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이 중헌디’라는 영화의 대사가 회자되는 세상이지만 정작 뭐가 중요한지 말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워낙 많은 게 문제여서 무엇부터 어떻게 바꿔야 할지 정하는 것부터가 불가능한 지경이기 때문이다. 대통령의 국정 운영을 보고 있노라면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이러는 거냐고 묻고 싶어진다. ‘설마’가 현실이 되는 나날들 앞에서 ‘정치’는 ‘절망’의 다른 이름이 되고 있다.

지난주의 첫 번째 ‘설마’는 아무리 그래도 대통령이 국회가 ‘부적격’으로 평가한 후보자들을 아무런 조치나 해명도 없이 임명하겠느냐는 거였다. 야권은 분명한 ‘싸인’을 줬다. 조윤선 문화체육관광부 장관까지는 인정할 수 있겠으나 김재수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은 인정할 수 없다는 거다. 과연 김재수 장관의 혐의는 ‘화려하다’고 평할 수 있는 정도였다. 농림부 출신 고위공무원이 농협과 CJ를 통해 90평대 아파트 특혜를 받고 노모를 차상위 의료급여수급자로 등록된 상황을 방치한 것은 과거의 사례로 비추어 보면 분명한 ‘낙마 사례’이다. 그러나 박근혜 대통령은 국회가 무슨 지적을 어떻게 하든 개의치 않고 임명을 강행했다.

대통령이 부적격 장관 후보자들을 임명 강행한 것은 제도의 차원에서도 문제다. 청와대 인사검증시스템과 국회의 인사청문회가 모두 무력화된 것이기 때문이다. 인사청문회의 취지 자체가 퇴색됐다. 대통령은 인사청문회가 필요 없다고 생각하는 것인지 의문이다. 청와대의 인사검증시스템이 작동하지 않는 것도 대통령 책임이다. 인사검증은 참모들이 실무 책임을 지는 것인데 대통령은 그들을 두둔하기만 할 뿐 명백한 잘못에 대해서도 눈감는 일이 많기 때문이다. 비선 실세 의혹과 문고리 3인방 문제에 대해서도 그랬고 이번 우병우 민정수석 관련 의혹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였다.

조윤선 신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5일 오전 서울 동작구 국립서울현충원을 참배한 뒤 야당이 인사청문 결과 내놓은 '부적격' 의견과 관련한 기자의 질문을 받고 있다. (연합뉴스)

우병우 민정수석 문제는 지난주의 두 번째 ‘설마’였다. 검찰 특별수사팀이 우병우 민정수석과 이석수 특별감찰관을 동시에 수사하겠다고 할 때부터 불공정 수사가 예견됐다. ‘우병우 무죄, 이석수 유죄’라는 결론이 정해져있는 것 아니냐는 얘기였다. 보수언론의 보도를 보면 이미 그런 냄새(?)가 난다. 5일 동아일보의 단독보도를 보면 검찰은 조선일보 기자와 이석수 특별감찰관이 지난달 3, 4 등 초순에서 중순까지 수차례 통화를 한 흔적을 찾아냈고, MBC가 지난달 16일 보도한 통화는 지난달 초에 이뤄졌다고 보도했다. 또, 동아일보는 7월 하순을 전후해서도 양측의 통화기록이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고 보도했다. 보도의 맥락을 볼 때 결국 검찰이 조선일보와 이석수 특별감찰관 사이의 커넥션(?)을 확인한 것은 8월 3~4일 경의 통화 내역 등인 것으로 보인다.

주목해볼만한 것은 이 시기에 이 문제와 관련한 또 다른 사건이 벌어졌다는 거다. 8월 3일 경찰은 청와대 정무수석실 치안비서관이 우병우 민정수석 처가 부동산 거래 의혹 유포자를 찾아달라는 고소장을 냈다는 사실을 공개했다. 당시 우병우 민정수석 처가 부동산 거래 의혹의 최초 유포자가 청와대 관계자라는 소문이 ‘지라시’ 등을 통해 돌았는데, 그게 자신이 아님을 밝혀달라는 취지다.

경찰은 고소장이 접수된 지 하루 만인 7월 30일 대기업 홍보실 관계자 모 씨를 소환해 조사했고 지난달 2일 카카오톡 서버를 압수수색 했다. 대상은 ‘청와대 관계자에게 해당 내용의 메시지를 보낸 사용자부터 최초유포자까지 정보 일체’였다. 사안의 특성상 그럴 수밖에 없었겠으나 범위가 상당히 넓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다. 대기업 홍보팀 관계자가 언론과 긴밀한 연관관계를 맺고 있다는 점까지 고려하면 조선일보와 이석수 특별감찰관과의 관계에 대한 실마리가 이 시기에 수사기관에 포착된 것이 아니냐는 추측도 가능하다. 즉, 청와대가 우병우 민정수석 관련 의혹 상황을 ‘관리’하려 했다면 이미 이 때 구체적 계획이 세워진 것 아니냐는 추론도 해볼 수 있다.

죽죽 뻗어나가는 이석수 특별감찰관에 대한 수사와는 달리 우병우 민정수석 관련 수사는 ‘불안불안’이다. 지난 주 각 언론은 우병우 민정수석 처가 화성 땅을 차명보유하고 있다는 의혹의 주인공인 이 모 씨가 검찰 수사가 시작되기 전 이미 잠적했다고 보도했다. 문화일보 등은 이 모 씨가 참고인 신분이라 잠적했을 경우 검찰이 어찌해볼 방도가 없다는 법조계 인사의 주장을 지면에 싣기도 했다. 검찰은 우병우 민정수석의 처가 쪽 인사들과 이 모 씨의 금융계좌 추적을 실시하고 있다고 하지만 성과를 거둘 수 있을지, 이를 두고 우병우 민정수석의 책임까지 물을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이석수 특별감찰관(왼쪽)과 우병우 청와대 민정수석 (연합뉴스)

언론은 하나 같이 검찰이 최대의 위기에 빠졌다고 지적하고 있다. 우병우 민정수석 의혹을 제대로 수사하는 것도 부담스럽고, 그렇다고 허술하게 수사하는 것도 어렵다는 얘기다. 전자의 경우는 검찰 수뇌부가 박근혜 정권의 ‘철퇴’를 맞을 가능성이 커지고, 후자의 경우는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 등의 도입 논의로 이어져 검찰 조직이 치명상을 입을 가능성이 커진다.

실제 새누리당 내 비박계 인사들까지 공수처 신설 논란에 불을 붙이고 있는 상황은 예사롭지 않다. 5일 MBC라디오 <신동호의 시선집중>에 출연한 김문수 전 경기도지사는 “검찰이 과다한 권한을 독점적으로 가지고 있어 자기 감찰이 안 된다”고 지적했다. 여기서 ‘과다한 권한’에는 검찰의 기소독점권이 포함된다. 공수처 신설을 통해 검찰 조직을 유지하는 근간 중 하나인 기소독점주의를 깨트려야 한다는 점을 분명히 한 셈이다. 공수처 신설에 대해서는 지난 대표 선거에 출마했던 주호영 의원과 정병국 의원, 김용태 의원 등 비박계 일부가 이미 동의를 표한 바 있다. 비박계 인사들의 다수는 우병우 민정수석의 퇴진을 언급하고 있기 때문에 검찰 수사가 미진할 경우 야권과 함께 공수처 신설 여론에 본격적으로 힘을 싣게 될 가능성이 크다.

사법기관의 부패 역시 공수처 신설 여론에 불을 붙이고 있다는 점도 짚어볼 대목이다. 지난주의 세 번째 ‘설마’가 현실이 됐기 때문이다. 지난 2일 검찰은 정운호 전 네이처리퍼블릭 대표에게 거액의 금품을 받고 유리한 판결을 내린 혐의로 김수천 인천지법 부장판사를 구속했다. 현직 부장판사의 충격적인 부정이 현실로 드러나자 양승태 대법원장이 6일 대국민 사과를 하는 사태를 피할 수 없게 됐다. 언론은 ‘법조 3륜이 모두 썩었다’는 취지의 보도를 하고 있다. 한겨레는 5일 1면에 고교 친구 사업가에게 돈을 받고 검사에게 청탁을 한 ‘스폰서 부장검사’의 사례를 보도했다. 결국 정치권의 여론은 공수처 신설에 기울어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그러나 공수처 신설이 결과적으로 검찰을 비롯한 사정기관의 부패를 막을 수 있을 것인지는 의문이다. 공수처에서 책임을 맡을 사람들이 어느 날 하늘에서 깨끗한(?) 상태로 떨어지는 것도 아닐 뿐더러, 제도를 만들어도 이를 취지에 맞게 이용하지 않는다는 게 현 정권의 특징이기 때문이다. 일부에서 김영란법의 필요성을 인정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 우려를 제기하는 것과 비슷한 맥락이다. 송희영 전 조선일보 주필의 사례를 통해 우리는 김영란법이 없어도 정권이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언론사 간부의 비리를 자신들의 권력 유지를 위해 유용하게 써먹을 수 있다는 걸 알 수 있게 됐다. 영화 <내부자들>을 보며 ‘설마’했던 것들이 이런 식으로 현실로 드러났다. 이런 상황에서 정권이 김영란법을 악용해 언론을 옥죌 수 있다는 우려는 근거가 없는 게 아니다. 문제는 그 ‘우려’가 언론이 부패했다는 걸 전제해야만 성립 가능하다는 거다. 정치권, 수사기관, 사법부, 언론이 모두 부패 의혹을 받는 판국에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

이러니 ‘헬조선’이라고들 하는 것 아닌가. ‘헬조선’이란 표현을 둘러싼 냉소 중에는 ‘이 놈이나 저 놈이나 모두 썩었기 때문에 문제를 해결할 가능성 자체가 봉쇄됐다’는 것도 있다. 그러나 그럼에도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의지와 노력(‘노오력’이 아니라)이 있다면 엉킨 실타래를 결국에는 풀어낼 수 있다는 거다. ‘똥 묻은 개가 겨 묻은 개 나무란다’는 차원이 아니라 권력이 의지를 어떻게 가지느냐의 문제에서 해결책이 나올 수밖에 없다는 현실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그런데 권력을 독점하고 있는 대통령은 문제를 해결할 생각이 없다. 권력의 문제는 정치의 문제이고, 정치는 다시 책임과 윤리의 문제를 묻는다. 결국 우리가 이런 무책임한 권력을 다시 만들어선 안 된다는 게 ‘설마가 현실이 되는’ 오늘의 결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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