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HD 텔레비전 판매량이 HD 텔레비전 판매량을 넘어섰다는 소식이 들린다. 내년 2월 수도권을 시작으로 지상파 UHD 방송을 단계적으로 도입한다고 하니 단말기 판매량이 늘어나고 있는 것일 게다. 그런데 한 가지 생각이 꼬리를 문다. ‘지금 사는 게 합리적인 소비냐?’라는 물음이다.

가전업체들이 최근 채택된 지상파 UHD 방송 표준인 IP(인터넷 프로토콜) 기반 방식의 텔레비전을 발 빠르게 생산해 판매에 들어갔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콘텐츠 암호화니 안테나 내장이니 하는 많은 문제들이 논란되고 있는 상황에서 그럴 가능성은 낮다. 그러면 아무리 봐도, 지금 시청자와 소비자에게 판매되는 UHD TV는 유럽식 UHD TV일 수밖에 없을 듯하다. 나중에 별도의 비용과 수고를 들여 셋톱박스를 달아야 시청이 가능해지는 상당한 번거로움이 따른다. 지금은 ‘아직 UHD 텔레비전 사지 마세요!’라는 목소리가 필요한 때가 아닌가 싶다.

디지털 유럽' UHD 인증을 획득한 삼성전자 2016년형 UHD TV 모델 [연합뉴스 자료사진]

셋톱박스가 필요하지 않은 지상파 UHD 텔레비전의 생산․판매 시기를 정확히 예측하기 어렵게 만드는 논점 중에 이른바 ‘안테나 내장 문제’가 있다. 지상파 방송사들은 직접수신 환경 개선, UHD 방송 도입에 따른 가전업체의 이득 등을 이유로 수신용 안테나를 텔레비전에 탑재하여 생산하게 하자고 주장한다. 반면, 가전업체들은 해외 수출용과 국내 판매용 이원화에 따른 비용 부담 등을 이유로 반대한다. 하지만 지상파 디지털 전환 등 과거 사례에 비춰볼 때, 정작 더 중요한 이유는 안테나를 내장해서 판매했다가 제대로 나오지 않으면 모든 민원이 가전업체로 쏟아질 것에 대한 우려라고 보는 게 정확하다.

바람직한 해법을 찾는 게 고민이다. 결코 사소한 문제가 아니다. 유료방송에 가입하는 주요 이유의 하나가 ‘지상파방송이 잘 나오지 않아서’라는 데서 알 수 있듯이, 우리나라 도시의 공간은 전파의 직접수신에 결코 녹록지 않다. 지상파방송의 디지털 전환 과정에서 일부나마 보급하기 시작한 실내 안테나는 이에 대한 방증이다.

지상파 방송사들의 주장은 HD 때보다 수신효율이 몇 배나 좋아지기 때문에 안테나 내장을 하는 게 최선이라는 것으로 보인다. 기꺼이 여기에 한 표를 보태고 싶지만, 우리집의 경험은 고개를 갸우뚱하게 만든다. 거실에 있는 HD 텔레비전에 부착한 실내 안테나의 방향을 자주 바꿔줘야 화면이 제대로 나오는 경우가 많아서다. 특히 같은 거실 한 편에 있는 컴퓨터를 켤 경우 이런 일이 매우 빈번하다. 컴퓨터에서 나오는 전자파가 간섭을 일으켜 텔레비전 신호의 수신을 방해하기 때문이다. 실내 안테나야 이동이 간편해 그때그때 전파가 잘 잡히는 쪽으로 변경해 주면 그만이다. 하지만 안테나를 내장할 경우, 육중한 텔레비전 자체를 수신이 잘되는 방향으로 자주 변경해야 하는 상황이 펼쳐진다. 만만찮은 불편함이다.

수신효율이 몇 배나 좋아지기 때문에 ‘쓸데없는 걱정’이라고만 말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수신이 원활하지 않은 데 따른 민원이 자신들에게 쏠릴 것이란 가전업체들의 우려와 맞물리면 감당하기 어려운 불만 사항으로 비화할 위험성도 충분하다. 이에 대한 충분한 검증이 이뤄졌는지도 알 수 없다. 그렇지 않았다면, 안테나 내장만을 고집할 일은 아니다.

양호한 직접수신 환경을 구축하는 데 안테나 내장만이 유일한 방법은 아니다. 텔레비전을 판매할 때 실내 안테나를 함께 보급하면 동일한 효과를 낳을 수 있다. 디지털 전환 과정에서 이미 시도했고 지금도 진행 중인 일이다. 지상파 UHD 도입에서 실효성 있는 해법은, 이런저런 새로운 위험이 따르는 안테나 내장 문제로 ‘비약’하는 것이 아니라, 실내 안테나의 보급을 텔레비전 판매와 병행하도록 의무화시키는 쪽으로 ‘공고화’시키는 게 맞아 보인다.

유료방송처럼 폐쇄형 IPTV를 구현하기 위한 콘텐츠 암호화에 매진하는 데 들이는 공력을 좀 더 세심하게 시청자에게 돌리는 노력이 아쉽다. 그러나 저러나 지상파방송에서 ‘지금 구입하는 것은 유럽식 UHD TV이며, 나중에 시청하시려면 셋톱박스가 필요하다’는 정보를 알려주는 뉴스를 접하고 싶다. 큰 광고주인 가전업체한테 밉보일 수 있는 아이템이니 기대하기 어려운 일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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