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주인이 전세금을 몇천만 원 더 올리지 않을까?”, “월세로 전환한다고 하면 어떡하지?”

전세 계약만료를 앞두고 공포에 떠는 지인들이 많다. 전세대란은 집 없는 사람들 대부분이 겪는 현실이다. 전세 가격을 급격히 높이거나 전세 대신 월세로 계약하자는 집주인의 요구로 인해 세입자들은 더 큰 주거비 부담을 감수하거나 더 싼 집을 찾아 떠난다. 더 외곽으로, 더 좁은 집으로.

최근 몇 년 동안 전세금이 많이 올랐다. 2009년부터 2013년까지 전국 아파트 전세 가격의 상승률은 42퍼센트로, 같은 기간 물가 상승률 12.6퍼센트보다 훨씬 높았다.

월세 가구도 많아졌다. 2008년 전세 가구 비율 22.3퍼센트·월세 가구 비율 18.2퍼센트에서 2014년 전세 19.6퍼센트·월세 23.9퍼센트로 역전되었다.

주거비 부담도 커지고 있다. 무주택자의 월소득 대비 임대료 비율(RIR)이 지속적으로 상승했다. 평균적인 주거비 부담도 커졌지만, 계층에 따른 불평등은 더 심각하다. 하위 30퍼센트 이하 저소득층은 소득의 29퍼센트를 임대료로 부담한다. 특히 서울에 거주하는 청년 1인 가구의 경우 RIR 지수가 30퍼센트 넘는 가구가 60퍼센트나 된다.

연합뉴스 자료 사진

공급과 소유 위주의 주택 정책

전세대란은 1980년대 후반에도 사회 문제로 대두됐다. 1990년 한 해만 17명의 세입자가 자살했다. 당시는 경제성장으로 주택 수요가 증가해 주택 가격이 폭등하던 때였고, 활발한 판자촌 재개발로 저소득층이 살 만한 집이 사라졌다.

정부는 주택 공급을 크게 늘리는 것으로 대응했다. 노태우 정부는 주택 200만 호 건설 계획, 신도시 계획을 세웠고 1992년에 목표를 달성했다. 주로 정부가 대규모 공공택지를 시장에 공급하고, 건설회사가 아파트를 건설해 분양하는 식이었다. 이 과정에서 주거 복지라 할 수 있는 저소득층 대상의 영구임대주택과 재개발지역 세입자용 공공임대주택 건립도 시작되었다.

그러나 공공임대주택은 턱없이 부족했고, 대상자도 한정되어 있었다. 정부는 오히려 다세대·다가구주택이라는 민간임대주택의 건설을 촉진했다. 실제 1990년부터 1997년까지 서울시 주택 건설 실적의 58.6퍼센트를 다세대·다가구주택이 차지했다. 따로 대규모 택지를 공급하거나 기반시설을 조성하지 않고 기존의 단독주택지구의 주택을 개조하는 방식으로 소규모 임대주택을 대량 건설한 것이다. 세입자들은 저렴한 민간임대주택을 공급받았지만, 대신 과밀하고 열악한 주거 환경을 감내해야 했다.

부동산 대출의 증가

IMF 외환위기는 주택시장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IMF의 구제금융 조건으로 인해 기업은 부채 비율을 크게 줄여야 했고, 은행 입장에서도 기업보다 위험성이 적은 가계에 대출하는 것을 선호했다. 이때부터 주택은행과 국민주택기금을 통해 제한적으로 제공되던 주택 담보대출이 시중은행 전체로 확장됐다. 주택 금융이 활성화된 것이다.

주택담보대출이 쉬워지니 주택 구매 수요가 늘고, 대출도 더욱 늘어났다. 가계부채는 꾸준히 증가해 1999년 말 214조 원에서 최근 1200조 원을 넘었다. 주택 건축도 계속되면서 주택공급률은 2008년부터 전국 기준 100퍼센트를 넘었고, 서울도 2014년에 97.9퍼센트에 이르렀다. 즉 이제는 가구 수보다 주택 수가 많은 것이다.

이런 조건에서 주택 경기에는 반복적인 투기 열풍이 불었고 그에 따라 급격한 등락이 반복됐다. 정부는 주택을 시장재로 보면서 경기에 따라 대응 정책을 내놓았다. 경기가 과열되면 가격 안정 대책을 발표해 주택 거래 및 보유에 대한 규제를 강화하고, 경기가 침체되면 규제를 완화하고 세금을 면제하는 경기 활성화 대책을 발표하는 식이었다.

임대주택의 월세화

박근혜 정부는 2013년 4.1 부동산 대책 이후로 지속적인 경기 부양 정책을 써왔다. 2008년 금융위기 이후 부동산 경기는 침체 상태로예전과 같은 부동산 가격 상승을 기대하기 힘들었다. 가구 소득도 정체 상태였기 때문에 빚을 내어 주택을 구매하려는 사람들의 수가 줄었다. 반면 전세 가격은 매우 높아졌다. 서울 아파트의 전세가율(전세가/매매가)이 2011년 55.6퍼센트에서 2015년 72.8퍼센트로 상승했다.

최근 전세난의 특징은 월세화다. 전세는 우리나라의 독특한 제도로 임대인(집주인)은 임차인(세입자)으로부터 전세보증금을 받는 대신 주택 점유사용권을 주는 식이다. 집 주인은 부채 부담을 덜고, 세입자는 주거비 부담을 줄일 수 있다. 그런데 지금은 금리가 매우 낮기 때문에 집주인 입장에서는 부족한 돈은 은행을 통해 빌리고, 월세를 받는 것이 훨씬 유리하다. 게다가 시장의 침체로 주택 매매 차익을 기대하기 어려워지니까, 임대 수익을 확보할 수 있는 월세를 더 선호하게 된다.

주거 형태별로 분할된 이해관계

현재 주거의 문제는 절대적인 주택의 부족이 아니라 주거 환경의 불평등이다. 무주택자들은 높은 주거비를 부담할 것인지 열악한 주거 환경을 감내할 것인지를 놓고 양자택일을 하는 실정이다.

정책은 주택 공급과 자가 소유 지원에만 치우쳐 오랫동안 안정적으로 거주할 수 있는 양질의 임대주택은 공급되지 않았다. 전세대란에도 박근혜 정부의 공공임대주택 정책은 계획만 무성했지 실제 비중이 늘어나지 않았다. 2015년 기준 한국의 공공임대주택 비중은 5.9퍼센트 수준이다. 자가 소유 가구가 55퍼센트 수준이므로 나머지 40퍼센트가 민간임대 가구다.

일반 시민들 사이에서도 주거 점유 형태에 따라 이해관계가 분열된다. 집 소유자들은 공공임대주택에 대한 이해관계가 없다. 임대소득을 누리고, 주택 매매 차익을 노리는 다주택자들은 주택 가격을 하락시킬 수도 있는 공공임대주택을 반대한다. 민간임대주택에 거주하는 이들 중 저소득 계층은 공공임대주택에 입주를 원하지만, 중·고소득층은 집을 살 수 있는 금융 지원을 기대한다.

이러한 차이는 2014년 국토교통부 주거실태조사에 뚜렷이 나타난다. ‘필요한 주거지원’ 설문조사에서 저소득층은 공공임대주택 지원이 1위였으나, 중고소득층은 주택구입자금 대출지원이 1위였다.

공동의 주택 대안을 마련해야

이렇게 서로 다른 조건을 가지고 있고, 불평등이 심화된 현재 한국의 주택 체계는 주택에 대한 노동자들의 요구를 분할시킨다. 우리나라에서는 주택 문제에 대해 대중적인 사회운동이 조직된 역사적 사례도 없다. 이러한 곤란을 극복하고 주택에 대한 노동자계급 공동의 요구를 만들려면 무엇이 필요할까.

첫째, 현재의 주택 체계와 정부의 자가소유 지원 정책이 한계에 도달했음을 인식하고, 주택에 관한 관점을 ‘소유’에서 ‘주거권’으로 바꾸어야 한다. 주택공급율이 100을 넘었지만 자가보유율은 늘지 않고 있다. 수도권의 경우 2006년 56.8퍼센트에서 2014년 51.4퍼센트로 줄었다. 한편엔 다주택자가, 다른 한편에는 주택 구입을 포기한 세입자가 늘어나고 있다.

둘째, 민간임대를 선택할 수밖에 없는 세입자들이 다수 존재하기 때문에, 이들의 주거를 안정화할 수 있는 제도적 대안을 요구해야 한다. 정부는 기업형 민간임대의 활성화나 민간임대업자의 세금 감면을 통한 제도화 등 공급자 위주의 대책만 내고 있다. 그러나 과도한 임대료 인상을 제한하고, 임대차 계약과 분쟁 조정 과정에서 세입자의 권리를 강화해야 실질적으로 주택임대시장을 안정시킬 수 있다.

마지막으로 공공임대주택의 확대를 적극적으로 요구할 주체를 만들고 조직해야한다. 대도시에 거주하는 저임금 노동자들이 대표적인 예다. 이들은 불안정한 고용과 임금으로 인해 주택을 구매할 여력이 없어 금융 지원의 사각지대에 머무른다. 이런 주체들을 중심으로 정부가 공공임대주택을 실질적으로 확대하면서 여러 지역에 다양한 유형으로 제공하도록 압박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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