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론조사는 사회성원이 각종 사회적 문제나 정책·쟁점(issue) 등에 관하여 가지고 있는 신조(信條)·견해·태도·의향 등을 밝히려는 목적에서 행하는 사회조사를 말한다. 그 시초는 1800년대 미국 대선 전 모의투표였다고 하나 실질적으로는 20세기 초부터 많은 언론기관에 의해 경쟁적으로 실시되었다고 한다.

우리나라에서도 선거철이 되면 각종 기관에서 실시한 여론조사결과가 여러 언론 매체에 의해 보도되면서 선거 판세에 대한 분석 자료로 활용되기도 하고 각 정당에서는 이를 근거로 지역별, 계층별 대응 전략을 수립 또는 변경하기도 하는 등 그 위력은 막강하다.

이명박 대통령도 지난 대선 전 한나라당 대선후보 경선에서 같은 당 박근혜 후보와의 초박빙 승부에서 대선 후보로 확정되는 순간 여론조사의 덕을 톡톡히 봤다. 당시 이명박 후보는 개표 전까지만 해도 경쟁자인 박근혜 후보를 8~10%포인트 가량 앞지를 것으로 예상됐으나 개표 결과는 1.5%포인트(2452표) 차이의 ‘백지장’ 승부였다. 이 후보가 간신히 패권을 쥘 수 있었던 것은 경선 결과에 반영된 여론조사 환산 득표 수(1만6868표)에서 박 전 대표를 2884표 앞섰기 때문이었다. 이날 선거인단 투표 개표 결과에서 박 전 대표에게 432표 뒤졌던 이 전 시장으로서는 여론조사 결과가 아니었다면 운명이 바뀌었을지도 모를 순간이었다.

방송법, 신문법 등의 언론 관계 법안에 대해 논의 중인 미디어발전 국민위원회(미디어위)의 활동 시한이 임박해 오고 있는 시점에서 여론조사 실시 여부가 여야 추천 위원 간에 쟁점사항으로 부상하고 있다. 야당 추천 위원들은 언론관계법이 지난 연말 연초 국회를 폭력으로 얼룩지게 만들었고 그 결과로 사회적 논의기구인 미디어위가 출범하게 된 만큼 미디어위에서 국민의 다양한 여론을 수렴하기 위해 여론조사를 반드시 실시해야 한다는 입장인 반면 여당 추천 위원들은 여론조사에 대해 대중 선동이라는 둥 미디어위의 임무가 아니라는 둥 선례가 없다는 둥의 이유를 대며 소극적이고 방어적인 자세로 일관하고 있다.

작년부터 언론관계법 개정과 관련하여 실시된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반대 여론이 압도적인 것을 볼 수 있다.(표1참조) 특히, 작년 9월 한겨레신문사 주관의 여론조사 결과에서는 한나라당 지지층의 51.8%가 언론관계법 개정에 대해서 반대하고 있는 것으로 밝혀졌으며, 여야 간의 극한 대립 이후인 지난 3월 한국사회여론연구소 주관의 여론조사 결과에서도 언론법 개정 반대 64.2%, 찬성 25.5%로, 언론법 개정 반대 여론이 여전히 압도적 우위에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 <표 1> 한나라당 방송법 개정안에 대한 여론조사 결과
따라서 한나라당과 여당 추천 위원들이 신방겸영 확대와 재벌의 방송 진출을 허용이 옳은 일이라고 확신한다면 야측 위원들이 실시하자고 주장하고 있는 여론조사를 대중 선동이나 여론 조작 또는 왜곡이라고 비난하면서 외면할 것이 아니라 자신들의 주장에 대한 대국민 설득 논리를 개발하고 그 정당성을 확인하기 위해서라도 여론조사에 적극적으로 임해야 할 것이다. 또한 몇몇 여당 추천 위원들이 걱정하는 것처럼 여론조사가 편향되거나 왜곡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는 복수의 조사기관에 의해 복수의 여론조사를 실시하는 것이 바람직하며, 그렇게 함으로써 결과에 대한 객관성과 신뢰도를 제고할 수 있을 것이다. 이제 얼마 남지 않은 미디어위의 활동기간을 고려했을 때 늦어도 이번 주에는 여론조사에 대한 구체적인 실행 방안과 세부 일정 등이 반드시 논의되어야 할 것이다.

그런데 지난주 미디어위 전체회의를 보면 후반기에 가장 힘을 모아 집중해야 할 여론조사 작업이 제대로 진행될 수 있을 지 미지수다. 여론조사 실시를 위한 방안들을 논의해 보자는 필자와 야당 추천 위원 등의 제안에 대해 몇몇 여당 추천 위원들이 즉각적으로 반대의사를 표시하며 강하게 반발하고 나섰고, 국회 문방위 간사 간의 합의가 전제되지 않으면 못하겠다며 책임을 전가하기도 하면서 더 이상의 실무 논의가 진행되지 못했다. 결국 차기 운영소위에서 실시 여부를 논의한 후 다음 전체회의에서 다시 논의하기로 했으니, 이러다가 미디어위 활동 종료 시점까지 여론조사를 할 수나 있을는지 강한 의구심을 갖지 않을 수 없었다.

이제 미디어위원회 활동 시한이 정말 얼마 남지 않았다. 국회 문방위에서는 여야 합의에 대한 진정성으로 보여주는 차원에서라도 미디어위의 여론조사 활동을 최대한 지원하고 관련 예산을 충분히 확보해주어야 할 것이며, 조사 결과를 입법 과정에 충분히 반영함으로써 사회갈등 해소 노력을 보여주어야 할 것이다. 문방위 사무처에서는 여론조사 활동이 수월하게 진행될 수 있도록 각종 행정적 지원을 아끼지 말아야 할 것이다.

이미 여러 차례 실시된 여론조사를 통해 언론관계법 개정에 대한 국민의 뜻이 명명백백하게 드러났음에도 불구하고 여당 내부에서는 오는 6월 임시국회에서 언론관계법 강행처리를 위한 결의를 다지고 있다 하니 참으로 한심하고 안타깝기 그지없다. 이명박 정권과 한나라당이 현재와 같이 소통부재 상태에서 일방통행 식 행보만을 거듭하려 한다면 들끓는 민심이 성난 파도가 되어 이들을 한꺼번에 휩쓸어 버리고 말 것이다.

전국언론노동조합(위원장 최상재)은 전국 150여개 언론사 노동조합과 조합원 1만8000여명이 속한 전국 단위의 산별노조입니다. 분야별로는 신문, 방송부터 인터넷매체, 출판, 인쇄, 광고, 언론관련기관까지 다양합니다. 언론노동자의 권익 향상은 물론 언론자유 및 국민의 알권리 보장을 위해 치열하게 고민하며 싸우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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