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정부가 미국과 쇠고기 협상을 추진할 당시 미 쇠고기 안전성에 논란이 거세지자 국민들을 향해 약속했던 부분을 아직도 이행하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광우병국민대책회의 전문가자문위원회 소속 박상표 국민건강을위한수의사연대 정책국장은 6일 오후 3시 서울 종로 기독교회관에서 열린 ‘광우병국민대책회의 1주년 기자회견’에서 촛불 이후 1년, 한국의 광우병 위험 예방정책을 평가하며 “이명박 정부는 대국민 약속을 위반했다”고 주장했다.

▲ 광우병국민대책회의가 6일 오후 3시 서울 종로 기독교회관에서 ‘광우병국민대책회의 1주년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송선영
◇ 이명박 정부, 대국민 약속 위반

지난해 정부는 미국산 쇠고기 협상과 관련해 “일본, 대만 등도 국제수역사무국(OIE) 기준에 맞춰서 미국산 쇠고기 개방을 협의할 것”이라며 “새로운 특정위험물질(SRM)이 발견된다든가, 대만이나 일본 등 다른 나라와의 협상에서 우리와 다른 조건이 담겨질 때는 경위를 따져보고 당연히 개정을 요구할 수 있다”고 밝힌 바 있다.

정부는 또 “정부가 30개월 이상의 쇠고기를 수입하기로 하면서 미국이 ‘동물사료 규제 강화 조치’를 약속했다”고 밝혔다. 추후에 정부가 ‘완화’를 ‘강화’로 오해한 채 서명을 한 것이 새롭게 밝혀져 당시 많은 논란이 일기도 했다.

▲ 광우병국민대책회의 전문가자문위원회 소속 박상표 국민건강을위한수의사연대 정책국장. ⓒ송선영
그러나 현재 한국을 제외한 일본, 대만, 홍콩, 중국은 국제수역사무국 기준을 거부하고 있다.

박상표 정책국장은 “미국의 주요 쇠고기 수입국 중에서 일본은 20개월 미만 쇠고기만 수입하고 있고, 대만 및 홍콩은 30개월 미만 뼈 없는 살코기과 모든 연령에서 특정위험물질을 의무적으로 제거하고 있다”며 “수입조건이 완화된 국가는 한 곳도 없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명박 정부가 공언하던 미국의 강화된 사료규제 조치 이행은 올해 또 다시 연기됐다”며 “지난해 30개월 이상의 미국산 쇠고기 수입의 시점을 ‘미국의 강화된 사료 조치를 공포한 시점’으로 협상한 것이 얼마나 졸속이었는지를 확실히 증명한 사례”라고 비난했다.

◇ 30개월 이상 쇠고기 수입, 미국 의회 한미 FTA 비준 전제조건

미국 상원 재무위원회 보고서는 자동차, 쇠고기, 쌀, 개성공단 등 4가지를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심의과정에서 예상되는 쟁점으로 명시하고 있다.

지난 3월9일 론 커크 미국 무역대표부 대표는 상원 재경위 인준 청문회에서 쇠고기 문제를 “최우선 순위에 두겠다”고 답변했으며, 지난달 30일 드미트리어스 마란티스 미국 무역대표부 부대표도 상원 재경위 인준 청문회에서 “부대표로 인준되면 쇠고기 관련 무역 장벽을 해소하는 것은 최우선 과제의 하나로 삼을 것”이라고 밝혔다.

현재 한국은 미국산 쇠고기를 수입할 때 모든 연령을 수입할 수 있으나 민간 자율로 한시적으로 30개월 미만 쇠고기만 수입하고 있다. 그러나 미국 의회가 한미 FTA의 비준 전제조건으로 쇠고기를 명시하고 있는 만큼, 현재 유지되고 있는 30개월 미만의 월령이 30개월 이상으로 확대될 가능성이 높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박상표 정책국장은 “미국 무역대표부 쪽은 한미 FTA와 관련한 안건을 미국 의회에 상정하기 이전에 쇠고기 문제, 즉 쇠고기 수입 월령을 30개월 이상으로 확대한다는 방침을 밝히고 있다”며 “이들이 30개월 이상 쇠고기를 수입하도록 정부에 압력을 넣을 수 있다”고 우려했다.

당초 정부는 이명박 대통령과 당시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 간 한미 정상회담을 앞둔 지난해 4월18일 소의 연령이나 부위에 제한 없이 미국산 쇠고기를 전면 수입하는 내용을 뼈대로 하는 한미 쇠고기 협상을 타결했다. 그러나 이후 이에 대한 국민들의 반발이 계속되고 촛불집회가 거세지자 한미 쇠고기 추가협상을 진행, 6월25일 결과를 발표했다.

추가 협상 결과, 미국 정부는 한국 수출용 쇠고기에 미국 검역관이 서명하는 수출검역증명서에 30개월 미만을 입증하는 민간자율프로그램인 품질관리제도(QSA)에 따라 생산됐다는 문구를 넣도록 했다. 당시 김종훈 통상교섭본부장은 “미국과의 이런 합의내용은 수입위생조건 부칙에 명문화된다”고 밝힌 바 있다.

◇ 한-EU FTA 타결되면 광우병 발생 위험 높은 쇠고기 수입 현실화

한-유럽연합(EU) 자유무역협정 협정문 초안에는 농축산물 수입 조건과 관련해 “한 국가가 상대편 국가에 부가적인 수입 요건을 요구할 경우 국제수역사무국과 국제식물보호조약(IPPC)의 지침과 기준에 맞게 할 수 있다” “질병 없는 지역이나 질병 빈도가 낮은 지역을 판단할 때 국제수역사무국과 국제식물보호조약의 기준에 맞게 결정해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박 정책국장은 “지난 3년간 유럽에서는 600건의 광우병이 발생했다”며 “한-EU 자유무역협정이 발표되면 국제수역사무국이 ‘광우병 위험통제국’으로 분류하고 있는 영국 등 유럽 23개국에서 생산한 쇠고기는 국내 수입 유통이 가능해지고, 협정 당사국으로서의 의무와 세계무역기구 규정에 따라 수입을 막을 근거가 희박해진다”고 지적했다.

그는 “국민의 생명이 지켜지지 않는 한 국민들은 다시 촛불을 들고 제2의 촛불 항쟁을 할 수밖에 없다”며 “국민의 건강권과 검역주권을 회복하고 국민의 생명과 정치적 자유와 사회적 권리가 온전하게 지켜지는 날까지 촛불 항쟁은 계속될 것”이라고 말했다.

▲ 임성규 민주노총 위원장(왼쪽)과 참여연대 김민영 사무처장(오른쪽)이 성명을 읽고 있다. ⓒ송선영
“1년 지난 지금도 광우병 위험 여전”

광우병국민대책회의는 이날 성명을 통해 “광우병 위험에서 건강과 생명을 지키려는 온 국민의 눈물겨운 노력이 1년이 지난 지금도, 정부의 기만과 무능력, 무책임에 의해 광우병 위험은 현재 진행형인 상황”이라며 “유럽연합과 캐나다가 한미 쇠고기 협상을 근거로 똑같은 조건을 강압해도 미국이 30개월 이상 쇠고기 수입마저 공개적으로 강요해도 정부는 단호하게 거부하지 못하고 있다”고 비난했다.

이들은 “폭압은 촛불을 잠시 누를 수 있을 뿐, 꺼지지 않았고 더 나은 사회를 바라는 촛불은 언제, 어디서나 타오르고 있다”며 “촛불과 같은 염원이 마침내 폭발하는 순간, 위대한 국민 촛불은 평화를 통해 정권의 기만과 폭력을 제압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날 기자회견 시작 전인 오후 1시부터 시작된 광우병국민대책회의 총회에서는 광우병 관련 정책뿐만 아니라 △의료 민영화 △언론 △인권 △4대강 정비 사업 △공공기관 선진화 △한미 FTA 등에 대한 시민사회단체들의 평가가 이어졌으며, 민주노총, 민주언론시민연합, 언론소비자주권국민캠페인, 전국교직원노동조합, 환경운동연합, 참여연대 등이 참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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