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는 처음부터 끝까지 말을 하는 직업입니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한 말보다 못 한 말이 더 많은 직업이기도 합니다. 할 말과 못할 말을 정교하게 가려, 딱 주어진 만큼만 말 할 수 있는 고된 직업입니다. <미디어스>가 그 고됨을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덜어 드리겠습니다. MBC 임명현 기자가 쓰던 ‘못 다한 이야기’가 미디어스 개편과 함께 확대되었습니다. 각각 일간지(한겨레 하어영), 주간지(정용인 Weekly경향), 방송에서 표현을 업으로 하고 있는 기자들의 미처 다하지 못했던, 역동적인 이야기들로 매주 찾아옵니다.

며칠 전, 서프라이즈에는 “[특종]서울경제신문(한국일보)의 기사-미래를 쓰다”라는 글이 올라왔습니다. 노 전 대통령의 검찰수사와 관련된 보도에 대한 비판인데요, 이 글을 올리신 서피안 님의 말대로 기사는 노 전대통령의 조사가 아직 진행 중인 오후 7시에, 오후 10시에 진행될 예정인 수사 내용을 언급하며 아직 진행되지도 않은 박연차 태광실업 회장과의 대질신문의 ‘내용’까지 전하고 있습니다. 비판자의 말마따나 기자가 ‘소설’을 쓰고 있다는 것이지요. “대충 어떤 경위이겠구나”고 짐작하고 있었는데, 해명^^이라는 닉네임을 쓰는 서프라이즈 사용자가 기사를 쓴 기자에게 항의메일을 보냈고, 그 기자가 답 메일을 보낸 내용을 공개했습니다. 역시 예상대로였습니다. 다음은 기사를 쓴 2인 중 한 명인 김홍길 기자가 쓴 답장내용입니다.


네… 오해가 있으신 것 같은데요… 검찰이 3, 6시 10시 이렇게 브리핑을 했습니다.

내용은 진술이 바뀐게 없다(기존 해명과 다르지 않다는 것이구요)

그러나 검찰이 노 전 대통령 소환은 혐의가 있지 않으면 부를 수 없는 상황이기 때문에 혐의를 가지고 있을 것으로 사료되는 정황이고요. 그러나 신문 제작은 지방용을 위해 하루에 4번에 걸쳐 제작을 합니다. 보통 판갈이라고 하는데요. 3시 브리핑을 토대로 4시30분에 마감해 6시쯤 제작돼 나온 15판 신문입니다. 이는 강원도나 제주도 등을 위해 제작된 신문으로 전국이 동시 인쇄가 안 되는 상황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상황임을 이해해 주시고요.
검찰 내부 취재를 종합한 결과이기 때문에 내일 자 신문에도 비슷한 내용으로 기사를 보실 수 있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독자분이 생각하신 것과 차이가 있는 부분에 대한 설명이었고요. 앞으로 더 세심한 부분까지 신경을 써서 제작하도록 하겠습니다. 독자분의 의견 감사드리고, 건승하시기 바랍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프라이즈 독자 분들의 ‘흥분’은 쉽게 가시지 않는 모양입니다. “기사를 쓴 기자의 신상정보와 낯짝을 조사해 공개하고, 사건을 왜곡하고 기사를 조작한 의도를 밝혀야 한다”는 규탄 글이 이어 달렸습니다.

저는 저 기자들이 어떤 의도를 가지고 사건을 왜곡했다고 보지 않습니다. 아마 김홍길 기자가 설명한 내용 이상도 이하도 없었을 것 같습니다. 오프라인 매체(그리고 마이너 매체)의 딜레마 때문에 벌어진 일입니다.

▲ 서프라이즈 홈페이지 화면 캡처.
신문은 말 그대로 신문(新聞), 즉 ‘새로 들을 수 있는 이야기’여야 합니다. 당연히도 독자들의 손에 쥐어진 시점에 맞춰져 쓰여지게 되는 것이지요. 인터넷 언론이나 방송과 달리, 오프라인 매체의 제작에서 ‘시간차’는 더욱 두드러지게 됩니다. 취재한 사실의 전달을 위해서는 취재, 기사작성, 편집, 인쇄조판, 배달의 과정을 거치기 때문에 ‘시간차’는 어쩔 수 없는 것입니다. (그마나 활판인쇄 시절에 비해 지금은 편집과 조판에서 많은 시간이 단축되었습니다.) 관심이 집중되어 있는 사안이고, 반드시 보도를 해야 하는데 기사가 나오지 않을 수 없을 때 그때까지의 정보를 종합하여 ‘완료형’으로 기사를 쓰는 것은 오프라인 매체의 속성상 어쩔 수 없는 딜레마이기도 합니다.

저는 괄호로 마이너 매체의 경우를 덧붙였는데, 실제 서울경제가 마이너 매체인지 아닌지는 경제지 시장을 잘 모르므로 판단할 수 없지만, 이른바 메이저 혹은 ‘부자언론’의 경우 현지인쇄공장을 갖고 있기 때문에 보통 마감시간(오후 4시30분)을 넘어서 심야까지 전국동시로 판갈이가 가능합니다. 하지만, 현지인쇄공장이 없어서 서울에서 인쇄해 지방으로 보내야하는 마이너 매체의 경우, 전국을 커버하는 판갈이는 오후 10시가 넘으면 거의 불가능한 경우가 많습니다. 여기에 인쇄업체에 아웃소싱하거나 다른 신문사 인쇄시설에 의뢰를 하는 ‘진짜’ 마이너 매체의 경우 더 말할 필요가 없겠지요.

개인적으로 가장 최근에 목격한 이런 ‘오보’ 사례는 숭례문 화재 사건입니다. 화재 초기에 연기만 피어오르던 숭례문이, 누각 붕괴까지 이르리라곤 첫째 판을 짤 무렵에는 누구도 생각하지 못했기 때문에 일부 매체는 ‘숭례문에 화재…’식의 사진기사로 단건 처리하기도 했지요.

제가 경험한 ‘시간차’ 때문에 벌어진 가장 큰 대형오보는 김선일씨 케이스입니다. 김선일씨 참수소식이 알려진 것은 새벽 2시 경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전날 심야까지 언론들에 돌던 정보는 “김선일씨는 안전하다”는 것이었습니다. 심지어 한국 언론과 선이 닿아있었던 몇몇 아랍인사들은 ‘김선일씨를 억류하는 그룹과 전화연결이 가능하다’며 흥정을 하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김선일씨가 참수된 날 아침 대부분 신문의 머릿기사 제목은 “김선일씨 살아있다”였습니다. (여기서도 부자 매체와 마이너 매체의 차이는 드러납니다. 새벽 2시 이후 서울에 배포되는 마지막 판에서 부자 매체들은 판갈이에 성공(?)합니다. 하지만 그 신문들의 지방 배달판을 받아본 사람들의 상당수는 정반대의 제목을 달고 있는 머릿기사를 볼 수밖에 없었습니다. 관려된 김선일 오보 소동의 전말은 신미희 전 오마이뉴스 기자가 쓴 기사에서 다시 확인할 수 있습니다.)

다시 처음의 노무현 수사 건으로 돌아가겠습니다. 검찰이 진행 중인 수사 내용을 취재하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수사 내용을 공개한다면 피의사실 공표 죄에 해당되게 됩니다. 그러기 때문에 공보담당 검사의 공식브리핑 자리는 항상 ‘밀고 당기기’가 됩니다. 하나라도 더 캐내려고 하는 기자 측과, 최대한 사실을 흘리지 않으려고 하는 검찰 측의 기 싸움이 벌어지는 것이지요. 싸움에서 기자의 무기는 ‘질문’ 밖에 없습니다. 팩트를 최대한 확보하거나 ‘아는 척’하면서 끌어내야지요. 기자의 역량은 공식브리핑 이후 판가름 납니다. 누가 ‘플러스 알파’의 내용을 기사에서 더 끌어냈는가의 문제이지요. (언론계에서는 속칭 ‘빨대’를 가졌냐 갖지 않았냐의 차이로 봅니다. 빨대는 사건에 관한 정보를 제공할 수 있는 내부구성원을 지칭하는 언론계 은어지요. 빨대 문제는 다음에 다시 이야기할 기회가 있을 것 같습니다.)

아무튼, 이 경우 정보가 나올 수 있는 곳은 노 전 대통령 주변인과 검찰인데, 외부와 차단된 채로 수사가 길어질 경우 검찰 쪽 정보에 더 무게가 실리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입니다. 아마도 서울경제 기사의 경우, 그때까지 검찰이 발표한 정보에다 마감을 염두에 두고 앞으로 ‘진행될 수사’에 대한 검찰 브리핑을 바탕으로 이뤄진 기사일 것입니다. 이것은 어느 언론이나 마찬가지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울경제 기사의 문제점은 역시 언론계 속어로 ‘초를 지나치게 많이 쳤다’는 것입니다. 기사작성 시점에서 아직 진행도 되지 않은 수사 사실에 대해, 전지적 시점에서 내려다보듯 세밀하게 묘사를 했기 때문입니다. 그래도 이 기자들은 나름대론 최선을 다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6시 쯤 이뤄지는 저녁식사까지 포함시킨 걸 보면, 최대한 사실을 제한된 분량의 기사에 구겨 넣으려고 노력한 것으로 보이니까요.

또 하나의 실수가 있는데, 사실 이 실수가 더 큰 것으로 개인적으로 생각합니다. 오프라인용 기사가 제대로 스크린되지 않은 채 온라인에 노출되었다는 점인데요. 통상 신문사닷컴들이 다음날 신문기사를 오후 6시부터 오후 11시 정도까지 순차적으로 노출시키는데, 이 과정에서 별다른 검토 없이 이 기사가 적절하지 않은 시간대에 나간 것이 가장 큰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서프라이즈 독자들에 따르면, 오후 9시 경에 수정이 이뤄졌다고 하니 그나마 온라인 데스크가 부지런한 편이었다고 생각됩니다. 저런 치명적인 실수가 벌어지고도 현재까지 수정 없이 방치된 경우는 생각 외로 많고, 또 많은 항의를 받고도 꿋꿋이 무응답으로 버티는 신문사닷컴도 부지기수입니다.

그렇다고 결과적으로 오보를 쓴 언론사가 마냥 아무 책임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이전에 뉴욕타임스를 모니터한 적이 있습니다. 뉴욕타임스는 2면에 기사에 대한 정정 및 독자의견을 다루고 있는데, 자신들이 범한 실수와 관련해서, 한국에서라면 그냥 넘어갈 정도의 수준인 ‘기사의 뉘앙스’까지 정정해 자세히 언급해놓았습니다. 특히 온라인에서 벌어진 ‘실수’와 관련, 진보나 보수를 막론하고 한국의 언론이 정정이나 해명을 내놓는 경우는 별로 보지 못했습니다.

이번 노무현 수사와 같은 딜레마가 수시로 벌어지는 곳이 있습니다. 바로 스포츠매체입니다. 이를테면 뜻하지 않게 연장전에 가는 경우나, 해외에서 벌어지는 경기를 중계할 때 벌어지는 문제입니다. 이 경우도 십중팔구는 온라인 데스킹의 문제이지요.

사실, 예정된 사건과 관련해 언론들이 미리 기사를 써놓은 것은 흔한 일입니다. 김수환 추기경이 선종한 이후, 언론들이 대대적으로 그의 일대기에서부터 과거 행적, 주변인 인터뷰까지 여러 페이지에 걸쳐 도배할 수 있었던 ‘비밀’은 추기경의 선종이 예측되는 시점에서부터 미리 기사를 작성해놓았기 때문이지요. 박경리 선생의 경우도 마찬가지였지요. 지금도 언론사 데스크에는 미리 작성된 유명인의 부고용 기사들이 여럿 올라와 있습니다. 아직은 돌아가시지 않았기 때문에 그분들이 누구냐는 것을 밝히기는 곤란하지만요.

사실 시간차 딜레마가 가장 큰 곳은 주간지나 월간지의 경우입니다. 단적으로 제가 근무하고 있는 ‘Weekly경향’에서는 이번 주 커버스토리로 ‘신종플루’를 다뤘습니다. 제가 쓴 기사의 첫머리에서 MI(멕시코인플루엔자)냐 SI(돼지인플루엔자)냐 하는 정부 부처 내부의 논란을 다뤘는데, 질병관리본부 측에서 WHO측의 ‘인플루엔자A(H1N1)’이라는 명칭으로 통일해달라는 요청이 뒤늦게 나왔죠. 주말을 경과하면서 언론들의 표현은 ‘신종 플루’로 통일되었는데, 온라인에는 한 주 뒤에나 노출되는 본지 기사에서 종전 통일 명칭인 SI를 사용하는 것이 불가피하게 되었습니다. 저의 경우는 아예 기사 내용이 그 문제를 다루고 있으니 빼도 박도 못하는 것이고요. 어떻게 보면 ‘시간차 오보’에 대해 “기술적으로 피해갈 수 있는 사안이 아니었느냐”는 평가가 가능할지 모르지만 보다 근본적인 문제는 있는 것 같습니다. 좀 더 심도 있는 이야기는 다음 기회에 다루겠습니다.

경향신문이 발행하는 시사주간지 Weekly경향 기자다. 사회팀장을 맡고 있다. 머리를 쥐어짜듯 기사를 쓰면서 살고 있다.

저작권자 © 미디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