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세대론이 우리를 괴롭히는가?

2008년의 여름을 수놓았던 촛불은 그 자체로 하나의 스펙터클이었다. 그것이 가능했던 이유는 무엇이었는지, 또는 그것이 무력해진 이유는 무엇이었는지를 두고 수많은 이들의 논평이 있었다. 재미있는 것은 전자와 후자가 별개가 아니라 종종 하나로 포개진다는 사실이다. 가령 촛불시위의 한계를 논하는 대표적인 비평으로 1) 그것이 중간계급의 것이었다는 것과 2) 그것이 도시중심적(또는 서울중심적)이었다는 것이 있다. 그러나 이것들은 촛불시위의 한계뿐만이 아니라 그 성공요인을 말하는 것이기도 하다.

그것은 촛불시위의 동력이 일종의 아이러니를 품고 있다는 사실을 의미한다. 좀 단순하게 풀어 말하자면 이렇다. 촛불시위의 엑티브함은 중심부에 대한 주변부의 저항이 아니라, 모두가 중심에 포섭되고 싶어하는 욕망에서 나온다. 그런 점에서 그것은 87년 민주화운동의 흐름에 이어지는 '한국적인' 시위다. 한편으로 그것은 2002년의 시위가 보여줬던 만큼의 급진성도 보여주지 못한다. 슬프게도 이제는 모두 잊어버렸지만, 2008년 촛불시위의 '원본'이라고까지 볼 수 있는 2002년의 촛불시위 때엔 운동권과 구별되는 최초의 주창자들이 뚜렷했고, 이들은 사실상 '지도부'의 역할을 수행했다. 자발적인 시민 그룹과 운동권 단체의 사이에 껴서 논쟁을 주도하고 촛불시위의 접착제 역할을 했던 이들은, 촛불시위 이후 반전평화 운동에 관심을 가지고 팔레스타인 평화연대를 만드는 등 나름의 진화를 이루었다. 하지만 그들에 대한 기억이 희미해진 지금 소위 '노빠'들은 2000년대의 촛불시위들이 모두 자신들이 만들어낸 것이었다고 야무지게 착각한다. 그리고 (모두가 노무현에 대한 애정을 지닌 것은 아니지만) 노무현에 대해 애정을 가지는 것과 같은 방식으로 정치에 관심을 가지는 것이 '상식'이 되어버린 이 '노빠성'의 시대에 그들은 조중동이 의심할 때엔 자신들을 '시민'이라 칭하다가 어느 순간엔 '노무현'이야말로 이 모든 긍정성의 원흉(?)이라고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세대론이 등장하는 것은 필연적인 일이다. 말하자면 성찰없는 반복의 몸짓을 설명하기 위한 언어로 세대론만한 것이 없다는 것이다. 80년대의 저항이 87년 이후 주류가 되었을 때 중심은 그 참여자들에게 '386세대'라는 명칭을 부여했다. 그러나 386세대의 저항이란 것이 우리 사회에 어떤 진보적인 흐름을 이끌어 냈는지를 묻는다면 그닥 할 말이 없지 않은가? 그래서 우리는 다시 한번 새로운 세대를 '요청'하게 된다. 하는 짓이 비슷할지라도, 이번에는 '새로운 세대'가 그렇게 하기 때문에 뭔가 다를 거라고 주문을 걸어야 하는 것이다.

▲ 2008년 6월 21일 '촛불소녀'들이 45번째 촛불문화제 연단에 올라 이날 청와대와 경찰청 등 10곳에서 진행한 1인 시위 결과를 발표하며 '쇠고기 재협상' '조중동 폐간' 등을 요구하고 있다. ⓒ서정은
나는 이것이 촛불시위를 세대론으로 파악하게 하는 본질적인 이유라고 생각한다. 그렇게 추론할 수 있는 정황증거(?)는 그 세대론이 뚜렷하게 두 가지 다른 방향으로 전개되었다는 사실에서도 나온다. 말하자면 촛불시위를 해석하기 위한 '세대론'은 삐걱거렸는데, 누구도 그 점을 지적하지는 못했다. 왜냐하면 그 삐걱거림은 모순이었으되 우리에게는 공기처럼 익숙한 그런 모순이었기 때문이다.

촛불시위에 대한 세대론 (1)은 10대들을 예찬하는 세대론이다. 도대체 10대들이 어떻게 20대와는 달리 이렇게 정치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느냐는 기성세대 386의 호들갑이 있었고, 그것을 설명하기 위한 많은 가설이 제시되었다. 그런데 촛불시위가 절정에 이르고 무력해지자 갑자기 그 10대들이 우습게 여기고 386들이 한심하게 여기던 20대들을 위한 세대론이 등장했다. 이른바 '20대 논객론'인데, 이것을 세대론 (2)라고 부를 수 있을 게다. 나를 포함한 몇 명의 20대를 신세대(20대) 논객으로 칭하고 한 세트로 묶어서 담론 시장에 소개하는 문법이 나타났다. 그 때문에 나에게 글써달라는 이들이 갑자기 늘어났으니 - 그 이전엔 지면이 줄고 있었다. - 나쁠 일이야 없지만, 나로서도 좀 황당한 일이다. 십 년동안 인터넷에 비슷한 글을 쓰고 있었는데 (물론 십년 전에 쓰던 글보다는 요새 쓰는 글이 좀 더 좋다는 식의 진전이 없지는 않았지만) 갑자기 우연한(?) 계기로 전혀 다른 글을 쓰던 사람들과 한 묶음이 되어 팔리게 되었던 거다.

▲ 2008년 5월 2일 서울 청계광장 일대에서 열린 '미국산 쇠고기 수입 재개 규탄 촛불 문화제'에서 한 대학생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 ⓒ서정은
어째서 20대를 배척하는 10대들의 세대론과 20대 논객을 갈구하는 세대론이 공존하게 되었는가? 그보다는, 어째서 그런 식의 세대론의 삐걱거림이 있었는데도 아무도 이상하다고 생각하지 못했을까? 그것은 이 세대론의 본질이 어떤 논리적인 범주가 아니라 '386 이후'를 기약한다는 심정적 갈망에 있기 때문이다. 이 갈망의 단초는 이미 촛불시위 이전에 베스트셀러로 등극한 우석훈, 박권일의 <88만원 세대>에 등장한다. 변희재가 '88만원 세대론'을 자신이 싫어하는 진중권을 비롯한 386세대를 욕하는데 써먹었다는 사실은 물론 비판받아야 한다. 하지만 변희재가 그렇게 활용할 만한 구석이 <88만원 세대>에 있었던 것은 사실이다. 왜 87년 체제는 진보적인 사회를 만들지 못하고 이 시대의 젊은이들을 불행하게 만든 신자유주의 경제구조를 택하게 되었을까? 이 질문에 대답하는 것은 한국 사회를 변혁할 수 있는 어떤 결정적인 단서를 발견할 수 있는 길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만큼 어렵다. 그러므로 타케팅을 명확하게 하는 대중 교양도서를 쓰기 위해 저자들은, 이에 대해 "386세대가 나쁜 놈들이라서 그랬다."라는 식으로 설명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우석훈은 <88만원 세대>에서 기러기 아빠와 원정출산 등의 행태를 이유로 386세대를 강도높게 비판한다. (이는 그가 변희재 앞에서 386세대를 비판하는 논리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런 세태에서 느껴야 하는 진정한 '문제'는 386세대가 자신의 이념을 배반했다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그들을 시위에 나가게 한 욕망과 제 아이를 외국으로 보내서 교육시키도록 하는 욕망이 비슷한 것이라는 것이 '진정한' 문제다. 참여정부의 정치인 누구누구를 후원하는 사업가나 중간관리직들을 몇몇 만난 적이 있었는데, 이들 역시 대개는 기러기 아빠였다. 그들에게는 자신의 행위에 대한 부끄러움이 있었을까? 천만의 말씀이다. 그들은 한국 제도권 교육의 폐해를 역설하면서 자신의 아이가 외국에 가서 얼마나 행복해졌는지를 진정어린 울림으로 증언하곤 했다. 들어봐서 하는 말이지만, 이건 구차한 변명이 아니었다. 그네들은 정말로 그렇게 믿고 있었던 거다! 그러니까 기러기 아빠를 가능하게 하는 욕망은 그저 내 가족 잘 먹고 잘 살게 하자는 욕망조차도 넘어선다. 대한민국 교육에 대한 가장 급진적인 비판과 기러기 아빠의 욕망은 공존할 수 있을 뿐더러 일맥상통하는 것이었다. 내가 적극적으로 대안교육을 찾으려는 이들을 불신하게 된 것도 이런 세태를 본 이후였다. 오늘날 대한민국에서 '창의성을 말살하는 값싸고 질나쁜 공교육'을 그대로 받아내고 세상에 나오는 것만큼 급진적인 일이 어디 있겠는가? (물론 그걸 견뎌낼 수 없는 이들이 있고, 그런 이들에게 그걸 감내하기를 요구하는 것은 폭력이다. 하지만 그런 이들은 대개는 대안학교에 갈 돈이 없고 그냥 검정고시를 친다.) '값싸고 질나쁜 공교육'에 대한 비판적 의식은 다분히 시장주의적이고 그렇기 때문에 그들은 곧바로 '사교육 고고씽!!'을 외치게 된다. 신해철의 교육비판이 '그러니까, 결론은 하이스트!!'로 수렴되는 세태야말로 이러한 대한민국 상식인들의 세계에 가장 부합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하지만 사람들은 그 지점을 애써 보지 않으려고 한다. 신해철이 죽일 놈이 되는 이유도 그래서다. (물론 그의 변명은 세련되지 못했고, '안티'들을 불러올만 했다.) 사람들은 친일파를 욕하지만, 또한 매우 자연스럽게 일제 치하에서는 친일파가 아니고서는 살 수 없었다고 말한다. 노동운동가 단병호의 딸이 검사가 되는 것도 자연스러운 나라다. 정치에 대해 많은 이들이 불만을 가지고 또한 기대를 가지는 이 나라에서 정치가 성립하기 힘든 이유다. 부르주아에 대항하는 노동계급의 의식을 성립하기 이전에 이들은 모두 노동계급을 뛰어넘어 '시민'이 되려고 하니까. 하지만 이것은 그저 '비판'만 하고 지나가야 할 일이 아니다. 아무리 '비판'한다 하더라도 한국 사회의 그러한 구조가 바뀌지는 않는다. 노동운동가의 딸이 검사가 되는 것도 한국에선 자연스러운 일이라고 받아들여야 한다. 그러지 않는다면 우리의 현실인식과 담론인식은 언제나 분열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한국사회에서 무력한 지식인에 대한 대중의 혐오가 곧잘 표출되는 것도, 나는 이러한 세태와 관련이 있다고 본다. 말하자면 한국 사회의 생활인들은 이러한 간극을 체험적으로 알고 있다. '몸'과 '입'이 따로 놀아야 한다는 것을 아는 것이다. 반면 지식인들은 미국에서 어쨌네 유럽에서 어쨌네 하면서 제 '입'에 우리의 '몸'을 맞춰야 한다고 말한다. 어찌 우스워 보이지 않겠는가?

안티조선 운동의 기수였던 강준만 교수가 <한국 현대사 산책> 시리즈를 쓰면서 깨달은 것도 그런 '진리'였다고 생각한다. 그는 그레고리 핸더슨이 한국을 규정하면서 사용한 '소용돌이의 정치'라는 말을 적극적으로 활용한다. 마치 블랙홀이 모든 빛을 빨아들이는 것처럼 한국 사회의 중심은 주변의 모든 자원을 빨아들인다. 운동권 바닥에서 발언권을 가질래도 명문대를 가야 하는 이 '현실'을 우리는 어느 정도는 인정하고 들어가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한국 사회의 주변부에서 '그럭저럭 살만한 진지'를 구축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런 일이 가능할 수는 있는데, 심지어 그렇게 하려고 해도 학벌 등 중심부에서 '먹어주는' 자원을 하나 정도는 가져야 한다. 이래서야 그걸 주변부라고 볼 수 있겠는가? 하고 싶은 음악을 하겠다고 홍대에서 몇 년 정도 배회하고 돌아가도 '괜찮은' 젊은이들은, 명문대생이다. 모두가 알고는 있지만 어떻게 주제화해야 하는지 난감해 하는 그러한 '현실'이다.

이 인식 앞에서 우리는 쉽사리 두 가지 선택의 유혹을 받는다. 하나는 "운동권도 다 똑같지. 세상은 어차피..."라는 허무주의의 길을 택하는 것이다. 대부분의 한국 사회의 상식인들은 무의식으로는 여기에 굴복했고, 그것만으로는 세상이 재미가 없어서 가끔 정치인들에게 신경질을 부린다. 다른 한쪽은 한국 사회를 사회교과서 혹은 그 이후의 책에서 발견한 이국의 '보통의 사회'로 뜯어고치겠다는 욕망을 가지는 것이다. 많은 지식인들은 이 길을 택한다. 실제로 그들이 무의식 레벨에서까지 그게 된다고 믿지는 않는 것 같지만, 어쨌든 이 길을 택하면 글을 쓰기는 쉽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양갈래 길은 본질적인 수준에서 대립하지 않는다. 그것들은 모두 허무주의의 매개다.

"미친소, 너나 먹어!"라는 촛불시위대의 외침은 문화평론가 이택광의 말대로 '쾌락의 평등주의'를 보여준다. 그리고 <88만원 세대>의 공저자 박권일의 냉소적인 지적처럼, 한국 사회의 평등주의는 사회 구성원들의 평등을 문제삼지 않는다. '나'와 '부자' 사이의 평등만 문제삼을 뿐이다. 그것은 비판받아야 할 일일까? 물론 그럴 수도 있다. 하지만 촛불시위가 그토록 호소력있고, 강력하게 사람들을 사로잡았던 이유 역시 바로 거기에서 기인한 것이 아니겠는가? 그렇다면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이 소용돌이의 사회, 아니 블랙홀의 사회를 분석하고 중심을 지향하는 개개인들의 욕망을 인정하는 토대 위에서 변혁의 가능성을 모색하는 것일 게다. 이것은 물론 "내 말을 들으면 세상이 좋아질 것이다!!"라고 섣부른 훈수를 두는 것보다는 매우 어려운 작업이지만, 이런 작업이 없이는 한국 사회의 변혁은 불가능하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이 질문을 진지하게 받아들일 때에, 촛불시위를 둘러싼 세대론의 망령도 떨쳐낼 수 있을 것이다.

'새로운 세대'는 우리를 구원하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우리의 몸이 그 구원을 거부하고 있기 때문이다. 결국 새로운 세대 역시 외계에서 온 생물체가 아니라 한국 사회의 밥과 반찬을 먹고 이 사회에서 생존할 수 있는 '몸'집을 불리며 커온 이들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 몸과 함께 몸을 넘어서는 길을 고민해 봐야 하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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