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일 미국 연방통신위원회(FCC)와 정책협의차 워싱턴을 방문한 최시중 방송통신위원장이 특파원 간담회에서 가난했던 어린시절을 떠올리며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방통위원장이 공개석상에서 흘린 눈물은 이례적인 것이다. 대다수 언론들은 ‘이례성’에 주목, 이에 방점을 두고 보도했다. 하지만 당일 간담회에서 주목할 것이 과연 ‘눈물’뿐 이었을까?

▲ 조선일보 6일자 4면
가난했던 시절을 떠올리며 흘린 눈물보다 훨씬 중요해보이는 KBS 수신료 인상, MB 선거운동 관련 발언에 대해 전하는 언론사는 소수에 불과했다. 각 언론사가 중점적으로 보도한 발언이 무엇이었느냐에 따라 해당 언론사의 기사판단 기준, 가치관, 문제의식을 들여다 볼 수 있지 않을까.

언론보도를 종합해보면, 최 위원장이 간담회에서 한 발언은 7가지 정도로 나뉜다.

1. “이명박 대통령이나 나나 이상득 의원이나 모두 가난을 체득하며 살았다. 후손에게는 절대 이같은 고통을 물려줘서는 안된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 언젠가 저녁을 굶은 뒤 아침에 잠을 깼는데 어머니가 누워계셔서 또 굶는구나 싶어 아버지와 어머니에 대한 원망이 가슴에 쌓였다. 그런데 장가를 가서 애들을 키우면서 생각하니, 끼니때 자식에게 밥을 못준 부모의 마음이 얼마나 미어졌겠는지 모르겠더라.

MB는 처절하게 배가 고파본 사람으로 공부하고 싶을 때 돈이 없어 못하는 이를 잘 알며, 그런 사람이 있어서는 안된다고 하는 사람이다. 그런 면에서 MB는 설명할 필요가 없는 사람이며, (경제를 살리려는) 노력은 어릴 적부터 가슴에 서려있는 한을 푸는 자기 성찰이 전제된, 체득한 삶의 일환이 전제된 노력으로 다른 사람의 노력과는 질적으로 다르다. 지금 이명박 대통령처럼 노력하는 부지런한 사람이 아닌 상황에서 국제경제위기가 왔다면 어떻게 됐겠는가도 생각하면 내가 그 때 당시 그런 선택을 한 것은 잘 했다고 본다.”

2. “이명박 대통령이 완벽하게 합법적으로 선거운동을 했다고 나는 말하지 않는다. 하지만 역대 어느 대선보다 돈 적게 드는 선거운동을 했다고는 할 수 있다. 선거운동 당시 우리는 100대 그룹으로부터 진짜 단돈 1만원도 받은 적이 없다. 전에는 당선사례금 같은 것도 있었지만 이번엔 하나도 받지 않았다.”

3. “6월 미디어 관계법을 비롯해 공영방송법(KBS, EBS 등을 공영방송으로 묶는 법)이 연내 국회를 통과하면 내년에는 KBS 수신료 인상을 추진하겠다. 영국 등 다른 나라의 공영방송 수신료는 1년에 3만원 정도인 KBS 수신료에 비해 9∼10배 높다. KBS 수신료를 인상해 민영방송과 시청률 경쟁을 벌이지 않고 국민의 정신적 지주 역할을 하는 미디어로 만들어야 한다. (수신료 인상에 따라) KBS 2TV 광고의 70∼80%는 민방 영역으로 흘러들어가 방송광고 시장 활성화에 도움을 줄 것이다.”

4. “(MBC에 대해) 소유는 공영, 운영은 민영인 MBC는 정체성 확립을 위해 공영과 민영 중 하나를 스스로 택해야 한다. 이를 통해 시청률 하락과 광고 수익 감소 등 현재의 위기를 극복할 수 있을 것이다.”

5. “(국내 미디어 시장과 관련) 미국의 미디어 광고시장이 국내총생산(GDP) 대비 1.34%인데 비해 한국은 0.8%에 불과하다. 미국 수준으로 파이를 키운다면 한국의 미디어 광고시장은 앞으로 5조원정도 더 커질 수 있다.”

6. “(이 대통령과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와의 관계에 대해선) 나는 화해주의자”

7. “(북한에 대해) 백성을 굶겨죽이는 정권은 정권이 아니다. 다른 어떤 도덕이나 이념 가치를 떠나 먹여 살릴 책임은 져야 한다.”

◇ 대다수 언론, “최시중의 눈물과 MB 가난” 강조

서울신문(“MB와 나는 처절하게 배 고파본 사람”), 조선일보(미국 간 최시중 만찬중 눈물… 왜?), 국민일보(최시중 ‘워싱턴의 눈물’ 사연은), 연합뉴스(최시중 워싱턴서 눈물 흘린 까닭은) 등 대다수 언론들은 최 위원장이 어린 시절 가난을 떠올리며 흘린 눈물을 중점적으로 보도했다. 조선일보는 “최 위원장은 이런 사연을 소개하면서 갑자기 목소리가 떨리더니 수차례 눈물을 쏟았다”며 “간담회 동안 최 위원장이 쉴새 없이 눈물을 흘려 식당 종업원이 휴지를 따로 가져다주기도 했다”고 전했다.

이명박 정부가 강부자, 고소영만을 위한 정책을 펴고 있다는 비판이 거센 상황에서 ‘가난했던 어린시절에 목이 멘다’는 최 위원장의 발언이 과연 어느 정도나 공감을 받을 수 있을지 의문이다. 이 발언이 의미하는 것은 무엇일까? 한때 가난했던 MB가 지금은 기득권 세력의 부 늘리기를 위해 열심히 ‘삽질’하고 있다는 것? 지난해 내내 MB정부의 언론장악 선봉에 섰던 최 위원장은 한나라당의 재보선 참패에 낙심했다고 하면서도, 아직도 민심을 제대로 읽고 있지 못한 것 같다.

이렇다 할 의미를 부여할 수 없는 최 위원장의 눈물이 언론의 집중 스포트라이트를 받을 만한 사안인지 모르겠다. 대다수의 워싱턴 특파원들은 보도해도 그만, 안해도 그만인 기사만을 양산해내고 있는 셈이다. 특파원들이여, 최 위원장의 ‘눈물’보다 KBS 수신료 인상 등 방송 현안 발언이 더욱 중요하지 않은가?

◇ 수신료 인상, 미디어관련법·공영방송법 통과가 전제?

KBS 수신료 인상 관련 발언에 대해서는 동아일보와 KBS, 뉴시스만 보도했다.

그런데 동아일보(“KBS수신료 내년 인상 추진…MBC 공영-민영 선택해야”)를 보면, 수신료 인상은 6월 미디어관련법과 공영방송법의 국회 통과를 전제로 하는 것임을 알 수 있다. 지난해 7월 KBS 대책회의를 비롯해 언론장악을 진두지휘했던 최 위원장이 올해도 ‘본연의 업무’를 지속할 것임을 피력한 셈이다. 신문 중 유일하게 최 위원장의 KBS·MBC 발언을 집중 보도한 동아일보는 수신료 인상을 당근으로 6월 미디어관련법 정국에서 KBS의 협조를 바라는 의도를 가지고 있는 것일까.

하지만 KBS와 뉴시스 기사에는 이같은 전제가 나오지 않는다. KBS(최시중 “수신료 인상해 정신적 지주 돼야”)는 “최 위원장은 KBS의 수신료를 적정수준으로 올리고 대신 KBS의 광고를 지금의 20~30% 정도로 줄여 공영성을 높이는 방안이 필요하다고 밝혔습니다”라며 “특히 내년부터 수신료 인상이 이뤄진다면, 인력이 이미 갖춰져 있는 KBS는 더욱 달라질 것이라고 전망했습니다”는 정도로만 보도했다.

“KBS 수신료를 인상해 민영방송과 시청률 경쟁을 벌이지 않고 국민의 정신적 지주 역할을 하는 미디어로 만들어야 한다”는 최 위원장. 이병순 체제 이후, KBS가 우리에게 어떤 모습으로 다가왔는지를 복기해볼 때 최 위원장이 말하는 ‘국민의 정신적 지주 역할을 하는 미디어’가 어떤 것인지 대충 가늠해볼 수 있지 않을까 싶다.

◇ 경향만 MB선거운동 관련 발언 강조

MB 선거운동 발언에 대해서는 6일자 경향신문(최시중 “MB, 합법적 대선운동 했다 말하지 않겠다”)만 이 사실을 보도했다.

▲ 경향신문 6일자 2면
조선일보는 5일 온라인판 기사 <72세 최시중, 기자들에게 ‘MB와 가난 인연’ 설명하다 눈물 뚝뚝>에서 관련 발언을 보도했으나 6일자 지면에서는 이 부분만 뺀 채 기사화했다. 뉴시스(최시중 “MB는 처절하게 배고파 본 사람”)도 “대통령 당선 이후 당선 사례금이라고 하는 게 있었다지만 MB는 그런 거 조차 전혀 없었다”고 보도했으나 “완벽하게 합법적 대선운동을 했다고 말하지 않는다”는 발언에 대해서는 전하지 않았다.

최 위원장의 선거운동 관련 발언은 MB 측근인 천신일 세중나모여행 회장이 대선을 앞두고 170여억을 현금화한 사실이 밝혀진 현 상황에서 검찰 수사에 중요한 단서가 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대다수 언론들은 이 부분을 보도하지 않았다. 검찰의 박연차 수사가 노무현 전 대통령에서 MB측근인 천신일 회장으로 옮겨진 상황에서 과연 이 사실은 정말 중요하지 않은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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