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월 국회에서 이미경 민주당 의원의 용산참사 관련 질의를 받은 한승수 국무총리는 “청와대에서 일어나는 일은 내가 잘 모른다”라고 답한 적이 있다.

당시 그의 발언을 믿은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오늘(5월 12일) 나온 한 총리의 발언은 지난 2월의 발언이 순전 거짓말이라고 볼 수만은 없음을 방증한다. 중앙아시아 2개국을 순방중인 이명박 대통령을 대신해 오늘은 한 총리가 국무회의를 주재했다.

▲ 한승수 국무총리가 정치에 관한 대정부 질문을 위해 지난 4월6일 열린 국회 본회의에서 조순형 자유선진당 의원의 총리실 실세가 누구냐는 질문에 “내가 총리실의 실세”라며 웃으며 답하고 있다. ⓒ여의도통신
장관들을 모아놓은 자리에서 한 총리는, “이명박 정부가 과거 어느 정부보다 법과 질서를 철저히 지키면서 인권 창달에 최선의 노력을 다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인권 창달에 최선의 노력이라니… ‘인권’과 ‘창달’의 의미는 각각 ‘인간으로서 누리는 기본적 권리’와 ‘거침없이 쭉쭉 뻗어 자람’이다. 하여 그의 발언은 “청와대는 국민 기본권이 거침없이 신장되도록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라고도 풀이된다.

수구층에선 그렇게 여기는 사람들이 물론 존재할 것이다. 자, 그럼 잠시 청와대의 정책에 우호적인 한나라당이 보는 ‘인권’이란 무엇인가 들여다본다.

“불법시위에 관한 집단소송제도를 도입해서 헌법 위에 떼법이라는 잘못된 관행을 바로잡겠습니다. 사이버모욕죄를 도입해서 인터넷이 욕설과 비방의 공간으로 악용되는 것을 막겠습니다. 도시게릴라처럼 복면을 착용하고 쇠파이프를 휘두르는 폭력시위도 근절시키겠습니다.”

위는 지난 2월 홍준표 의원의 국회연설문 전문에 등장한 내용이다.

홍 의원은, 이를 두고 일부에서 반인권, 반민주 법안이라고 왜곡 선동하고 있다면서 이 법안들이야말로 불법 폭력으로부터 “선량한 시민을 보호”하는 “진정한 인권 법안”이라고 주장했다.

폭력을 자주 행사하는 시위대 진압 경찰은 선량한 시민을 보호하지 못하고 있을 뿐더러 심지어 일본인 관광객까지 두들겨 팼다. 이게 인권을 진정으로 위하는 태도인지 반문하지 않을 수 없다.

청와대와 한나라당이 바라보는 ‘인권’의 의미가 상반되지 않는다면 한 총리는 아직도 청와대를 모르거나 모른 척하고 있다고 볼 수밖에 없다.

한 총리는 그러면서 국무위원들에게 “정부 정책을 지속적으로 반대하거나 비판하는 국민에게 이를 잘 홍보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달라”고 말했다. 선량한 국민 따로 있고 반대·비판하는 국민 따로 있다는 말인가? 정부가 말하는 선량한 국민은 촛불시위 참여 안하고 인터넷에 정부 비판하는 글 올리지 않는, 그래서 정부가 뭘 해도 울분을 속으로만 삭이며 말없이 사는 사람들을 일컫는 게 아닌가 싶다.

그는 또한 지난 5월 5일 세계시민포럼 개막식 기조연설에서 “대한민국은 아시아 지역의 인권 선도국으로서 자부심과 책임감을 갖고 국제인권 분야에서 역할을 더욱 확대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우리 정부가 인류보편적 가치인 인권보호와 증진을 위한 노력을 지속적으로 강화하고 있다고도 얘기했다.

그러나 한 총리가 역시 주재했던 지난 3월의 국무회의에서는, 국민적 반발에도 불구하고 국가인권위원회 조직을 축소하는 법안이 통과됐다. 현재의 208명 인권위 인력에서 44명 인원을 감축하겠다는 것인데 사회 각계각층 전문가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정부는 통과를 관철해냈다.

전문가들은 인권 보호가 국민이 평등하다는 의식에서 출발하기 때문에 ‘종적인 상하 의식’이 강하면 인권은 상대적으로 약해질 수밖에 없다고 지적한다.

작년 6월 한 총리가 이 대통령에게 총리직 사퇴 의사를 밝혔지만 반려된 바 있다. 그가 ‘청와대의 인권’과 ‘국민의 인권’ 사이의 현격한 차이를 간파하지 못하고, 그리하여 국민의 목소리를 제대로 듣는 노력을 기울이지 않는다면 굳이 책임지고 은퇴할 이유도 없을 것이다. 전두환 정권 때부터 누려온 그의 공직 생활은 앞으로도 유효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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