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민주의 전당대회가 친문일색의 지도부를 구성하는 것으로 끝났다. 친박 지도부를 선택한 새누리당 전대에 이은 결과다. 어느 정도 예상했던 일이다. 언론들은 일제히 도로 친박당과 도로 친문당의 출현이라 보도했다. 아울러 정국방향에 대해서는 두 가지 예상기사를 쏟아냈다. 하나는 '양극단 세력'인 친박과 친문이 충돌해 정국이 상당히 경색될 것이고, 다른 하나는 양극단에 동의하지 않는 양당의 비주류가 국민의당과 힘을 합쳐 중도지향의 제3지대를 만들 가능성이 높아졌다는 내용이다.

국민의당은 제3지대론이 반갑지만은 않은 눈치다. 박지원 대표는 국민의당이 이미 제3지대 역할을 하고 있으니 손학규 등 다른 유력 대선주자들에게 국민의당에 들어오라고 했다. 안철수 의원도 엊그제 부산을 방문한 자리에서 제3지대론에 대해 반대의사를 밝혔다. 그러나 두 사람이 제3지대론에 대해 근본적으로 반대하는 것으로 보기는 어렵다. 다만 명색이 38석이라는 적지 않은 의석을 가진 제3당인데 제3지대론이 나오면서 N분의 1 취급을 받는 것이 달갑지 않은 듯하다. 다시 말해서 국민의당의 주도권이 관철되어야 한다는 속셈을 드러낸 것이다.

박지원 비상대책위원장 겸 원내대표(왼쪽)와 안철수 전 대표(오른쪽)가 지난달 24일 오후 대전 중구 효문화마을에서 열린 국민의당 제1차 전국시·도당 지방의원 연석회의에 입장하고 있다.(연합뉴스)

두 사람의 뜻대로 국민의당이 제3지대를 주도하는 것이 가능할까? 가능성이 크지 않다. 국민의당은 지난 총선의 신데렐라였지만 4개월여 지난 지금의 행색은 초라하기 그지없다. 자신들의 총선 성과를 민심의 승리로 포장했지만 국민의당 스스로 총선 민의를 거스른 두 가지 결정적 실책을 저지른 것이 원인이다. 총선 민의는 무엇보다 먼저 박근혜 정부와 새누리당을 심판한 것이고, 부수적으로 기존 야당도 견제한 것이다. 국민의당은 총선 후 연정을 새누리당과 할수도 있고, 국회의장을 새누리당에 넘길 수도 있다는 말을 흘려 새누리당 심판이라는 총선 민의의 몸통을 부정했다. 지지율이 떨어지고 당이 휘청거렸다. 홍보비 리베이트 건이 불거지고, 그 문제에 대처하는 과정에 오락가락하면서 기존 야당과 다른 모습을 기대했던 국민들에게 큰 실망감을 안겨주었다. 당에 두 번째 충격이 왔다. 20% 중반대의 지지율은 넉 달 만에 한 자리수를 넘나드는 수준으로 떨어졌다. 이런 정치력과 지지율로 제3지대를 모두 담겠다는 것은 과욕이다.

제3지대의 성패를 전망하면서 언론들은 한결같이 중도지향이라는 수식어를 붙인다. 언론만이 아니다. 김종인 전 더민주 비대위원장은 '중간지대에서 정계개편'이라는 말을 했다. 비슷한 뜻으로 들린다. 안철수 의원의 발언은 더 구체적이다. 내년 대선이 양극단 세력과 합리적 개혁세력의 대결이 될 것이라 전망했다. 기존 야당을 양극단으로 규정함으로써 자연스럽게 국민의당이 중심이 되는 제3지대를 중도의 자리에 놓고 있다. 마침 제3지대에 가담할 것으로 예견되는 정치인들의 이미지가 중도성향으로 보이는 것도 이러한 프레임에 힘을 보탰다.

기존 야당을 양극단으로 보고, 제3지대를 중간지대, 거기에 참여할 세력을 중도성향으로 보는 프레임은 적확한 것일까? 언론의 정국전망 보도 가운데 양당의 대립이 심화될 것이라는 부분은 개연성이 있다. 그러나 그 이유가 각각 양당을 장악한 친박과 친문이 이념적으로 양극단 세력이라서 그럴 것이라는 분석은 납득하기 어렵다. 친박과 친문이 실제로 이념적 정체성을 중심으로 모인 집단이라면 차라리 좋을 것이다. 보수와 진보가 국가의 미래를 놓고 건전한 경쟁을 벌이는 것을 기대할 수 있다. 그러나 전대 과정에서 친박과 친문은 그들의 선택 기준이 이념적 정체성이라는 점을 단 한 구석도 보여준 적이 없다. 친문이 진보 정체성을 가진 집단이라면 노동법 날치기 시비에 시달린 추미애 후보가 아니라 훨씬 진보적인 김상곤 후보를 선택하는 것이 자연스럽다. 여성위원장으로 삼성 출신이자 재벌을 보는 시각이 모호한 양향자 후보 대신에 유은혜 후보를 선택했어야 했다. 그들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 친박이 오직 박근혜 대통령을 중심으로 권력을 재창출하는 것에만 매달리듯이, 친문도 문재인 전 대표의 수호천사를 자처하거나 문재인 전 대표의 사람이라고 간주되는 후보를 선택했다. 친문이 단지 권력에 집착하는 기득권 집단에 불과하며, 권력획득을 위해서 앞으로도 어떻게 행동할 것인가를 명확하게 보여주었을 뿐이다.

새누리당 이정현 대표(오른쪽)가 지난달 29일 오전 국회에서 더불어민주당 추미애 대표를 만나 덕담을 나누고 있다.(연합뉴스)

제3지대의 성패는 두 가지 변수에 달렸다. 먼저, 새누리와 더민주의 신임 지도부가 도로 친박당과 도로 친문당이라는 조롱 섞인 인식을 얼마나 효과적으로 불식시키는지 여부이다. 새누리는 박근혜 대통령이라는 최고 권력으로부터 자유로워지는 것이 중요하고, 더민주는 당내 이견집단을 배제하는 폐쇄적인 패권주의에서 벗어나는 것이 중요하다. 새누리의 이정현 지도부는 이미 가망이 없어 보인다. 우병우에 침묵하는 이정현 대표가 안쓰러울 지경이다. 더민주도 절망적이다. 친문 훌리건들이 친문일색 전대 결과를 우려하는 당내 인사들에게 지금 댓글테러를 가하고 있다. 제3지대의 외부 환경은 점점 더 좋아지고 있는 셈이다.

제3지대를 구성하려는 정치인들의 정치력이 또 하나의 변수다. 참여할 정치 지도자들의 질과 양, 그들이 취할 전략방향 등이 정치력의 내용이다. 손학규 전 대표의 세력과 국민의당의 결합만으로는 파괴력이 임계점에 이르기 어렵지 않을까 한다. 플러스 알파가 필요하다.

소위 전략적 포지셔닝, 즉 어디에 자리를 잡을 것인지도 중요하다. 세간의 전망처럼 중도를 표방하는 것이 그럴듯하지만 뻔한 만큼 위험한 선택이다. 앞서 언급했듯이 양당을 주도하는 친박과 친문은 이념 집단이 아니라 패권 기득권 집단에 불과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3지대 세력이 스스로 중도를 선택하면 새누리와 더민주는 손쉽게 보수와 진보의 중심 자리를 차지할 수 있게 된다. 제3지대 세력이 보수·중도·진보의 삼각 프레임에 스스로 뛰어들어가 양쪽에서 두 개의 전선을 감당하는 것은 매우 피곤하고 전략적으로 어리석다. 자칫 양비론과 양시론의 함정에 빠져 허우적거리다 끝날 수 있다. 그보다는 새누리와 더민주를 기득권 세력으로 간주하고 제3지대 세력을 한국정치와 한국사회의 새로운 질서를 추구하는 개혁세력이라 내세우는 것이 낫다. 개혁세력 대 기득권세력 사이에 전선이 그어지는 것이다.

[윤석규의 공감정치] 더보기

저작권자 © 미디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