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합뉴스가 5일 오후 1시 48일 올린 기사 중 하나가 “최시중, 워싱턴서 눈물 흘린 까닭은”이다. 방송통신위원장이자 대통령의 멘토가 눈물을 흘렸다. 뉴스가 될까 안될까? 단순한 에피소드일까 아닐까? 눈물에 대한 비판이 있을까 없을까?

이런 관점에서 이 기사를 훑어보기 시작했다. 딱히 뉴스가 될 것 같지도 않고, 단순한 에피소드일 뿐이었다. 참여정부를 이끌었던 노무현 전 대통령이 눈물을, 그것도 과거를 회상하면서 흘렸다면, 어떻게 보도했을까, 그런 생각을 하면서 특별히 의미 없는 ‘재미있는’ 기사였을 뿐이다.

하지만 몇 가지 눈에 거슬리는 대목이 있어 이렇게 글을 쓴다. 먼저, 이명박 대통령의 노력은 다른 사람들의 노력과 질적으로 다르다는 주장이다. 연합뉴스의 용비어천가같은, 동화같은, 보도의 탈을 쓴 ‘찬송가’같은 글쓰기를 읽어 보자.

▲ 연합뉴스 기사 화면 캡처.
밥을 굶는 바람에 술 도가니에서 찌꺼기를 얻어먹고 학교에 갔다는 이 대통령의 유년시절 일화와 자신의 어려웠던 시절을 회고하다가 감정이 북받쳐 그만 울음을 터뜨리고 만 것. 고희를 넘긴 최 위원장이 안경을 벗은 채 흐르는 눈물을 연방 손수건으로 닦아내며 말을 이어나가자 간담회장도 일순 숙연해졌다.

그는 “언젠가 저녁을 굶은 뒤 아침에 잠을 깼는데 어머니가 누워계셔서 또 굶는구나 라는 생각에 어머니가 얼마나 미운지, 아버지와 어머니에 대한 원망이 가슴에 쌓였다”면서 “그런데 장가를 가서 애들을 키우면서 생각하니, 끼니때 자식에게 밥을 못준 부모의 마음이 얼마나 메어졌겠는지 모르겠더라”고 울먹였다. 그는 눈물을 계속 글썽이면서 “아버지, 어머니에 대해 죄의식을 갖고 살고 있다”고 말했다.

최 위원장은 이어 “이 대통령이나 나나 가난을 체득해서 살았고, 후손에게는 이 같은 고통을 줘서는 안된다고 생각하는 것은 말할 필요도 없다”고 강조했다. 그는 “가난에 대한 아픔은 이 대통령이나 나나, 이상득 의원이나 설명할 필요가 없이 누구보다도 직감적으로 느끼고 있다”면서 “우리가 살아있는 동안에 그건 없애자는 것”이라고 말했다.

또 “이 대통령의 노력은 한을 푸는 자기 성찰과 체득한 삶이 기반이 된 노력으로 봐야 한다”면서 “다른 사람의 노력과는 질적으로 다르다”고 강조한 뒤 “손가락질 받는 그런 모습이 되어서는 안되겠다는 생각을 언제나 하고 있다”고 전했다.

가난에 대한 한을 푸는 자기 성찰과 체득한 삶이 기반된 노력, 이것이 이명박 대통령이 다른 사람과 질적으로 다른 노력이라는 주장인데, 이에 대해서 동의하기 어렵다. 70살 전후의 최시중 위원장이나 이명박 대통령뿐만 아니라 40대 중반인 필자도 육성회비를 내지 못해 벌청소하던 초등학교 생활을 잊을 수 없다. 포도주 담았다가 버린 포도 껍데기 주워 먹고 술 취해서 학교간 기억을 털어낼 수 없다. 도시락이 없어 점심시간에 교실에도 앉아있지 못하고 학교 운동장 한 구석에서 쪼그리고 있었던 경험도 버릴 수 없다. 이런 경험 때문에 지금 펼치고 있는 이명박 대통령의 부자들을 위한 대부분의 정책에 반대하게 되는 것이고, 이를 글로써 토론으로써 촛불로써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

가난에 대한 한을 푸는 자기성찰과 체득한 삶이 기반된 노력이라는 이유로 들었던 최시중 위원장과 이명박 대통령이 겪었던 일들. 그들 둘과 이상득 의원만의 경험이 아닐 터. 어찌 그런 경험을 가진 현 정권의 주체들이 이리도 무심하게 가난한 자들을 윽박지를 수 있을까?

일부 기득권층 특권층을 위해 세금 감면해 주는 ‘질적으로 다른 노력’ ‘가난한 사람들은 계속해서 가난할 수밖에 없고, 가난의 대물림을 기획하는 교육정책’에 대해서 ‘가난한 사람들’은 분노하고 있다. 이 땅의 수많은 아버지 어머니들이, 지금은 밥은 줄 수 있으나, 남들처럼 과외를 시켜줄 수 없어 가슴앓이를 하고 있고, 원하는 학원에 다 보내주지 못해 괴로워하고 있다. 그 자식은 남들처럼 과외공부시켜주지 않는, 원하는 학원에 다 보내주지 않는 아버지 어머니를 미워하게 만들고 있다. 원망을 쌓게 하고 있다.

정말 ‘질적으로 다른 노력’으로 가난한 사람들을 철저하게 짓밟고 있는 이명박 정부는 세입자들을 태워 죽인 자들을 찾아내지도 않고, 세입자들을 위한 근본적인 법제 개선의 의지도 없다. 용산의 참사는 어느덧 100일이 훌쩍 넘었으나 그들은 오히려 강제진압이라는 물리적 폭력만 휘두르고 있다. ‘질적으로 다른 노력’으로 이 땅의 가난한 자들을 짓누르고 있는 것이다.

최시중 위원장은, 연합뉴스에 따르면, 촛불시위 1년에 대해서도 언급한 모양이다.

이명박 정부 탄생의 막후 주역 중 한 명인 그는 최근 촛불시위 1년을 맞아 나온 국내 신문의 서로 다른 논조를 거론하면서 “너무나 극명한 대결로 가슴이 아프다”면서 “타협의 여지가 없다. 어떻게 그 여백을 넓힐 수 있을지가 우리의 당면 과제”라고 지적했다.

너무나 극명한 대결을 누가 부추기고 있는가? 시민사회단체를 불온시하면서 철저히 적으로 돌린 자들이 누구인가? 정치적 보복과 정치적 보은의 쌍곡선이 갈수록 더 선명해지도록 끝없이 자극하는 자들이 누구인가? 이명박 정부와 수많은 교집합을 가질 수밖에 없는 한국인들이 더 이상 이명박 정부와 그 어떤 교집합을 만들어내는 것조차 고개를 틀어버리게 만든 자들이 누구인가?

다른 부처의 문제를 떠나서 최시중 위원장이 속한 방송통신위원회는 정부와 시민사회, 정부와 국민들이 교집합을 만들 수 있도록 어떤 노력을 했는가? 최 위원장 말대로 ‘타협의 여지’ 자체를 없애버렸던 권력을 쥔 자들이 먼저 반성하지 않고, 비판하고 저항하는 모든 이들을 적으로 돌려버린 자들이 이제 와서 ‘타협의 여지가 없다’는 둥 ‘여백을 넓힐 수 있을지가 우리의 당면 과제’라는 둥, 독야청청하는 체하면 국민들은 속아 넘어가야 하는가? 연합뉴스의 찬송가를 국민들도 함께 불러야 하는가?

먼저 자성이 필요할 때이지, 제3자처럼 평론할 때가 아니다.

최소한 정치적 중립을 제1 가치로 출범한 방송통신위원회 위원장으로서의 직분에 이탈되는 이런 식의 유치한 기자간담회와 더불어 유치한 기사 양산이 지금 한국의 비극 중 하나임을 명심하길 바란다.

마지막으로, 최시중 위원장이 그렇게 이명박 대통령을 생각하고 자신의 삶을 성찰하고 있다면, 용산참사로 무참히 불타 죽은 고인들의 영전에서, 아직도 장사조차 지내지 못하고 오늘을 살아내는 유가족 앞에서 참회하면서 무릎 꿇고 눈물을 흘리는 게 먼저일 터이다. 이명박 정부의 실정을 대신해서 참회하고 용서를 비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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