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정우는 2012년 이후 충무로 최고의 블루칩이라 해도 손색없을 만큼 강력한 티켓 파워를 보여주고 있다. 2013년 초에 개봉된 '베를린' (717만명)을 시작으로 '더 테러 라이브' (2013년, 558만명), '군도, 민란의 시대' (2014년, 477만명), '암살' (2015년, 1270만명), '아가씨' (2016년, 428만명)에 이르기까지 하정우가 출연하는 영화들은 투입된 스케일에 비해 약간 성적이 아쉬웠던 '군도'를 제외하곤 흥행몰이에 성공하였다.

박찬욱 감독의 '아가씨'를 통해 특유의 능글맞은 매력을 발산한 하정우는 푹푹 찌는 무더위를 식혀줄만한 영화 한 편을 새롭게 선보였다. 2014년 '끝까지 간다'를 통해 숨 막히는 전개로 흥행과 비평의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은 김성훈 감독의 두 번째 연출작 '터널'이다. 총체적 부실공사로 지어진 터널이 붕괴되면서 그 안을 지나가다가 갇히게 된 자동차 영업사원의 고군분투를 담은 이 영화는, 포스터에서 보이듯 하정우라는 배우의 원맨쇼에 상당 부분 의존하게 됨을 암시한다.

영화 <터널> 스틸 이미지

영화 ‘터널’은 2013년도에 개봉해 예상을 훨씬 뛰어넘는 대박흥행을 기록한 영화 '더 테러 라이브'를 연상시킨다. '더 테러 라이브'는 극중에서 테러 실황을 중계하는 하정우의 신들린 원맨쇼 덕분에 흥행에 성공할 수 있었다. '터널'도 마찬가지이다. 홀로 터널에 갇힌 상황에서 주인공이 어떻게 고립된 상황을 헤쳐 나오고 외부와 소통하는가를 보여줘야 하는데, 그런 원맨쇼를 펼쳐 보일 수 있는 배우는 하정우 외에는 딱히 떠오르지 않는다.

역시나 하정우는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다. 특유의 능글능글함으로 고립된 절망스런 상황에서도 여유를 잃지 않고 관객들에게 웃음을 선사한다. 개와 함께 케이크를 먹기 위해 다투는 장면이나 본인의 소변을 마시기 전에 망설이는 그런 모습 등은 하정우가 아니면 쉽게 공감대를 선사하기 어려운 장면들이었다.

영화 <터널> 특별 포스터

하지만 초반부에 터널이 무너지면서 주인공이 고립되고 외부의 구조대원 대경(오달수)과 접촉하게 되는 장면이 지나고 나선, 영화의 전개는 다소 늘어지는 경향이 보인다. 김성훈 감독의 전작 '끝까지 간다'에서 느꼈던, 영화 끝까지 거침없이 몰아붙이던 쫄깃함을 너무 기대해서 그랬는지는 몰라도 영화의 전개가 다소 힘이 부쳐 보이는 느낌이었다. 그러나 하정우의 원맨쇼가 그런 지리멸렬함을 상쇄시켜준다.

올 여름에 '부산행', '터널' 등의 재난영화가 유난히 돋보였는데, 이 두 영화의 공통점은 재난 속에서 인간의 이기적인 행태가 추하게 드러나고, 정부는 무능력한 모습으로 일관한다는 점이다. '터널'에 등장하는 장관(김해숙)은 사태의 심각성과 시급함에도 아랑곳 않고 터널에 갇힌 정수(하정우)의 아내 세현(배두나)과 기념 촬영하기에 여념이 없고, 지극히 형식적인 멘트로 일관하는 등 사태 해결에 아무런 도움을 제공하지 못한다.

또한 부실공사로 무너진 터널 안에 갇힌 정수를 구하지 못했음에도 불구하고 투자비용의 피해를 줄이기 위해 서둘러 제2터널 공사를 강행하는 모습은 우리 사회의 비정한 이기적인 모습을 풍자한다.

정수가 구조된 후, 국민 성명을 통해 정부가 구조를 위해 최선을 다했노라고 장관은 의기양양하게 발표하지만, 그 방송을 틀어놓은 애견보호센터 곳곳에서 울려 퍼지는 개소리와 묘하게 오버랩된다.

영화 <터널> 스틸이미지

끝까지 구조의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 마지막까지 터널을 살피는 구조대원 대경(오달수)의 모습과 끝까지 생명의 끈을 놓지 않고 사투를 벌이는 정수(하정우), 그리고 정수와 세상과의 유일한 연결통로 역할을 해준 클래식 방송 등의 설정은 지극히 당연하게 보여야 하는 모습임에도 불구하고 더욱 비현실적으로 다가온다. 그만큼 일련에 펼쳐진 대형 재난사고 등을 통해 우리는 영화보다 더욱 비현실적인 비참한 현실을 맞닥뜨렸기 때문에 더욱 그런 감정이 느껴졌을 것이다.

하정우라는 배우의 매력을 임계치까지 활용한 흔적이 역력한데, 한편으론 걱정이 들기도 했다. 하정우의 매력을 너무 소진시키는 것은 아닌지. 하정우의 다음 작품에서는 부디 스토리 라인이 영화 전체를 지배하고 그 안에서 하정우의 매력 발산이 적절하게 가미된 그런 영화가 제작됐으면 하는 바람이 들었다.

김성훈 감독과 하정우와의 만남에 대한 기대치가 너무 높았던 나머지 상대적으로 아쉬움이 더 많이 남았던 영화 '터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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