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기자회견장

시원시원한 얼굴, 거침없는 몸짓, 당대 최고의 춤꾼이자 DJ Koo로 테크토닉의 진수를 보여주었던 구준엽이 ‘클럽’을 박차고 나왔다. 들썩거리고, 소란스러운 것이 그의 제 옷이라 생각했는데, 그는 ‘마약’이라고 하는 한국 사회의 거대한 장벽을 마주하고 기자들 앞에 섰다. 모든 걸 떠나서, 너무나 눈이 부셔 모든 것이 정지될 것만 같았던 더위가 매서웠던 날에 어울렸던 풍경은 아니었다.

기자들이 들고 있는 카메라의 뒤통수만 들여다보며, 마이크 없이 생 목소리로 기자회견에 나선 구준엽의 이야기를 듣고자 귀를 쫑긋거려봤지만, 그의 메시지를 제대로 전달받지는 못하였다. 그이가 뱉은 ‘연예인’ ‘시민’ ‘인권’ ‘자유’ ‘클럽’ 등의 단어를 주워 재구성하기도 바쁠 만큼 기자가 많았고, 자리는 좁았다. 그가 20여분 만에 자리에서 일어나자 기자들의 움직임은 더 번잡스러웠다. 초보기자인 나는 한동안 그 자리에 서서 따가운 햇살이 뇌 속으로 질주하는 듯한 멀미를 느꼈다. 연예인과 마약, 구준엽의 기자회견이 갖는 시사점을 어떻게 풀이해야 하는가에 대한 피로감이 밀려오는 순간이다.

2. 구준엽, 연예인의 인권

▲ 5월 6일 가수 구준엽이 마약 조사 관련하여 기자회견을 열었다 @ 오마이뉴스
“연예인이기 이전에 대한민국의 한 사람이고 한 가정의 아들입니다. 그동안 속으로만 삼켜왔던 불합리적인 대우와 오해, 루머, 수치심을 더 이상 참지 않기로 했습니다.” “이번 사건을 통해 나의 인권, 대한민국 국민으로서의 인권을 보호받고 싶습니다. 저뿐만 아니라 많은 후배들, 선배들도 이런 추측 수사에 고통을 받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그는 2002년, 2008년 마약 검사에 이어 2009년에도 한 차례 곤욕을 치렀다고 한다. 주차장에서 소변검사와 체모검사 등 마약 수사를 받았으니, 평범한 인간으로서 그가 느꼈을 치욕감을 짐작해볼 만도 하다. 비단 그가 마약을 한 사실이 없다고 해서만은 아니다. 강압적이며 반인권적인 경찰 수사의 후진성 앞에 모든 인간은 ‘평등’하다. 더욱이 한국 경찰이 강조하는 과학수사는 누군가 그랬듯이 ‘가학수사’에 불과하다는 것을 우리 모두는 알고 있다. 여하튼 그는 연예인 마약 사건이 터질 때마다 용의선상에 올랐었고, 그때마다 무죄를 입증받기 위해 경찰에게 소변과 체모를 전달해야만 했다.

그는 인간이라면 응당 누려야 할 가장 기본적인 권리가 공권력에 의해 처참하게, 그것도 아주 쉽게 박탈되는 과정을 경험해야 했다. “지렁이도 밟으면 꿈틀댄다”는 그이의 진부한 표현은 전혀 상투적이지 않았다. 세 번이나 걸쳐 무고한 자신을 ‘가학’한 경찰에 대한 그의 원망은 이미 절정을 지나있었다. 그의 말대로 연예인도 한 사회를 구성하는 보편적 집단임에도 불구하고, ‘마약’ 사건에 있어서 연예인은 특별한 잠재적 범죄자로 취급하는 현실은 그 자체로 충분히 후지다.

누구도 연예인이 마약을 손쉽게 접하는 집단이라 감히 말할 수 없다. 구준엽의 “클럽에 간다고 마약을 하는 것은 아니다”라는 항변처럼 연예인-클럽-마약으로 이어지는 사회 ‘악’의 연결고리는 ‘과학수사’를 설명하기에 너무 허술한 증거다. <10asia> 강명석 기자의 말처럼, “어렸을 때 공부 못하는 애가 나쁜 짓 할 거라고 믿는 교사들이 정말 싫었는데…”라는 코멘트에 우리는 공감해야 한다. 연예인을 여전히 소수자로 만드는 사회적 인식의 허술함과 권력의 권위를 내세워 연예인을 다루는 경찰의 천박함이 이루는 앙상블은 백주대낮에 공공연히 개인의 인권을 유린할 수도 있다.

3. 구설수에 대처하는 연예인들의 자세

‘마약과 연예인’. 그 자체로 얼마나 무시무시한가. 어디 그뿐인가, 마약하면 해롱거리고, 마약에 연루되어 해롱거리다 자기 스스로가 자신의 무덤을 파는 누군가를 지켜보는 재미도 있다. 신비의 대상, 이미지를 수단으로 하는 연예인이 해롱거리는 마약을 했다는 것을 관음하는 ‘뒷담화’는 얼마나 짜릿한 재미인가 말이다.

구준엽은 그 수군수군거리는 소리가 얼마나 거슬렸을까. “기자회견을 한다는 말에 지인들은 ‘세 번이나 조사를 받았다고 밝히면 마약과 관계가 있는 것으로 오인하니까 밝히지 말라’고 만류했습니다. 무섭습니다.” 그는 정말 무서워했다.

연예인 스캔들은 단연 가장 잘 팔리는 뉴스다. 연예인의 희(喜)보다는 노(怒)가, 낙(樂)보다는 애(哀)가 잘팔리기 마련이다. 연예인의 결혼은 손태영-권상우 정도의 스펙터클을 가져야 인터넷 검색어 순위 1위로 단박에 등극할 수 있지만, 이혼은 옥소리-박철 정도만 되도 두고두고 세간의 관심을 끌 수 있다. 연예인을 둘러싼 스캔들은 연예뉴스가 활성화되면 될수록 더욱 자극의 강도가 세진다. 그렇지 않으면 현실적으로 살아남기 힘들다.

결국 스캔들이 터지면 연예인들이 대체적으로 ‘침묵’하는 악순환이다. 스캔들 앞에서 연예인은 더욱 힘없는 존재로 전락하기 일쑤기 때문에 경우에 따라서 종종 어색한 장면들도 나온다. 장자연 리스트를 둘러싼 구설수에 휘말린 힘 있는 이들의 대처 방법에 비하면 연예인들의 대처는 얼마나 초라한 것인가.

오로지 예외가 있다면, 마약 복용과 관련한 스캔들뿐이다. 마약 관련해서는 연예인들은 필사적으로 결백을 주장했다. 자칫 그 자체로 생명이 끝날 수 있기 때문이다. 과거 신하균, 이소라, 김민종 등은 자처해서 경찰조사를 받기도 하고, 기자회견 등을 통해 무고함을 주장하였다. 구준엽 역시 마찬가지였다. 허나 구준엽은 원망과 억울함만을 호소하지는 않았다. “변호사를 통해 인권위원회를 비롯해 관계 부처에 문의를 하고 있습니다. 저의 인권을 돌려받고 싶은 것뿐입니다.” 그는 단호하게 개인의 혹은 연예인의 대변자로 권리를 찾겠다며 팔을 걷어올렸다. 구설수의 모든 것을 파헤치는 ‘무릎팍 도사’의 힘을 빌리지 않은 그의 용기에 난 더 묻지않고, 지지를 보낸다.

4. 서로 딴 소리 하는 미디어

구준엽은 말했다. “며칠 전 어머니와 같이 TV를 보는데 뉴스에서 여러 연예인의 마약 사건이 보도되고 있었습니다. 어머니께서 저에게 ‘너 또 검사 나오는 것 아니냐’고 물으셨고, 걱정하실까봐 ‘검사 나오면 또 하면 되죠 뭐’라고 말씀드렸습니다.” 구준엽은 세 번째 마약 검사를 예측하였고, 그의 ‘걱정’은 ‘현실’로 나타났다.

결국, 그는 정말 하기 싫었을 결백과 인권을 주장하는 기자회견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 오늘 그의 주장에 화답이라도 하듯이 그를 둘러싸고, 표정 하나하나 놓칠까 노심초사하였던 기자들은 무얼 듣고 싶었던 것일까? 기자회견이 끝나기도 전에 그의 억울함과 주장이 담긴 기사들과 ‘물을 마시거나’ ‘입술을 다물거나’ 한 사진들이 인터넷에 업로드 되었다.

미디어는 일단 구준엽의 억울함을 충분히 들어주었다. 기자회견문에 담긴 사연과 기자회견장에서 나온 질문을 비롯하여 마약 조사와 관련한 그이의 심경을 담아내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허나 최근 연예인 마약 사건과 관련한 몇 개의 기사가 눈에 밟힌다. <조선일보>는 지난 4월29일자 신문에 “‘꽃남’ 배우도 환각 파티”라는 제목의 기사를 통해 서울경찰청 마약수사대가 “남자 탤런트 A씨와 신인가수 B씨도 마약파티를 한 정황을 확보하고, 혐의 확인에 나섰다”며 “A씨는 모델 출신이며, 연기자로 전업해 최근 인기리에 끝난 TV 드라마 <꽃보다 남자>에 출연했다”고 전하였다. “경찰은 파티에 A씨와 B씨 등 연예인 2~3명을 포함, 최소 14명이 참가했다는 진술을 확보했다. 이들 마약파티 참가자에 대한 조사가 진행되면, 투약 관련자는 더욱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고 덧붙였다.

<조선일보>의 기사는 인터넷 언론매체로 점차 확대 재생산되었고, 지금도 동명이인 ‘해프닝’이라는 주장과 ‘꽃남의 그이는 누구’라는 기사가 맞서고 있다. 게다가 “일각에서는 이번 사건에 연루된 배우와 비교될 만큼 유명 스타도 연루된 것으로 관측하고 있다”는 기사까지 나오고 있으니, 이쯤 되면 미디어의 책임을 묻지 않을 수 없다. ‘사실’ 조차 싸우고 있지 않은가. 경찰의 무능함과 미디어의 영악함이 적절히 만나 잘 비벼지고 있는 모양새에 불과할 뿐이다.

▲ 마약 연루 연예인, 동명이인 ‘해프닝’이라는 주장과 ‘꽃남의 그이는 누구’라는 기사가 맞서고 있다 ⓒ네이버 캡쳐
5. 다시, 클럽으로…

물론, 구준엽이 연예인의 인권을 발언한 사실만으로 그를 연예인 인권을 수호한 ‘영웅’으로 평가할 수는 없다. 사실 그는 어느 인터넷 매체의 1문1답에서 “법적 대응보단 내 인권 보호만 하고 싶다. 조사나온 분들은 징계하고 싶은 생각은 없다. 다만 내 인권만 보호받고 싶을 뿐이다”라고 밝혔다. 허나 자신의 무고함을 주장하는 기자회견이었다 하더라도 연예인의 인권을 대변하고, 대책 없는 수사로 피해를 받는 가족들에게 그는 또 무엇이 되었을까? 모든 사회적 발언은 지극히 개인적인 것에서부터 출발한다.

작은 소리로밖에 들을 수 없었던 기자회견장에서의 그의 말, ‘연예인’ ‘시민’ ‘인권’ ‘자유’ ‘클럽’ 등의 단어를 주워 재구성해 보니, 결국 남는 건 공권력의 후진성, 위협받는 연예인의 인권, 구설수에 대한 미디어의 확대 재생산의 오래된 문법이다. 오랫동안 알고 지내던 반갑지 않은 무엇 말이다.

오늘 “인권을 보호받고 싶은” ‘구준엽’을 만났다. 그가 어서 빨리 클럽에서 맘 놓고 즐길 수 있다면 그저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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