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삼 헛웃음이 나왔다. “1998년 ‘이승복 오보 전시회’는 DJ정권의 기획 작품”제하의 <조선일보> 사설을 인터넷으로 처음 읽었을 때 그랬다. 신문법 제정을 주도해온 언론개혁시민연대(언론연대)를 싸잡아 ‘DJ정권의 기획’으로 몰아붙이는 저 저열한 인식 수준 앞에 굳이 반론을 펼 생각조차 들지 않았다.

촛불1년 연작 칼럼을 블로그에 쓰고 있기에 더욱 그랬다. 하지만 쓴다. 침묵한다면 마치 그것이 진실이어서 그렇다고 오판할 수 있어서다. 명토박아 쓴다. ‘이승복 오보 전시회’가 김대중 정권의 기획작품이다? 전혀 아니다. <조선일보> 사설은 그 근거를 “1990년대 후반 언론노조연맹 기관지 미디어오늘의 기획조정실장을 지냈던 김강원씨”의 진술에서 찾고 있다. 김씨가 “1998년 언론개혁시민연합의 ‘이승복 오보 전시회’는 조선일보를 흠집 내기 위해 김대중 정권 차원에서 기획된 작품”이라고 ‘증언’했단다. 사설이 언론개혁시민연대를 ‘언론개혁시민연합’으로 쓰는 무지는 덮어두자.

▲ 조선일보 5월7일자 35면.
언론개혁시민연대가 ‘DJ정권의 기획’작품이다?

사설만이 아니다. 기사로도 언론연대를 매도했다. 기사는 김씨가 “1998년 가을 언개련을 지원하기 위해 손석춘 당시 언론노조연맹위원장 직무대행과 그 해 7월쯤 윤흥렬 서울신문 전무를 만나, 미디어오늘에 대한 광고를 집행하고 이 광고비 중 일부를 언개련에 지원하는 방안을 마련했다”고 한 발언을 그대로 썼다. 이어 “윤 전 서울신문 전무는 김대중 전 대통령의 장남인 김홍일 당시 의원의 처남으로 김 전 대통령 취임 직후인 1998년 4월 서울신문에 입사해 부사장을 거쳐 스포츠서울21 사장을 역임했다”고 덧붙였다. 사설과 기사 모두 <서울신문>이 <미디어오늘>에 “통상 광고비보다 4배나 비싼 4000만원짜리 광고를 싣기로 했고, 그중 2000만원을 김주언 언개련 추진위원장에게 직접 전달했으며 이 자금 중 일부가 ‘이승복 오보 전시회’에 쓰였다”는 김씨 발언을 부각했다.

▲ 조선일보 5월7일자 8면.
과연 그러한가? 아니다. 김강원씨는 전임자인 이형모 위원장의 특채형식으로 언론노련에 합류했었다. 내가 위원장 직무대행을 맡았을 때, 그는 <미디어오늘>의 광고수입을 책임지고 있었다. 그가 언론노련의 전체 상황이나 흐름을 파악할 수 있는 위치는 누가 보더라도 결코 아니었다. 분명히 말한다. <조선일보> 기사와 달리, 나는 김씨와 함께 <서울신문> 윤흥렬 전무를 만난 사실이 없다. 내가 윤 전무를 만난 뒤 김씨에게 <서울신문> 광고를 수주해오라고 지시했을 뿐이다.

서울신문 윤 전무도 만나고 조선일보 방상훈 사장도 만나

그렇다면 나는 왜 <서울신문> 윤 전무를 만났을까? <조선일보> 주장대로라면 그가 정권의 실세이기 때문이다. 윤씨가 정권의 실세였는지도 의문이지만, 당시 나는 <미디어오늘>의 열악한 재정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각사 언론노조 위원장들에게 소속사 경영진을 만나게 해달라고 요청했다. <미디어오늘>에 광고를 수주하기 위해서였다. 윤 전무만 만난 게 아니었다. 그 과정에서 <조선일보> 방상훈 사장도 만났다. 방 사장과 만나 나눈 이야기도 내 취재수첩에 보관되어 있다.

언론노련 책임자로서 내가 가장 힘 쏟던 사업은 언론연대의 결성이었다. 언론연대가 ‘정권의 하수인’이라는 <조선일보> 사설은 명백한 명예훼손이다. 1995년 2월 언론노련은 향후 언론운동의 방향으로 언론개혁연대기구를 제시했었다. 바로 내가 정책기획실장으로 일할 때 입안했고, 시민사회단체와 공개토론회에서 발제했다. 1998년 8월 언론연대 공식출범 때 창립공동대표로 창립선언문을 쓸 때까지 정치권의 그 누구와 ‘논의’조차 한 바 없다. 오보전시회가 김대중 정권이 기획했다는 주장도 날조다. 김씨는 언론연대가 어떻게 운영되는 지 알 수 있는 위치가 전혀 아니었다.

미디어오늘은 물론 언론연대 창립도 정치권과 전혀 무관

당시 언론노조는 언론연대 결성에 가장 많은 재정을 책임질 수밖에 없었다. 중앙위원회 의결을 거친 언론노조의 핵심사업이었기 때문이다. 창립 분담금도 가장 많이 냈다. 가장 선의로 김씨를 이해한다면, 언론노조 수입에서 언론연대에 지출할 분담금 처리 과정을 김씨가 주관적으로 해석할 수 있다. 창간 때는 물론 초창기 <미디어오늘>에 언론노조는 대폭 조합비를 지원했다. 당시 <미디어오늘>과 언론노조는 살림살이를 사실상 함께 하고 있었다. 이미 12년이 지났기에 언론노조의 언론연대 창립 분담금이 정확히 얼마인지 지금 기억하고 있지 못하다. 다만 내가 당시 언론사 사장들을 만나며 <미디어오늘> 전면광고를 부탁했을 때, 광고비는 거의 동일했던 것으로 기억하고 있다.

내가 <한겨레>로 복귀한 뒤, 이듬해 김씨가 횡령 혐의로 해임됐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당시 난 김씨로부터 어떤 ‘구명’ 요청도 받은 바 없다. 그가 전임 위원장의 주선으로 언론노조에 들어왔지만, 짧은 시간이나마 함께 일했던 사람이기에 마음이 아프기도 했다. 그가 지금 12년 만에 <미디어오늘>과 <언론연대>를 싸잡아 매도하고 나섰다. 그가 ‘뉴라이트 길’을 걷는다는 말도 처음 들었다.

기실 문제는 그가 아니다. <조선일보>다. 언론운동이 특정정권의 기획으로 만들어지고 운영되었다는 인식 수준으로 과연 저 신문이 온전히 신문을 만들 수 있을까? 언론개혁의 정당성과 절실함을 새삼 확인시켜준다.

※ 이 글은 필자의 동의를 얻어 필자 블로그 ‘손석춘의 새로운 사회’에서 퍼온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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