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드 배치 결정 이후, 연일 계속되고 있는 성주의 촛불집회. 지난 대선,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지지율이 86퍼센트에 달했던 경상도 농촌에서, 이토록 오랜 기간 투쟁이 이어지게 하는 동력은 무엇일까? 성주 군민들의 놀라운 저력은 도대체 어디서 오는 것일까? 그 이유가 궁금해져 성주를 찾았다.

성주를 처음 방문했을 때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입구부터 빽빽이 걸려 있는 현수막의 행렬이었다. 각종 학부모 모임, 초·중·고등학교 동창회부터 보수단체인 재향군인회와 자유총연맹까지. 개인과 가족 명의, 노래방이나 편의점 같은 가게 상호 등 상상할 수 있는 모든 단위들이 저마다의 절박함을 안고 현수막을 내걸었다. 성주 사람들도 이렇게 많은 모임들이 성주에 있는 줄 몰랐다고 말할 정도이니, 그 규모를 상상할 수 있으리라.

촘촘하게 얽혀 있는 공동체

처음에는 이런 풀뿌리 민주주의의 힘이 그저 신기하기만 했다. 그런데 조금 더 자세히 들여다보니, 이렇게 많은 단위들이 움직인 것은 성주의 지역적 특성에 기인한 듯 했다.

인구가 4만 5000에 불과한 성주는 한 다리 건너면 서로 다 알 정도로 바닥이 좁다. 마음 놓고 시댁이나 처가 흉을 보지도 못할 정도로 촘촘하게 얽힌 관계들이 있기에, 위기의 순간 똘똘 뭉칠 수 있었다.

자조, 친목 모임들이 많은 것도 특징이라면 특징이다. 군에서 공식적으로 지원하는 사회단체만도 70여 개에 달하고, 그 외에도 여러 동호회 소모임이 많다. 평소 봉사를 다니고, 마을 순찰을 돌고, 시를 낭송하고, 그림을 그리고, 기타를 치던 모임들이 사드 국면을 맞아서 마치 약속이나 한 것처럼 투쟁에 나서게 되었다. 봉사활동을 하던 단체는 군청 앞마당에서 벌어지는 촛불집회의 안내와 물품관리, 뒷정리를 맡았고, 시를 낭송하던 모임은 투쟁의 상징이 된 ‘평화의 파란 리본’을 고안해냈다. 기타를 치던 동호회는 집회 음악을 담당하였고, 그림을 그리던 분들은 성주 곳곳에 평화의 벽화를 그렸다. 한 달 넘게 이어진 촛불집회의 프로그램도 대부분 주민들의 재능으로 채워지고 있다. 간혹 외부 가수가 초청될 때도 있지만, 대부분의 순서는 주민들이 직접 공들여 준비한 시 낭송, 연극, 몸짓, 수화 공연, 풍물 등으로 채워지고 있다. “성주 안에 이렇게 훌륭한 인재들이 많았었나?”라고 군민들 스스로 놀랄 정도로 지금 성주에서는 아래로부터의 자발적이고 창의적인 실천들이 샘솟고 있다.

1318을 아시나요?

성주 투쟁의 또 다른 원천은 1318 카톡방이다. 1318이라는 숫자는 카톡방 하나당 들어갈 수 있는 최대 인원이다. 본래 200여 명 정도 참여하고 있던 이 카톡방은 친환경 먹거리 정보를 나누기 위한 공간이었다. 그런데 사드 사태가 터지고 나서, 성주 사람들을 최대한 많이 초대해보자고 한 것이 삽시간에 1318명으로 늘어났다. 이 카톡방에서는 사드와 관련된 여러 정보가 공유되고, 투쟁의 기획과 집행이 집단적으로 일어나기도 한다. 평화의 ‘파란 나비리본’도 이곳에서 처음 제안되었다. 무슨 색으로 할지, 어떤 의미를 담아서 어떤 모양으로 할지, 모두 이곳에서 토론 끝에 결정됐다.

새누리당 장례식을 거행하게 된 것도 이곳에서의 제안이 발단이었다. 처음에는 새누리당과의 간담회에 발맞춰 현수막과 피켓 문구를 고민하다가, 누군가 ‘근조 새누리’를 문구로 제안했고, 그러면 아예 ‘새누리 장례식’을 하면 어떻겠냐고 누군가 덧붙였다고 한다. 그러자 상여, 상복, 흰 국화 등 장례식에 필요한 물품들을 준비하겠다는 자발적인 손길들이 이어졌다. 전날 오후에 말이 나와서 다음날 아침에 바로 실천에 옮길 정도로 놀라운 속도와 집행력을 보여주는 이 카톡방을 빼놓고 성주 투쟁을 말하긴 힘들다.

8월 14일 서울시청 광장 집회에 참석해 성주 촛불 히트곡들을 알려주는 성주 주민들

“촛불 안 나오면 사드 온다~”

1318 카톡방과 더불어 성주 투쟁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은 바로 매일 밤 군청 앞마당(이제는 ‘평화나비마당’이라는 새로운 이름을 얻었다)에서 진행되는 촛불집회다. 이 역시 위로부터의 기획보단 주민들이 삼삼오오 모이기 시작한 것에서 출발해 현재 규모에 이르게 되었다.

투쟁위원회의 공식 체계가 잡히기도 전부터 촛불집회는 성난 군민들의 뜻을 모으고, 투쟁의 방향을 함께 논의하는 총회 같은 공간으로 기능해 왔다. 새로운 투쟁 제안이 오고 가고, 참석자들의 총의를 물어서 결정을 해왔다. 투쟁이라는 것을 난생 처음 해 본 대다수 주민들에게 촛불집회는 집회 시위를 배우는 공간이자, 사드 문제에 대한 교육의 공간이었던 셈이다.

투쟁의 고비고비마다 날카로운 발언들을 해주시는 연사들 덕에 사드가 무엇인지, 왜 성주뿐 아니라 한반도 어디에도 필요 없는 물건인지, ‘외부세력’ 프레임이 얼마나 잘못된 것인지. ‘제3부지’가 왜 분열책동인지. 토론을 통해 하나씩 알아나갔다. 특히 투쟁 초반, 언론의 왜곡보도에 대응하기 위해 생겨난 ‘언론 브리핑’ 코너는 매일매일 불거지는 쟁점들에 대응하는 역할을 해왔다. 집회가 장기간 지속되면서 비슷비슷한 발언들로 지루해질 법도 한데, 성주의 촛불은 외려 정부가 던지는 여러 쟁점들에 기민하게 대응해오면서 살아 있는 민주주의의 공간이 되고 있다.

성주 주민들만의 즐거운 투쟁 문화도 형성되고 있다. 노래배우기 시간을 통해 <그네는 아니다>, <엎어 버려> 같은 촛불 히트곡이 생겼고, 집회 마무리는 누구나 따라 부르기 쉬운 <헌법 제1조>가 장식하게 되었다. 또, 정부가 하도 사드에 관한 괴담이 많다고 공격을 해대니까, 성주 주민들은 이를 뒤집어 자신들만의 괴담을 만들기도 했다. 바로 “촛불 안 나오면 사드 온다”는 괴담. 뜨거운 여름의 열기를 식히기 위해, 주민들은 초를 얼굴 밑에 갖다 대고 귀신놀이 하듯 이 괴담을 외치며 촛불 사수의 의지를 다지기도 한다.

한편, 촛불집회에서는 투쟁위 지도부에 대한 따끔한 질책도 심심치 않게 나온다. 군민들과의 소통이 부족하거나, 투쟁의 방향을 둘러싼 이견이 있을 경우, 촛불집회와 1318 카톡방은 투쟁위를 아래로부터 견인하고 견제하는 역할을 해왔다.

젊은 엄마들의 힘

1318카톡방이나 촛불집회에서 특히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은 젊은 엄마들이다. 전면에 드러나는 분들은 대개 각종 단체의 장을 맡고 있는 남성들이지만, 투쟁이 이만큼 지속적으로 이어올 수 있었던 배경에는 아이들이 마음껏 뛰어 놀 수 있는 터전을 지켜줘야 한다는 엄마들의 절박함이 놓여 있다. 특히 젊은 부부 중에는 도시가 아닌 자연에서 아이들을 건강하게 키우기 위해 귀농을 한 경우가 많은데, 이들에게 사드 도입은 그야말로 청천벽력 같은 소식이었다. 외부의 뉴스와 담론에도 익숙한 편이고, 소셜미디어에 대한 활용도도 높아 이들은 투쟁을 바른 방향으로 이끄는 나침반이 되고 있다.

젊은 엄마들은 생업과 육아라는 이중고를 감당하면서도 틈틈이 짬 내어 할 수 있는 일들을 묵묵히 하고 있다. 모여서 수천수만 개의 파란나비 리본을 만들고, 음료수와 먹거리를 준비하고, 멋진 솜씨로 손수 사드 반대 티셔츠와 현수막, 고무신을 만들기도 한다. 나비 리본 만드는 일을 소홀히 하면 사드가 올지도 모른다는 불안한 마음으로 이들은 부지런히 몸을 움직이고, 서로를 다독이며, 각자의 자리에서 정성을 다하고 있다. 그만큼 사드 철회가 절실한 것이다.

“한반도 어디에도 안 된다”

성주 사람들은 이번 싸움을 계기로 눈이 트이고, 귀가 트이고, 입이 열리고, 마음이 열렸다고 한다. 타인의 아픔도 이제 비로소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고 한다. 세월호, 강정, 밀양의 아픔이 이제 남일 같지 않다. 이런 와중에 정부는 ‘제3부지’설을 흘리며 내부 분열을 획책하고 있다. 하지만 성주 사람들은 “내가 못 먹는 걸, 어찌 남한테 먹으라고 줄 수 있겠냐”라는 마음으로 한반도 어디에도 사드는 배치해서는 안 된다고 외치고 있다. 내 아이가 소중하듯 남의 아이도 소중하고, 내 고장이 소중하듯 남의 고장도 소중한 법이다. 이 지극히 평범하고 당연한 진리를 중심으로, 오늘도 성주는 싸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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