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가을에 난데없는 찜통이었다.

오늘(5일) 오후 2시, 김용철 변호사의 2차 기자회견이 열린 서울 동대문구 제기동성당 시청각실은 그야말로 발 디딜 틈이 없었다. 기자회견이 시작되기도 전부터 50석 규모의 작은 방은 사람열기, 카메라열기, 취재열기로 후끈 달아올라 있었다.

▲ 기자회견장에 들어가지 못한 기자들이 입구에서 카메라 세례를 퍼붓고 있다.
김용철 변호사와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 신부들이 모습을 드러내면서 취재경쟁은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여기저기서 플래시가 터지고 “카메라를 가리지 말라”는 등 고성이 오갔다. “공간이 너무 비좁다”는 일부 기자들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기자회견은 그대로 진행됐다.

▲ 이날 제기동성당 앞은 취재차량으로 가득 찼다.
안에 들어간 기자들은 그들대로, 밖에서 ‘벽치기’를 하는 기자들은 또 그들대로 신경이 곤두서 있다. 더 이상 안에 있기가 힘들었던지 중간에 시청각실을 빠져나오는 일부 기자들은 “사우나가 따로 없다”고 했다. 카메라 렌즈에 김이 서렸다면 대충 어느 정도인지 짐작이 갈 것이다.

기자회견이 끝나자 사람들이 끝도 없이 쏟아져 나왔다. 그 작은 방에 어떻게 이 많은 인원이 있었나 싶을 정도다. 내부의 후끈한 열기도 동시에 쏟아져 나온다. 나오는 기자들은 하나같이 땀으로 목욕을 한 듯 셔츠가 흠뻑 젖어있다.

▲ 기자들이 땀을 뻘뻘 흘리며 기자회견장을 빠져나오고 있다.

▲ 기자회견을 마치고 나오는 김용철 변호사와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을 취재 중인 기자들.

어떤 기자들은 “일단 띄워” “나가서 택시 잡는 게 중요할 거 같다”며 속보 경쟁을 벌였고, 또 다른 기자들은 “문제는 마감할 게 없다는 거야”라며 혀를 차기도 했다. 회견 내용이 이미 다 나온 얘기여서인지, 취재를 하고도 쓸 수가 없어서라는 뜻인지는 잡히지 않는다.

▲ 이날 기자회견에는 기자들만 참석하진 않았다. 사복 경찰들도 있었겠지만 삼성 관계자들도 깔려있었을 것이다.
이날 제기동성당에는 방송사, 신문사, 외신 등 줄잡아 200여명의 취재진이 몰렸다. 오늘 저녁 방송사 메인뉴스에서, 내일 아침신문에서 이들의 모습을 얼마나 볼 수 있을지 주목된다.

김용철 변호사 “현직 검찰 최고위급도 뇌물 받아”
삼성 측 “대부분 근거 없는 내용”

‘삼성 비자금’ 의혹을 처음 제기한 김용철 변호사는 이날 삼성으로부터 뇌물을 받은 인사들 가운데 현직 최고위직 검찰 간부도 있다고 폭로했다.

김 변호사는 “삼성 임원으로 근무하면서 검찰 간부 수십 명을 관리해 왔으며 매년 설과 추석 그리고 여름휴가 때마다 5백만 원에서 수천만 원씩 전달했다”며 이 같이 주장했다.

김 변호사는 “특히 삼성 뇌물을 받은 인물 가운데 현직 최고위직 검찰 간부도 여러 명 포함돼 있으며 한 번에 수십억 원씩 전달한 경우도 있다”고 덧붙였다. 김 변호사는 ‘삼성 장학생’의 실명 리스트를 공개하지는 않았다.

김 변호사는 또 “검찰은 삼성이 관리하는 작은 조직이며 재경부와 국세청은 규모가 더 크다”고 말했다. 그는 더구나 삼성에 비판적인 시민단체 가운데 일부도 회의가 끝나면 회의록이 시민단체에 보내졌으며 언론도 삼성 비자금 관련 제보를 외면했다며 불신을 드러내기도 했다.

한편 이날 오전 삼성그룹은 ‘김용철 변호사 주장에 대한 삼성의 입장’이라는 제목의 28장짜리 반박자료를 내고 김 변호사가 제기한 의혹들이 대부분 근거가 없는 내용이라고 반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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