마찬가지로 나중에 사회당이 된 ‘청년진보당’에도 취재 상 인연뿐 아니라 개인적 인연이 된 분들도 꽤 있어 역시 당 활동을 유심히 지켜봤습니다.

초기 진보정당의 모습에서 제일 아쉬운 것은 일종의 서클주의였습니다. 우연히 당시 제가 거주하던 지역의 당원명단을 봤는데-지금도 진보정당들은 당원에 가입하고자 하는 자는 자신이 원하는 소속 지역을 선택할 수 있게 되어 있습니다-절반 이상이 익숙한 이름이었습니다. 말하자면 학교 민주동문회 선후배 관계가 그대로 ‘진보정당 지역구’로 옮겨간 셈이었습니다. 지역 연고가 있는 특정대학 출신 당원이 절반이 넘는 정당이, 과연 지역에 뿌리박은 대중정당 역할을 제대로 할 수 있었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정파연합당의 한계를 둘러싼 각종 한계도 뚜렷했고요. (그 당의 당원도 아닌 주제에 밖에서 본 ‘선입견’만으로 이야기하기에는 무리가 있습니다.)

그리고 그때로부터 벌써 10년 가까이 흘렀습니다. 짧지 않은 시간입니다. 다들 아시다시피 진보정당의 분당(또는 분화)사태가 있었고, 아마 당을 지키려는 사람도, 당을 떠난 사람도 피나는 노력이 있었을 것입니다. 이번 취재를 하면서 한 진보정당의 당직자로부터 이런 말을 들었습니다. “사실 우리가 아는 사이도 아니고, 기자 분의 사상성이 어떤지도 모르는데 제가 어떻게 그런 ‘정보’를 말씀드릴 수 있겠습니까.” “그렇습니까”라고 대답하고 말았지만, ‘한국 진보정당의 수준이 아직 여기까지 밖에 안되었구나’라는 서글픈 마음이 밀려왔습니다. 제가 부탁드린 정보는 한국의 제도권 정당이 기형적이어서 그렇지 누구나 마땅히 오픈해야 할 정보였습니다. 설혹 그 진보정당을 음해하려는 목적의 기사를 쓰기 위해 보수언론이 그 정보를 요구했더라도 마땅히 공개할 수 있어야 한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게다가 제 사상성이라니요.

기자가 ‘진보사상’의 지지자일 때만 정보를 공개할 수 있다는 거, 말이 되는 이야기일까요. 진보정당 당원들에게는 그런 ‘진영논리에 기반한 어법’이 통할지 모르지만 결국 진보정당이 마음을 얻어야 하는 대상은 4500만 국민입니다.

일본공산당이 구체적으로 어떻게 당원을 모집하고, 조직을 관리하는지는 모릅니다. 하지만 제가 과거에 일본에 가서 취재한 시민사회단체들의 조직관리방식으로 미뤄 짐작해볼 때 공산당이든 사회당이든, 관심을 가진 이들을 끌어들이는, 세밀하고 자세하게 배려하는 방식을 가졌으리라고 봅니다. 한국의 진보정당들이 좀 더 분발하기를 바랍니다. 깃발을 꽃아 놓으면 사람들이 모이는 시대는 지났습니다.

경향신문이 발행하는 시사주간지 Weekly경향의 기자다. 사회팀장을 맡고 있다. 시민단체 KYC 등과 함께 풀뿌리공동체를 소개하는 <도시 속 희망공동체 11곳-풀뿌리가 희망이다> 책을 냈다. 괴담&공포영화 전문지 또는 ‘제대로 된(또는 근성 있는)’ 황색잡지를 만들어보는 것이 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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