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일 일요일 밤에>(이하 일밤)의 진땀 빼는 모양새다. 안쓰럽다. <일밤>이 한자리수 시청률로 주말 저녁 오락프로그램에서 맥을 못춘 지는 꽤 오래된 일이지만, 동원되고 있는 구원책마다 한결같이 수렁이라 더욱 위험한 지경이다. 실제 연예인 커플을 찾아 결혼을 시켜보기도 하고, 시작한 지 4주 밖에 되지 않은 코너도 과감하게 퇴출시켰다. ‘빙의’를 빙자한 몰래카메라까지 동원하며 소녀시대의 덕을 보려 했으나, 이조차 신통치 않았다. 절체절명의 위기에서, ‘대망’을 접고, 새롭게 시작한 ‘퀴즈프린스’ 코너에 한나라당 원내대표 ‘홍준표’가 등장하였다.

방영 전부터 네티즌들은 우려를 넘어 경계하였다. 특히 미디어법을 둘러싸고, MBC와 한나라당이 첨예한 의견 대립을 하고 있는 터라, MBC에게 응원과 지지를 보냈던 네티즌들은 배신이라고 아우성쳤다. 인터넷의 우려를 안고 어찌되었건 홍준표는 ‘퀴즈프린스’에 게스트로 출연하였다. MBC가 무얼 노렸는지 알 수 없지만, 시청률은 처참하다. 3.1%(TNS미디어 집계)이다. 호사가 네티즌들은 벌써 ‘홍준표의 굴욕’이라고 이름붙였다.

낡은 포맷으로 퇴보한 <일밤>의 ‘퀴즈프린스’

▲ MBC <일요일 일요일 밤에> '퀴즈프린스'에 출연한 홍준표 한나라당 원내대표 @ MBC 홈페이지
<일밤>은 왜 ‘홍준표’를 선택했을까? 결과론이지만, 흥행에서도 참패하였고, 이미지에 있어서도 타격을 입었다. 그렇다고 ‘퀴즈프린스’가 오락프로그램의 새로운 실험 가능성을 열었냐면 그것도 아니다. 재미의 측면도 별로였다. 총체적으로 모두 아니었다.

우선, 형식면에서 놓고 보자면 비단 홍준표가 아니라 그 할애비가 나온다고 한들 스타의 시시콜콜한 개인사를 퀴즈로 푸는 방식은 구태도 그런 구태의연함이 없을 낡은 포맷이다. 아무리 선의를 가지려고 해봐도, 왜 금쪽같은 주말 저녁까지 TV에서 스타의 어린 시절 이야기를 지켜봐야 하는지 도무지 납득이 안 간다. ‘1박 2일’은 감동이, ‘무한도전’은 참신함이라도 있지 않은가.

이번 홍준표 편만 봐도 그렇다. 그가 모유수유를 몇 살까지 했는지, 악플을 달아본 적은 있는지, 흑채를 쓴 적이 있는지 전혀 궁금하지도 우습지도 않다. 가볍다 못해 먼지 같은 어이없음이다. 애당초 어차피 그런 것들과 상관없이 MC들의 순간 재치와 거품 속으로 빠지는 그들의 몸 개그만으로 웃기려는 작정인지 모르겠는데, 이는 오락프로그램의 기본 중의 기본 아닌가. 언제까지 특급 MC들을 앉혀놓고, 스타의 어린 시절 첫 사랑은 언제고, 이상형은 무엇이었고, 사고 친 일은 없는지 등 그/녀의 사생활을 파헤칠 것인지 답답할 뿐이다.

정치와 오락을 충돌케하라

정치인의 오락프로그램 등장은 그 자체로 화제성이 있다. 홍준표를 캐스팅한 MBC가 노린 것이 이 지점, 인지도의 상승이었다면 어느 정도 효과를 거뒀다고 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딱딱하고, 진지한 이미지의 국회의원이 과연 오락프로그램에서 어떻게 시청자들을 재미나게 할 수 있을까에 대한 상상은 호기심이 들 만한 대목이다. 그 호기심을 현실의 재미로 바꾸기 위해선 경직되고 권위만을 상징하는 국회와 ‘오락’이라는 코드의 어색한 조합을 전면 충돌시켜야 한다. 혈투장을 방불케 하며 인생살이 어렵게 만드는 정책과 법안들을 쏟아내는 국회에 대한 저잣거리의 ‘불신’을 어떻게든 ‘오락’으로 정면에서 치받아 줘야 한다. 그것이 정치인들에게서 웃음을 빼먹는 유일한 방법이다.

근데 <일밤>은 전혀 그러질 못했다. 대상이 굳이 홍준표가 아니어도 상관없는, 여당 원내대표의 급에 어울리지 않는 시시껄렁한 농담만 했다. 그래서 더욱 원성이 커진 것이다. 이왕 욕먹을 각오하고 불렀으면, 제대로 다뤄줬어야 했다. 그 준비를 제작진이 철저히 했어야 했다.

그건 좀 거창하게 말하자면, 미디어는 정치인들을 ‘이미지’만 가지고 설명해서는 안 되는 실존적 책무가 있다고 할 수 있고, 구차하게 말하자면 정치인으로 웃음을 유발할 수 있는 장치의 설정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얘기이다. 살면서 이런 저런 사연 없는 이들이 어디 있겠는가. 누구보다 사연이 많은 이들이 바로 평범한 시청자들이다. 홍준표를 불러 놓고 이런저런 얘기를 통해 그 사람 “생각보다 괜찮다”라는 미적지근한 평가를 노렸다면, 혹은 인간적인 면을 부각시켜볼 꼼수였다면 제작진의 의도는 네티즌들의 지적처럼 애당초 치졸한 것이었다.

홍준표는 지루했고, MBC는 우스워지다

▲ MBC <일요일 일요일 밤에> '퀴즈프린스'에 출연한 홍준표 한나라당 원내대표 @ MBC 홈페이지
모든 것이 아쉽다. 정치인을 향해 직설화법을 취하지 못할 바에는 그들을 오락프로그램에 세우지 않는 편이 맞다. 그것이 아니라면, 차라리 정치인 없이 정치에 대해 농익은 비유를 던지는 편이 옳다. 최근 물 오른 <개그콘서트>의 ‘뿌레땅뿌르국’이 그러하고, 여전히도 자막 신공을 보여주는 <무한도전>이 그러하다. 지난 주말 <무한도전> ‘춘향뎐 편’ 봤는가? ‘말하면 감옥행’ 설정은 바로 지금 우리의 모습이었다. 여기는 졸지에 말하면 잡혀가는 무시무시한 나라가 아닌가. ‘풍자’인지 아닌지 모를 경계에서 유쾌했고, 재밌었다. ‘뿌레땅뿌르국’ 역시 훌륭했다. 아버지가 국회의원이면 입이 좀 텁텁해도 군제 면제, 대기업 회장이 아버지면 간지럼을 잘 타는 이유만으로도 군제 면제. “병역 비리가 없는 나라입니다.” 어디서 본 장면이지 않은가. 다소 진부한 이야기거리이긴 했지만 그래도 웃음이 베어 났다.

그래서 홍준표를 선택한 <일밤>은 틀렸다. 영악한 시청자들에게 한 방 먹은 홍준표나, 홍준표를 <일밤>의 구원으로 선택하고 노이즈 마케팅으로 논란을 일으킨 MBC나, 그 자체만으로 욕먹어 싼 지경이다. MBC가 당당히 내세운 홍준표의 ‘입담’ 과시 보다, 시청자들은 홍준표 망언에 촉각을 세우고, 몹쓸 발언에 <딴지일보>의 특허인 ‘똥침’ 한 방을 기대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시청자들은 ‘입담’보다는 ‘망언’에 반응한다. ‘망언’에 담긴 다양한 메타포가 ‘재치’로 승화되기를 갈망한다. 하지만 홍준표는 지루했고, <일밤>은 나태했고, 오히려 MBC가 우스워졌다. 정치인을 잘못 오락 프로그램에 부르면 이렇게 모두가 망한다는 모범 사례만 만든 꼴이 되고 말았다.

홍준표에 대한 정치 풍자 한 번 제대로 보고 싶은가. 그러면 추천한다. 꾹 한 번 눌러 보시라. “홍준표 의원의 망언에 되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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