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년 전 경쟁이 치열한 제과시장에 허니버터칩 돌풍이 불었다. 색다른 맛이라는 입소문에 소비자들은 너도나도 상점을 찾았다. 하지만 허니버터칩을 구경하기는 쉽지 않았다. 공급량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어느 순간 상점은 허니버터칩에 다른 과자를 묶어서 팔기 시작했다. 허니버터칩을 사고 싶으면 다른 과자를 함께 사라는 것이다. 허니버터칩을 맛보고 싶었던 소비자들은 내키지 않았지만 묶음상품을 살 수밖에 없었다. 물론 이런 판매방식은 위법하다. 개별상품을 구매하려는 소비자의 선택권을 제한하기 때문이다.

개별상품을 묶어서 판매하는 결합판매가 제과업계에만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방송통신 융합에 따라 미디어업계에서도 TV, 인터넷, 인터넷전화, 모바일 등을 묶어서 판매하는 이른바 결합상품 판매가 보편화됐다. 소비자 입장에서 결합상품이 반드시 나쁜 것만은 아니다. 두 가지 이상의 상품을 동시에 필요로 하는 소비자는 결합상품을 구매하는 것이 더 유리할 수 있다. 통상 개별상품보다 결합상품에 더 높은 할인율이 적용되기 때문이다. 기업 입장에서도 개별상품 판매보다는 결합상품 판매가 더 유리할 수 있다. 개별상품 판매보다 마케팅 비용을 절감하여 더 많은 할인율을 제공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더 많은 소비자를 한꺼번에 자사 고객으로 묶어둘 수 있기 때문이다.

연합뉴스 자료사진

따라서 결합상품을 둘러싼 이슈는 주로 공급자 시장에서 발생한다. 결합상품 시장이 커질수록 결합상품을 구성할 수 없는 기업은 경쟁력을 상실하여 시장에서 도태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케이블SO의 경우 케이블망을 기반으로 TV, 인터넷, 인터넷전화는 제공할 수 있지만 모바일을 제공하기는 어렵다. 통신사의 네트워크를 임차하는 알뜰폰 사업을 통해 모바일 시장에 진입하고 있지만, 이미 통신사가 강력한 브랜드 파워와 마케팅 역량을 구축해 놓은 상황에서 케이블SO가 결합상품 시장을 주도하기란 쉽지 않다. 반면, 통신사는 기존 통신상품에 IPTV라는 방송상품을 결합하여 유료방송시장을 빠르게 장악해 왔다. 특히, 결합상품 할인율을 방송상품에 집중시켜 통신상품에 가입하면 방송상품은 공짜라는 식의 마케팅 전략을 구사해 왔다.

이에 따라 2016년 4월 방송통신위원회는 ‘결합판매의 금지행위 세부유형 및 심사기준’ 개정안을 의결하여 결합상품 구성상품별 할인액을 구분하지 않는 행위, 구성상품 간에 현저히 차별적인 할인율을 적용하는 행위를 금지하였다. 또한 모바일 등 인가서비스를 타 사업자에게 제공할 경우 사업자 유형에 관계없이 동등한 조건으로 제공하도록 했다. 이는 결합상품 할인율을 특정 구성상품에 몰아서 적용하지 못하게 하여 공짜 마케팅을 방지하고, 결합상품 구성역량이 부족한 사업자의 경쟁력을 보완해주기 위한 조치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제도적 장치만으로 유료방송시장이 통신시장에 흡수되어 가는 상황을 반전시키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유료방송시장은 이미 통신사의 IPTV를 중심으로 재편되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 CJ헬로비전의 합병 시도는 이러한 흐름을 단적으로 드러낸 사건으로 볼 수 있다. 유료방송시장이 결합상품을 중심으로 재편되는 과정에서 주도권을 확보하기가 어렵다는 판단 아래 SK텔레콤과의 인수합병을 통해 출구전략을 모색한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인수합병이 무산된 상황에서 CJ헬로비전을 비롯한 케이블SO는 원케이블(one cable)을 통해 지역사업자의 한계를 극복하고, 서비스 품질과 소비자 편익을 강화하는 등 독자적 생존방안을 모색하고 있다. 그러나 결합상품 시장에서 방송상품 강화만으로 현실을 타개하기에는 한계가 있어 보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부는 우선 공정경쟁 환경을 조성하기 위하여 결합상품 시장에서 방송상품에 대한 공짜 마케팅을 적극 차단해야 한다. 결합상품의 구성상품별 할인율이 동등하게 적용되고 있는지 철저히 감시하여, 결합상품 시장이 요금할인, 경품제공 경쟁에서 서비스품질 경쟁으로 전환되도록 해야 한다. 나아가 유료방송사업자의 소유・겸영, 사업권역 규제완화, 시장지배적사업자에 대한 결합상품 판매제한 등의 방안도 모색할 필요가 있다. 결합상품 구성이나 판매조건이 동등하더라도 기업규모, 브랜드 인지도, 마케팅 역량 등에서 통신사와 방송사 간에는 현격한 차이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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