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 경주에서 일어난 지진이 또 한국 사회의 안전에 대한 불안감을 키우고 있다. 이번 사태를 비롯해 해결되지 않은 채 누적되고 있는 문제들은 현 정부의 무능이라는 ‘정치적’ 성격을 분명히 하고 있다.

12일 발생한 지진은 규모 5.1과 5.8을 기록해 사상 최대 규모를 기록했다. 서울에서도 진도 2 정도에 해당하는 진동이 느껴질 정도였다. 영남권에 사는 사람들은 SNS 등에서 공포감을 호소했다. 내진설계가 돼있다는 아파트에서도 견디지 못한 사람들이 뛰쳐나와 불안감에 떠는 사태가 이어졌다.

가장 먼저 불안의 대상이 된 것은 핵발전소의 존재다. 한국수력원자력은 지진 직후 긴급히 사태를 파악하고 핵발전소가 정상 운영되고 있다는 결론을 내렸다. 국민안전처는 “현재까지 피해 상황 없다”는 취지의 발표를 했다. 국민을 안심시키기 위한 발 빠른 조치로 보인다.

그러나 정부의 이러한 노력에도 국민의 입장에서는 마음을 놓기가 어려운 상황이 반복됐다. ‘피해 상황 없다’는 발표와는 달리 SNS 등에는 상가의 유리가 깨지거나 도로에 금이 가 있는 등의 사진이 속속 올라왔다. 재난 대응 매뉴얼 등을 제공해야 할 국민안전처 홈페이지는 접속 장애를 일으켰다.

이전 지진 때도 문제가 됐던 한 발짝 느린 문자는 이번에도 지진 이후 9분이 지난 후에야 발송돼 변한 게 없다는 비판을 자초했다. 네티즌들은 정부의 늑장대응을 믿기보다는 일본인들이 만든 스마트폰용 지진 경보앱을 사용하라는 ‘팁’을 서로 공유하기도 했다. 지진이 일어나기 5초 전에 경보가 전달됐다는 체험기가 뒤따랐다.

경주지역에서 규모 5.8 지진이 발생한 12일 오후 서울 동작구 기상청 국가지진화산센터에서 유용규 지진화산감시과장이 관련 브리핑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보수정치의 지지자들은 “지진이 일어난 것도 대통령 탓이냐”라고 말할지 모르지만 이 모든 불신이 정부의 기만적 대처로부터 시작됐다는 걸 지적할 수밖에 없다. 세월호 참사 이후 박근혜 대통령은 거의 한 달 만에 카메라 앞에 서서 눈물을 흘리며 재난이 ‘인재’로 이어지는 일을 반복하지 않기 위한 조치들을 발표했다. 그 유명한 해경 해체, 국가안전처 신설, 국가안전의 날 제정, 관피아 척결 등이 핵심이다.

그러나 국민들의 인식 속에서 국가안전처는 아무 때나 실없는 문자를 보내면서 정작 필요한 때에는 제 기능을 못하는 쓸모없는 기관으로 전락했다. 관피아 척결에 진전이 있었다고 보는 사람도 없다. 특히 박근혜 정권의 이후 세월호 참사 진상규명에 대한 소극적 태도는 결국 대통령의 눈물이 정치적 위기를 피해가기 위한 수단 정도에 그친 게 아니냐는 생각을 가질 수밖에 없게 만들었다. 기득권이 참사의 해결과 방지에는 아무 관심이 없고 자신들이 입을 해만 걱정한다는 추측에 강력한 근거를 스스로 제공한 것이다.

이제 사람들은 지진이 실제적 위협으로 다가오는 상상을 한다. 강력한 지진이 일어나고 재난 당국은 긴급히 ‘아무 이상 없으니 안전수칙에 유의하라’는 취지의 발표를 하지만 곧 다시 두 번째 지진이 일어나 마침내 핵발전소에서 방사능이 누출되며, ‘안전수칙에 유의하라’는 말에 안전수칙을 확인하러 들어간 국민안전처 홈페이지는 접속 장애를 일으키고 유리가 깨지고 간판이 떨어져 사람들이 부상을 입은 후에야 긴급재난문자가 도착한다는 식이다.

체제를 수호하는 사람이라면 사람들의 이러한 ‘불길한 상상’을 ‘쓸데없는 걱정’이라고 말할 수 있어야 하는데, 그렇게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되겠는가. 재난이 일어나는 것은 막을 수 없으나, 피해를 최소화하고 이후 벌어지는 일들에 침착하게 대응하는 게 권력이 할 일이다. 그런데 무슨 대응을 하기는커녕 모두 내버려 둔 채, 마치 세월호를 ‘교통사고’에 비했듯, ‘그건 할 수 없는 일이다’라고 말할 것만 같으니 불안한 거다.

일이 이렇게 되는 근본적인 원인은 ‘사람’보다 ‘숫자’가 중요한 권력의 철학에 있다. 이는 세월호 참사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안전을 조금 희생하더라도 돈을 조금이라도 더 벌 수 있는 여러 꼼수들이 더 필요했다. 생명의 가능성보다는 구조나 인양에 들어갈 돈이나 정권에 대한 지지율의 등락이 더 중요했다. 사고를 방지하기 위해 필요한 것들은 오로지 ‘비용’의 문제로 간주됐고 웬만한 인명피해 정도는 더 높은 ‘숫자’를 위해 감수할 수밖에 없는 것처럼 치부됐다.

최근 C형 간염으로 한바탕 난리가 난 일이 있었다. 이 난리의 핵심은 병을 고치러 간 병원에서 오히려 병에 감염됐다는 데 있다. 정부와 언론은 주사기를 재사용하는 일부 몰지각한 의사들의 문제로 보았으나 사실은 재정과 인력의 문제가 영향을 끼치지 않았을 수가 없다.

주사기를 재사용한 것은 주사를 많이 쓰기 때문이고, 주사를 많이 쓰는 것은 이윤을 내기 위해 주사 형태의 다양한 ‘의료상품’을 만들어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일부 사례는 주사기 재사용이 아니라 숙련되지 못한 인력 탓에 발생했는데, 이게 인건비의 문제임을 깨닫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재발 방지를 위해서는 보건의료 영역에 대한 근본적 접근이 필요하지만 그런 것은 꿈에서나 가능한 일이고 체제는 그저 ‘현실을 인정하자’고 한다.

C형 간염과 함께 감염병에 대한 또 다른 공포감을 조성한 것은 콜레라인데 이 역시 원인을 제대로 밝혀내지 못한 상태에서 질병 당국이 제대로 대응하지 못했다는 평가를 피하기 어렵다. 감염자가 뭘 먹었는지, 어디를 들렀는지에 대해 제대로 파악이 되지 않는 상태에서 ‘전갱이’를 ‘정어리’로 오인하는 코미디 같은 일들이 이어졌기 때문이다.

질병관리본부는 거제 인근 바닷물에서 콜레라균을 검출하는 데 드디어 성공했지만 이게 어디서 왔는지 어떤 경로를 거쳤는지 알아내는 건 요원한 일로 보인다. 이 콜레라균의 유전자형 정보는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에서도 검색되지 않는다고 한다. 이제 ‘확인할 수 없으니 어쩔 수 없다’고 말하는 것만 남았다. 병에 걸리지 않은 경우만 운 좋은 사람들이 되는 것 아닌가. 질병관리본부에 도대체 어느 수준의 전문성과 인적역량이 투입돼있는지 의문이다.

권력이 재난 방지에 대한 비용을 ‘필수’로 인식하고 ‘숫자’가 아니라 ‘사람’이 중요한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는 철학을 갖지 않는 한 같은 사고는 반복해서 일어난다. 지금 필요한 것은 왜 국가를 믿지 못하느냐고 다그치는 게 아니다. 심지어 기득권마저도 국가를 믿지 않는 이 상황을 어떻게 타개할 것인지 고민하는 게 더 중요하다. 나라를 다스리겠다고 나선 사람이라면 해법을 갖고 있어야 한다. 그리고 그 해법은 나중이 아니라 ‘지금’ 말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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