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일과 8일, 미디어발전국민위원회에서 가장 첨예하게 대립한 주제는 ‘여론 집중도’와 ‘여론조사’다.

‘여론조사’에 대해서는 ‘할지 말지’를 두고 여야 추천위원들이 대립했다. 미디어법 개정에 대한 국민들의 여론을 물어보자는 야당 측 추천위원들의 주장에, 일부 여당 측 위원들은 ‘법 개정 여부를 여론조사로 결정할 수 없다’며 반대 입장을 밝히면서 논쟁이 벌어졌다.

‘여론집중도’에 대해서도 논쟁이 첨예했다. 주제별 공청회가 끝난 후, 신방 겸영 등을 논의하는 1분과회의에서 여당 측 추천위원들은 지상파 방송이 ‘여론집중도’가 독과점 수준이라고 주장했다. 그리고 이를 극복하기 위해 신문과 방송의 겸영을 허용해야 한다고 했다. 야당 측 위원들은 여당 측이 주장하는 ‘여론 집중도’가 애초에 자의적으로 설정되었기 때문에 문제가 있다는 입장이다. 여당 측의 ‘여론 집중도’는 지상파, 케이블TV, 위성방송 등이 포함된 전체 방송시장을 대상으로 한 것이 아니라, 지상파방송 3사와 YTN, MBN 만을 가지고 여론집중도를 계산했다는 것 자체가 지상파 3사의 독과점을 의도하고 지수를 구성했다는 비판이다.

▲ 5월8일 열린 미디어발전국민위원회 1분과회의
여당 측이 주장한 ‘여론집중도(주로 윤석민 교수의 공술문을 인용한다)’를 살펴보면, 여론집중도가 여론조사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것임을 알 수 있다. ‘여론집중도’를 계산하는 데 사용된 매체 영향력, 도달률, 이용시간 등은 모두 여론조사로 만들어진 데이터인 것이다.

여론조사의 ‘신뢰성’을 의심하는 여당 위원들이 ‘여론조사’를 분석한 2차 자료를 신방 겸영 주장의 핵심적 근거로 사용한 것은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먼저 여당 측 ‘여론집중도’의 매체별 가중치를 정하는 ‘매체영향력’을 살펴보자.

<2008 언론수용자 의식조사> 중 ‘매체별 영향력 지수’ 항목을 가중체계로 한 수용자 점유율을 산정해 보고자 함.
윤석민(2009. 5. 1), 방송소유규제완화와 여론 독과점, 미디어발전위원회 주제별 공청회 공술문 23p

‘매체별 영향력 지수’란 말은 <2008 언론수용자 의식조사>에 없다. ‘매체별 영향력지수’는 <2008 언론수용자 의식조사>의 ‘가장 영향력 있는 매체’에 관한 설문결과를 차용한 것으로 보인다. <2008 언론수용자 의식조사>는 전국의 500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한 것이다.

또 <2008 언론수용자 의식조사>의 설문항목을 보면, ‘매체별 영향력 지수’가 얼마나 거창한 것인지 알 수 있다.

문 26. 선생님께서는 신문, 방송, 잡지, 라디오, 인터넷 등 매체 종류를 불문하고 우리나라에서 가장 영향력 있다고 생각하시는 매체 명을 하나만 적어 주십시오.
<2008 언론수용자 의식조사>, 언론재단, 387p

이 설문 문항의 결과가 ‘매체별 영향력 지수’라는 대단한 타이틀을 가지고, 매체별 영향력을 평가하는 기준으로 사용된 것이다.

위의 설문은 실제 ‘매체의 영향력’이나 ‘여론 지배력’을 평가하기보다는 매체에 대한 수용자들의 전반적인 ‘생각’ 또는 ‘이미지’를 묻는 물음이다. 사람들이 느끼는 이미지를 매체의 여론 장악력이라고 판단하는 것은 언어도단이다. 사람들이 가장 유명한 백화점이라고 꼽은 백화점을 가장 많이 팔리는 백화점이라고 지목하는 셈이다.

언론재단의 <2008 언론수용자 의식조사>에서도 이 문항의 결과를 ‘매체별 영향력 지수’라고 규정하지 않는다. 대개 ‘가장 영향력 있는 매체’라는 용어를 쓰고 있다.

‘여론 집중도’를 산출하는 데 ‘매체별 영향력’만큼 주요하게 사용되는 것이 도달점유율, 이용시간 점유율 등이 있다. 이용시간 점유율은 <2008 언론수용자 의식조사> 문항 중 ‘매체별 뉴스 이용시간’의 결과를 ‘이용시간 점유율’이라고 규정한 것이다.

‘도달점유율’ 역시, <2008 언론수용자 의식조사>의 ‘매체별 뉴스 이용시간’에서 5분 이상 시청한 사람 수(방송), 라디오 청취자 수, 1건 이상의 신문을 읽은 사람의 수(신문)의 비율을 ’도달 점유율‘이라 이름 붙인 것이다. 이 ’도달점유율‘은 앞서 ’매체별 영향력 지수‘와 마찬가지로 한 개의 설문문항으로 결정된다.

여당이 신문방송 겸영, 대기업의 방송진출 허용을 주장하며 내세우는 가장 주요한 근거인 ‘매체 집중도’가 여론조사를 근거로 만들어진 셈이다. 이렇게 ‘여론조사’를 중요시하는 여당 측 위원들이 법 개정에 대한 여론 수렴을 위한 설문조사를 반대하는 것은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입맛에 맞고 유리한 설문조사만 신뢰할 만한 자료이고, 불리할 것 같은 여론조사는 할 수 없다는 배짱이 참 대단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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