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권 주류 사이에 박근혜 정권의 실정 덕분에 이대로 가면 수월하게 정권을 교체할 수 있을 것이란 낙관주의가 존재한다. 대세론도 형성되어 있다. 평행이론이라 불러도 좋을 만큼 15년 전 상황의 판박이다. 2001년 당시 야권인 한나라당의 이회창 총재 주변에는 낙관주의가 넘쳐났다. 대세론도 굳건했다. 본격적인 선거운동을 시작하기도 전에 일부 흥청망청하는 분위기가 감지될 정도였다. 하지만, 우리가 아는 것처럼 혜성처럼 등장한 노무현에 의해 대세론과 낙관주의는 신기루처럼 무너졌다.

2016년 현재 제2의 노무현은 야권이 아니라 여당인 새누리당에서 나타날 가능성이 크다. 2001년 당시 여권 내부에도 주류인 동교동계의 지원을 받는 이인제가 대세론을 형성하고 있었듯이 현 여권에는 친박 주류의 지원을 받는 반기문 대망론이 갈수록 기대감을 높이고 있다. 여권에서 누군가 반기문을 딛고 나온다면 이회창 대세론의 데칼코마니인 야권의 문재인 대세론을 손쉽게 격파할 것이라 보는 것이 허황되지 않다. 더구나 그가 노무현처럼 지향하는 가치와 스타일에서 전통적인 여권진영 정치인들과 사뭇 다른 모습을 보여준다면 그 가능성은 배가될 것이다.

반기문 UN 사무총장 (연합뉴스 자료사진)

야권의 대선 전망이 마냥 밝지만은 않은 또 하나의 이유는 야권의 대선 주자들이 전부 고만고만한 난장이로 보이기 때문이다. 태산 같은 기개와 포효, 진취성, 패기 등을 갖춘 인물을 찾기 어렵다. 지금은 '나를 따르라' 외치면서 앞장서는 카리스마적 지도자의 시대가 아니라는 반론이 있다. 대신 우리가 처한 상황과 자신이 하려고 하는 일을 국민에게 조곤조곤 설명하고, 이해와 공감을 구하는 소통형 지도자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선뜻 동의하기 어렵다.

야권 주자들 가운데 일부는 구체적 정책에 매달리기도 한다. 「더 플랜」의 램 이마뉴엘은 미국 민주당이 유권자들로부터 유리된 핵심 이유를 커뮤니케이션 기법의 미숙함보다는 정책적 비전이 결여로 본다. 반대로 「코끼리는 생각하지 마」의 조지 레이코프는 미국 민주당의 왜소화가 공화당에 비해 언어적 프레임에서 무능을 보이기 때문이라 진단한다. 둘 다 상대방의 주장을 완전히 배격하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 강조점은 분명 다르다. 개인적으로 우리 현실에는 이마뉴엘보다 레이코프의 진단이 더 부합한다고 본다. 우리나라가 처한 상황과 국민의 삶이 조건이 매우 엄혹하기 때문이다. 청년들의 좌절이 너무 깊기 때문이다. 구체적인 방법 이전에 멈춘 심장을 뛰게 할 꿈과 희망, 열정이 우선이다.

국민과 소통하는 지도자, 즉 뛰어난 커뮤니케이터(communicator)는 대부분 뛰어난 선동가다. 위대한 선동가는 정책을 말하기보다 꿈을 이야기한다. 마틴 루터 킹은 워싱턴 광장에 울려 퍼진 연설에서 인종차별의 현실과 구체적 대책 대신에 아이들이 피부 색깔을 뛰어넘어 함께 뛰어 노는 미래의 꿈을 이야기했다. 프랭크린 루스벨트는 '궁핍과 공포로부터의 자유'가 모든 인간이 누려야 할 필수적인 자유가 되는 세상에 대한 꿈을 나누어주었다. 노무현은 반칙과 특권이 없는 사회에 대한 비주류의 오랜 꿈으로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였다.

통일민주당의 합당 결의장에서 “이견 있습니다. 반대 토론을 합시다”를 외쳤던 국회의원 노무현 ⓒ노무현재단

오는 대선에서, 여야를 막론하고, 큰 울림을 만들어내는 위대한 선동가의 출현을 기대한다. 특히 우리 국민의 삶을 억압하는 악의 근원과 전면전을 선포하고 최고사령관을 자임하는 용기를 가진 지도자가 나오길 바란다. 대한민국의 통합과 성장을 가로막는 불평등과의 전쟁을 선포하고, 부와 권력을 독식하는 독점세력을 분쇄하고, 독버섯처럼 우리 사회 구석구석에 뿌리내린 특권을 일소하며, 학력, 계층, 성별, 지역 등 모든 형태의 차별을 끝장내겠다는 선언 말이다.

야권에서 중도 타령하는 이들은 말이 너무 센 것은 좋지 않다 하면서 반대할지 모른다. 웃기는 소리다. 보수진영이 훨씬 전투적인 용어를 많이 사용한다. 개신교의 찬송가는 십자군 등 전쟁용어로 가득 차 있다. '악의 축'과 전쟁을 선포한 것은 부시 대통령이다. 일부 언론에서는 우리 사회를 극단적 대립으로 몰고 가는 것은 좋지 않다고 비판할지 모른다. 극심한 불평등 때문에 우리 국민은 이미 생존을 위한 소리 없는 전쟁을 치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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