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C <PD수첩> ‘한미 쇠고기 협상, 그후 1년’에 대해 조선일보는 30일자 14면 <진실 또 외면한 ‘변명 수첩’…시청자들 “공중파의 횡포”>에서 “<PD수첩>이 작년과 같은 주장을 반복하며 ‘변명 방송’으로 일관했다”고 지적했다.

그런데 조선일보 기사에는 자신들이 왜 <PD수첩> 1주년 방송을 ‘변명 방송’이라고 규정하는지 구체적 근거가 나와있지 않다. 조선일보가 지난 1년동안 <PD수첩> 공격에 사용해왔던 ‘주장’의 반복적 나열뿐이다. 이들의 주장은 크게 2가지로 나뉜다.

▲ 조선일보 30일자 14면
첫번째는 ‘번역 왜곡’ 부분이다. 이는 아레사 빈슨의 어머니가 딸의 사인에 대해 CJD(크로이츠펠트-야콥병)이라고 말한 부분을 <PD수첩>이 자막에서 vCJD(인간광우병)로 바꾼 것을 의미한다.

조선일보는 “<PD수첩> 제작진은 이날 ‘쇠고기 협상 1년을 되돌아보겠다’며 시작한 방송에서 검찰이 문제시하고 있는 ‘번역 왜곡’에 대해 취재원의 발언 취지를 살린 것이라는 주장을 폈다. <PD수첩>은 또 미국 TV 드라마와 발간일자가 불분명한 외신 등을 인용하며 스스로를 애써 정당화하려는 모습을 보였다”며 “방송은 ‘이 여성이 딸의 사인을 설명하며 vCJD와 CJD를 혼용했다’고 말했다. 취재원의 ‘말실수’였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는 궁색한 변명”이라고 지적했다.

‘발간일자 불분명 외신’? 타임스 기사도 모르니?

그런데, <PD수첩>에 문제를 제기한 번역자 정지민씨는 2008년 6월25일 MBC 시청자 게시판에서 “사실 <PD수첩>이 지금 비난받는 건 번역상의 문제라고 보기 힘듭니다. vCJD이니 CJD이니 이것도…사실 전 <PD수첩>팀의 해명은 정당하다고 봐요. 죽은 여자분 어머니가 계속 혼동해서 말하면서도, 결국은 (사인을) 인간광우병으로 의심하고 있었고요”라며 ‘취재원의 발언 취지를 살렸다’는 제작진의 입장을 옹호한 글을 올린 바 있다.

▲ 28일 밤 방송된 PD수첩 ‘한미 쇠고기 협상, 그후 1년’
조선일보가 지적하는 ‘발간일자가 불분명한 외신’ 역시 정체불명의 자료가 아니다. 영국 더타임스 1997년 12월4일자 <Beef on bone banned over CJD fears> 기사다. 비록 <PD수첩>이 이날 방송에서 타임스 발간일자를 명확하게 적시하지 않았지만, 이는 인터넷 검색으로 찾을 수 있는 기사인데 조선일보는 자료조사도 안하고 기사를 작성한 것인가.

조선일보는 이어 “<PD수첩>은 지난해 이 여성의 인터뷰 직후 미국 버지니아 주정부의 보도자료 제목을 ‘인간광우병 사망자 조사’라고 번역해 제시했다. 하지만 자료의 실제 제목은 ‘버지니아 보건국, 포츠머스지역 여성의 질병에 대한 조사’였다”며 “당시 번역자였던 정지민씨는 29일 본지와의 통화에서 ‘원본 테이프는 사망 여성이 위장절제술을 받은 이후 이상 증세가 나타났다는 내용으로 시작한다. 이번 방송에서까지 이를 배제하고 일년 전과 같은 주장을 하다니 실망스러울 뿐’이라고 말했다”고 보도했다.

<PD수첩>이 ‘인간광우병 사망자 조사’라고 번역한 버지니아 주정부 보도자료의 실제 제목이 ‘버지니아 보건국, 포츠머스지역 여성의 질병에 대한 조사’(VIRGINIA DEPARTMENT OF HEALTH INVESTIGATESILLNESS OF PORTSMOUTH WOMAN)라는 조선일보의 주장은 명백한 사실이다. 하지만 이같은 ‘제목 변경’이 ‘왜곡’이라고 보긴 힘들 것 같다. 주목해야 할 것은 ‘상황의 맥락’이기 때문이다.

버지니아 주정부가 발표한 보도자료를 보면 “(빈슨의 사인을 알아내기 위해) MRI 뇌 스캔 사진을 질병통제센터로 보냈다. 버지니아 대학과 국립 프리온질병감시센터에서 추가적 검사가 진행될 예정이다. 최근 언론들은 환자 질병을 vCJD와 연결해 보도하고 있다. 추가 검사만이 무엇이 사인인지 밝힐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라는 내용이 나온다. 이는 당시 아레사 빈슨의 사인을 두고 미 언론에서도 vCJD, 즉 인간광우병일 가능성이 가장 강력하게 제기됐음을 의미한다.

맥락 고려한 ‘제목변경’이 ‘왜곡’인가?

검찰에 제출된, 인터뷰 원본에서 아레사 빈슨 어머니도 “딸이 위 절제 수술로 인한 여러가지 후유증을 겪었다. 이로 인한 질병일 가능성 때문에 여러가지 검사를 했지만 아무 이상이 없는 것으로 나왔으며, 결국 의사로부터 MRI를 통한 인간광우병일 가능성이 의심된다는 통보를 받았다”고 밝혔다.

이같은 상황으로 인해 <PD수첩>은 ‘버지니아 보건국, 포츠머스지역 여성의 질병에 대한 조사’라는 긴 제목 대신 ‘인간광우병 사망자 조사’라고 쓴 셈이다. 표현의 정확성 측면에서 ‘인간광우병 의심 사망자 조사’라고 쓰는 것이 더 정확하겠으나 제작상의 실수를 검찰 수사까지 받아야 할 왜곡이라고 보긴 어렵지 않을까.

그리고, “원본 테이프는 사망 여성이 위장절제술을 받은 이후 이상 증세가 나타났다는 내용으로 시작한다. 이번 방송에서까지 이를 배제하고 일년 전과 같은 주장을 하다니 실망스러울 뿐”이라는 정지민씨의 주장에는 어폐가 있다. 지난해 방송에서 <PD수첩>은 아레사빈슨의 사인에 대해 “인간광우병일 가능성이 크다”고 보도했지만 “아직 최종 결과가 나오지 않았기 때문에 ‘인간 광우병이 아닐 가능성’도 있다”고 분명히 언급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PD수첩>이 아레사 빈슨 사인의 가능성에 대해 일일이 다 보도했어야 했다는 말인가. 그렇게 하면 어떻게 프로그램을 제작할 수 있을까.

두번째는 <PD수첩> 방송에 대해 시청자들이 “공중파의 횡포”라고 반발하고 있다는 것이다. 조선일보는 “작년에는 한 미국 여성이 인간광우병(vCJD)으로 죽었다고 몰더니 이제는 CJD(크로이츠펠트야코프병)와 vCJD의 구분을 흐리는 내용으로 도배를 하네요”(안동욱씨) “작년엔 주저앉는 소를 계속 보여주더니…이번엔 조사도 안 끝난 내용을 법정에서 다룰 생각은 않고 ‘우리는 잘못 없다’ 식으로 일관했다. 이는 언론의 힘을 이용한 또다른 횡포”(박종수씨) 등의 의견을 전하며 제목을 <진실 또 외면한 ‘변명 수첩’…시청자들 “공중파의 횡포”>라고 뽑았다.

조선일보, 1년 내내 같은 주장 되풀이…이제는 경외감마저

그런데, 시청자 게시판에 올라온 1000여개의 의견을 보면 이날 방송에 대해 부정적인 의견보다 “힘내라”는 응원성 글이 훨씬 많다. 1페이지부터 73페이지까지 올라와있는 시청자 의견중 “<PD수첩> 여러분 힘내세요. 국민들은 진실을 알고 싶습니다” “해도 너무한 문화방송에 대한 겁박” “피디수첩 쌩유~더욱 더 화이팅” “어제, 오랜만에 MBC에서 좋은 방송 보았습니다” “MBC는 진정으로 방송의 책무를 다한다” 등 응원성 글이 얼마나 많은지는 제목만 대충 훑어봐도 알수 있다.

물론 “너무 한심한 방송국” “아집과 조작 변명으로 일관하는 <PD수첩>은 없어져야 한다” “내부 검증 시스템이 취약한 PD저널리즘” 등 부정적인 게시글도 간혹 눈에 띄긴 하지만 조선일보는 부정적 게시글만 뽑아서 기사화했을 뿐이다. <PD수첩>에 긍정적 반응이 담간 게시글은 투명글이라도 되나.

▲ 28일 밤 방송된 PD수첩 ‘한미 쇠고기 협상, 그후 1년’
이날 방송에는 경찰인 설리번이 루터킹에게 폭력을 가했다는 뉴욕타임스의 보도가 결국 오보로 밝혀졌음에도 당시 미국 대법원은 ‘현실적인 악의가 없는한 언론자유가 보장돼야 한다’는 취지의 판결을 내렸다는 내용이 나온다. 지난 2000년 대한민국도 농림부장관이 자신에 대해 ‘매국행위를 저질렀다’는 광고를 낸 축협 중앙회에 대해 명예훼손 소송을 제기하자 대법원이 ‘표현이 조금 과하더라도 공직자는 자신의 정책에 대해 비판을 받아야 한다’는 취지의 판결을 내렸다고 한다.

허술한 내용을 보니, 조선일보가 <PD수첩>을 꼼꼼히 따져본 것 같지 않긴 하지만 조선일보는 이같은 판결에서 아무것도 깨닫지 못했나 보다. 아니면 자신들에게 큰 위협으로 다가왔던 지난해 촛불집회의 배후세력(?)인 <PD수첩>에 대한 적개심을 도저히 잠재울 수 없었던지.

조선일보는 명확한 근거를 통해 <PD수첩>이 ‘변명방송’이라는 결론을 내린 것이 아니라, 처음부터 <PD수첩>이 ‘변명방송’임을 전제하고 자신들의 주장을 얼기설기 끼워맞춘 것으로 보인다. 1년 내내 같은 말만 되풀이하는 이들의 끈질김에 이제는 경외감마저 생기려 한다. 치열한 기자정신이란 바로 이럴 때를 두고 이르는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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