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리우드 영화에서 황인종은 은연중에 ‘인종차별’을 받아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무술 액션의 대가인 이연걸이나 장쯔이는 백인 주류 사회에 위협을 가하는 악당으로 할리우드라는 관문에 노크했어야만 했다.

한국 영화배우 이병헌이라고 해서 예외는 아니었다. <터미네이터 제니시스> 및 <지.아이.조> 등에서 그는 빛의 사도와는 거리가 먼 어둠의 사도 역을 연기해야만 했다. 이랬던 이병헌이 이번에는 할리우드 영화에서 선한 배역을 맡았다. <매그니피센트7>에서 에단 호크가 연기하는 굿나잇의 절친 빌리 락스를 연기하는 이가 이병헌이다.

영화 <매그니피센트 7> 스틸 이미지

<고스트 버스터즈>가 젠더 스와프를 통해 주인공의 성을 남자가 아닌 여자로 바꿔놓았듯 <매그니피센트7>은 주인공의 인종을 뒤바꿔놓는다. 율 브린너가 열연한 원작의 주인공을 이번에는 흑인인 덴젤 워싱턴이 연기함으로써, 백인 주인공이 흑인 주인공으로 레이스 스와프(인종 뒤바꿈. Race swap)가 일어난다.

알다시피 원작 <황야의 7인>은 이방인 용병 일곱 명이 한 마을을 구한다는 전개를 갖는다. 리메이크 영화가 백인 주인공이 아닌 레이프 스와프를 하다 보니 흑인 주인공이 백인 마을을 구한다는 전개, ‘블랙 메시아니즘(Black Messianism)’이 일어난다. 악당이 지배할 위기에 처한 백인 마을을 그 마을 사람도 아닌 이방인, 흑인이 구원하는 블랙 메시아니즘이 영화 안에서 태동함을 읽을 수 있다.

영화 <매그니피센트 7> 스틸 이미지

사실 흑인이 구원자 역할을 하거나 주인공의 지적 각성을 일으키는 각성자 역할을 하는 건 새삼 이 영화뿐만이 아니었다. <매트릭스>에서 네오(키아누 리브스)는 혼자 각성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니었다. 모피어스(로렌스 피시번)이 있었기에 네오의 각성이 가능했는데 모피어스는 네오나 사이퍼와 같은 백인이 아니라 흑인이었다.

짐 캐리가 주연한 <브루스 올마이티>에 등장하는 신은 기존 할리우드 영화가 고착화시킨 고정관념, 백인 신이 아닌 흑인 신(모건 프리먼)이었다. 흑인이 선각자 혹은 전지전능한 존재로 그려지고 있었기에 <매그니피센트7> 속 블랙 메시아니즘 역시 이런 흑인 선각자 영화 계보의 바통을 변형해서 이어받은 셈이다.

영화 <매그니피센트 7> 스틸 이미지

블랙 메시아니즘의 발현은 도서 <세상과 나 사이>가 지적한, 인종차별이 만연하는 미국의 현실에 대한 스크린의 반발로도 읽을 수 있다. 흑인 대통령이 선출되는 세상이라고는 하지만 아직도 단지 검은 피부를 가졌다는 이유만으로 백인 피의자보다 경찰에게 체포되기 쉽고 총격을 받기 쉬운 이들이 흑인이다.

미국 내 흑인의 사회적인 지위를 스크린에서나마 위로받고자 하는, 아니 백인이 주류인 미국 사회에서 블랙 메시아니즘은 흑인이 자주권을 갖는 것을 넘어서서 백인의 가디언, 보호자가 될 수 있음을 보여주는 백인 주류 사회에 대한 스크린의 반동(反動)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늘 이성과 감성의 공존을 꿈꾸고자 혹은 디오니시즘을 바라며 우뇌의 쿠데타를 꿈꾸지만 항상 좌뇌에 진압당하는 아폴로니즘의 역설을 겪는 비평가. http://blog.daum.net/js7kei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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