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글은 영화의 일부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이 영화를 만든 월트디즈니는, 애니메이션이든 영화든 작품을 만들 때 핵심적인 모토를 가지고 출발한다. 그 핵심적인 모토는 ‘가족주의’다. 가족주의를 해체하려 하거나 와해하려는 세력에게는 응징을 가하고, 소원해진 가족이 있다면 역경을 극복한 다음에 가족주의가 더욱 단단해지는 식으로 가족주의 서사를 강화하는 특징을 갖는다.

이번 <거울나라의 앨리스> 또한 이런 월트디즈니의 모토처럼 전작보다 가족주의가 강화된 특징을 갖는다. 앨리스가 이상한 나라로 다시 돌아온다. 그런데 이번에는 모자장수가 좀 이상하다. 알고 보니 예전에 죽은 가족이 그리워 심한 우울증을 겪은 결과다. 이에 앨리스는 절친인 모자장수를 위해 시간을 관장하는 ‘시간’이 그토록 아끼는 크로노스피어를 훔쳐 과거로 날아간다. 모자장수가 그토록 아끼는 가족들이 죽음을 맞이하기 전의 시간으로 가서 과거를 되돌리기 위함이다.

영화 <거울나라의 앨리스> 스틸 이미지

가족주의는 하나 더 있다. 하얀 여왕과 붉은 여왕의 과거다. 시간이 아끼는 크로노스피어를 노리는 사람은 앨리스 말고도 한 명이 더 있는데, 붉은 여왕 또한 크로노스피어를 노리고 있었던 것이다. 붉은 여왕 역시 자신의 과거를 되돌리고 싶어 하기 때문이다. 크로노스피어를 노리는 앨리스와 붉은 여왕, 둘 중 누가 과거의 역사를 자신이 바라는 대로 바꿀 수 있을까.

과거를 돌려놓고자 하는 시간여행에서 영화가 묘사하는 패턴은 크게 두 가지로 구분된다. 하나는 <터미네이터> 시리즈처럼 과거가 바뀌면 현재 또한 바뀔 수 있으리라고 믿는 관점이다. 스카이넷이 인간 지도자 존 코너의 어릴 적으로 돌아가 존 코너와 그의 어머니를 살해하려는 의도는 과거를 바꿔놓으면 현재의 기계가 인간을 완전히 제압하리라는 믿음 때문이다. 시간여행의 또 다른 관점은 결정론적 시각이다. 과거를 바꾸고 싶지만 한 번 일어난 과거를 ‘관찰’만 할 수 있을 뿐 바꾸지는 못한다는 관점이다. <거울나라의 앨리스>에서 일어나는 시간여행은 이 두 패턴 가운데 하나다.

영화 <거울나라의 앨리스> 스틸 이미지

붉은 여왕은 콤플렉스가 있다. 머리가 크다는 콤플렉스다. 한데 붉은 여왕의 머리가 커진 것과 성격이 포악하고 비뚤어진 것은 나름 상관관계가 있다. 붉은 여왕과 하얀 여왕이 어릴 적에 벌인 다툼이 붉은 여왕의 머리를 크게 만든 동인으로 작용하고 이에 붉은 여왕의 심성이 비뚤어졌을 것이라는 추론이 영화 안에서 가능하다.

한데 <거울나라의 앨리스>는 영화의 결말을 통해 붉은 여왕의 콤플렉스를 단숨에 해소하려는 ‘조급증’이 엿보인다. 사람의 성격이 형성되기 위해서는 트라우마 뿐만 아니라 성장 과정에서 일어나는 복합적인 과정 또한 고려해야 한다.

그렇지만 영화는 붉은 여왕의 성격 파탄이 일어난 원인을 하얀 여왕과의 다툼에서 벌어진 트라우마라는 환원주의(還元主義)적인 사고관으로 단순화하고 만다. 어린 시절의 트라우마가 성인기의 화해 하나로만 해결되리라고 믿는 디즈니의 단순한 환원주의적인 관점은, 가족주의를 강화하기 위해 어린 시절의 트라우마만 해결되면 붉은 여왕과 같은 악인도 가족주의라는 용광로 안에서 개과천선할 수 있을 것이라는 오류를 보여준다.

늘 이성과 감성의 공존을 꿈꾸고자 혹은 디오니시즘을 바라며 우뇌의 쿠데타를 꿈꾸지만 항상 좌뇌에 진압당하는 아폴로니즘의 역설을 겪는 비평가. http://blog.daum.net/js7kei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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