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방송의 정치경제학

이명박 정권의 언론장악 의지는 매우 단호하게 여겨진다. 언론방송 관계자들에 대한 사법 처리와 지속적인 조사는 권력과 자본의 동맹체제에 대한 저항의 근거지를 소멸시키기 위한 전략이다. 그와 동시에 이는 권력과 자본 동맹의 영구적 집권체제를 만드는데 반드시 요구되는 여론조작의 조건을 확보하는 결정적인 문제임을 인식하고 있는 결과다.

이러한 현실에 대해 언론운동은 대체로 사상의 자유, 표현의 자유, 민주주의의 문제로 인식하고 이를 중심으로 여론을 환기시키는 노력을 하고 있다. 이는 원론적으로 타당하다. 그러나 그러한 관점에만 머물 경우, 우리는 일반 민중들의 삶과 직결된 의미를 갖는 언론방송의 자유와 그 무대설치의 권리를 제대로 부각시키지 못하는 한계에 직면할 수 있다. 그러한 주제들은 이 사회의 지식인, 운동가, 언론인들을 포함한 소수의 문제에 불과할 뿐 대다수 국민들이나 서민들의 생활과는 그리 절박한 관련이 없다고 생각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명박 정권이 권력과 자본 동맹 체제를 강화하기 위해 언론방송 장악 대본에 따른 여러 가지 움직임을 보이는 이유는 물론 기본적으로 여론지형을 유리하게 만들어가면서 자신들의 권력이 비판에 처하지 않도록 하려는 목적을 가지고 있다. 권력 관리의 환경조성이다. 뿐만 아니라 자본에게 언론방송의 독점체제를 소유할 수 있도록 함으로써 권력과 자본의 이해관계를 일치시키고 자본주의 시장체제를 확대재생산하는데 있다. 바로 이 대목이 우리가 모두 깊이 유념해야 할 바다.

언론과 방송이 자본에 종속되는 순간, 자본의 이해와 대치되는 프로그램은 존속할 수 없고 자본의 요구에 따른 방송내용의 제작 외에는 다른 자유가 용납되지 않는 것은 필연적이다. 언론방송의 정치경제학이 정확히 작동하는 것이다. 이렇게 될 때 권력과 자본의 유착과 동맹관계에서 이 나라의 공적 자산이 얼마나 엄청나게 사유화되어갈 것인지, 그리고 그로써 일반 서민들의 정치경제적 권리가 박탈되어갈 것인지 감시하고 문제제기를 하며 정책을 변화시킬 수 있는 무대는 사라지고 마는 것이다.

이는 한 마디로, 일반 서민과 노동자들의 민생문제가 명확히 거론되고 교정될 수 있는 기회가 원천적으로 봉쇄되고 마는 것을 뜻한다. 데이비드 하비가 이미 “박탈을 통한 축적체계”라고 적나라하게 밝혔듯이, 신자유주의는 국민들의 재산과 공적 자산에 대한 권리를 권력과 자본이 사유화함으로써 이루어지는 현실이다. 이걸 일상적으로 감독하고 문제를 파헤치며 법과 정책으로 포장한 권력과 자본의 강탈행위를 고발하고 막아낼 수 있는 장치가 없다면, 그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들에게 돌아간다. 민생의 피폐는 이로써 구조적으로 진행, 심화되어가는 것이다.

광우병 우려가 있는 쇠고기 수입을 받아들이는 조건으로 진행된 한-미 FTA는 쇠고기 수입에 따른 국민 건강권의 문제만이 아니라 이 나라 토착 산업과 경쟁력이 그나마 있는 영역을 초토화시킬 우려가 있기 때문에 이에 대한 반대가 있는 것이다. 그러나 한-미 FTA를 둘러싼 논란이 정확히 정리될 수 있는 기회와 무대가 실종되고 권력과 자본의 일방적 목소리만 정당화될 경우, 서민들은 자신들의 자산과 권리가 빼앗기고 있어도 의식하지 못하고 자기에게 손해를 끼치는 정책과 권력을 지지하는 모순에 쉽게 빠져든다. 최근 편성된 추경 예산의 40퍼센트인 11조가 종부세 등 부자 감세로 인한 세수부족분을 메우는 쪽에 쓰이고 이로써 서민부담이 가중된다는 것을 지속적으로 끈질기게 논란을 벌일 수 있는 언론방송의 장치가 약화되거나 없어지면 그 피해 역시 누구에게 돌아갈 것인지는 분명하다.

▲ 지난해 12월 30일 ‘언론장악 저지 민주주의 수호를 위한 언론노조 촛불문화제’에 참석한 시민들이 손팻말을 들고 있다. ⓒ곽상아
이대로 가면 민생문제를 제기할 수 있는 권리, 박탈당한다

당장에 등록금 부담과 실업상황에서 생활대책이 서지 않는 사람들을 외면하고 쏟아 부어지는 토건예산은 결국 땅 부자들과 건설 회사를 배불리는 것임은 명확한데 이를 문제 삼고 제동을 걸 수 있는 사회적 담론이 존재하지 못하게 되면 민생이 어떻게 굴러가게 될 것인지도 이론(異論)의 여지가 없을 것이다. 작은 정부를 지향한다면서 국정원, 검찰, 경제부처 등은 확대하고 교육과 보건 복지 등의 기구는 축소하면서 이를 작은 정부의 모델로 내놓는다면 그것이 무엇을 위한 것이며 누구를 희생시키는 것인지도 전혀 자각할 수 없다.

미디어법 통과를 위해 이명박 정권과 여당인 한나라당이 내세우는 논리는 방송 산업의 발전이다. 통신과 미디어의 융합시대를 맞이해서 다채널 시대가 열려야 하며 자본의 방송소유나 거대신문의 방송장악은 경쟁력 확보를 위해서도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통신-미디어 융합시대는 언론방송의 민주주의 확대를 위한 조건이 강화된 것이며 이로써 쌍방향 정도가 아니라 다방향의 언로유통이 가능한 시대를 의미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는 우리가 언론 방송의 산업성을 넘어 다양한 요구와 의견으로 구성된 공적 가치를 어떻게 사회전체의 발전을 위해 실현시켜나가는가를 성찰하는 능력을 길러나가는 매우 중대한 단계에 이른 것을 말해주는 현상이다. 그런데도 이를 권력과 자본이 독점적으로 소유하고 관리해나가겠다는 것은 일방통행의 낡은 관성을 그대로 지속시켜나가겠다는 것이며 다채로운 창발성을 기본으로 하는 미래창조산업의 기반 자체를 파괴하는 것에 다름 아니다.

이명박 정권과 자본동맹은 국민들에게 나막신이나 신고 평생 살라고 한다. 무대 위에는 올라올 생각을 하지 말라고 한다. 유리 구두는 자기들만 신고 살겠다는 것이다. 자기들만을 위한 무도회에 열중하면서 서민들은 재가 펄펄 나는 아궁이에서 주인의 요구에 따라 장작이나 때고 물이나 긷고 일이나 죽도록 하면서 가난하게 살다가 가라는 것이다. 이건 아니지 않는가, 라고 하면 너는 존재 자체가 불법이야 하고 몰아붙이면서 입을 다물게 하고 턱을 부숴뜨린다.

정권의 폭력적 행태를 문제 삼고 저항하는 일체의 움직임은 모두 불법화되는 것이다. 그러면서 자기들 배는 잔뜩 불리는 온갖 정책과 정치를 구사한다. 한쪽은 다수가 가난해지고 한쪽은 소수가 날로 더욱 부자가 되어간다. 민생은 저버림 받는다. 그게 오늘날 우리가 직면한 현실이다. 이걸 떠들어대지 않으면 고칠 방법이 없다. 계속되는 기만과 위장 그리고 폭력의 정치를 막아낼 방법이 나오지 않는다. 언론방송은 그 목소리를 내면서 자본의 통치와 권력의 사유화를 제지하는 민중의 정부다. 이 정부를 빼앗기면, 우리는 모든 것을 빼앗긴다. 빼앗긴 들에는 봄이 오지 않는다. 봄이 와도 그 봄은 우리의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들부터 되찾아야 봄이 정녕 봄이 된다.

민중의 정부인 언론과 방송을 박탈당하는 순간, 민생은 허물어진다. 언론과 방송은 무엇보다 먼저 이 나라 가난한 서민백성들의 밥 먹고 사는 문제라는 것, 이걸 놓치면 언론방송의 민주주의 운동은 국민적 동력을 갖지 못할 것이다. 싸움은 이제 시작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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