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JTBC서 방영 중인 <걸스피릿>에 참가하는 걸그룹들은 한결같은 목소리로 이지혜에 고마움을 표한다. 그도 그럴 것이 다섯 명의 그루(심사가 아닌 조언을 목적으로 하는 패널) 중에서 유독 이지혜만이 어린 걸그룹들을 감싸고, 격려하는 모습을 보이기 때문이다. 사실 그런 모습의 이지혜는 다소 낯설고 어색하다. 지금까지의 이지혜는 그런 이미지는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25일 방영된 <해피투게더>에 출연한 이지혜를 보면서, <걸스피릿>의 모습들이 설정이나 가식이 아니라 자신의 삶의 경험에서 우러난 진심이라는 생각을 갖게 됐다. 요즘은 사라진 생계형 연예인이라는 단어를 새로 꺼내 쓰게 한 이지혜의 <해피투게더> 활약은 딱 한 마디로 ‘웃픔’ 그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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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구 히트 조합이라고 했지만 대체로 시선은 래퍼 세 명에게 모아졌다. 아무래도 그들이 더 핫하고, 방송 재능도 더 좋아 보였다. 특히 딘딘의 좌충우돌 예능감은 단연 돋보였다. 그런 완강한 신진의 힘을 뚫고 이날 <해피투게더>가 결국엔 이지혜가 주인공이 될 수 있었던 것은 그녀의 악착같은 분량 욕심 때문이었다. 신인들 앞에서 더 신인처럼 분량을 확보하기 위해 몸부림치는 이지혜의 모습은 필사적으로 보였다. 거기에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다.

샾 해체 이후 이렇다 할 방송활동이 없었던 이지혜는 몇 년 전부터 경제적 어려움을 겪었다고 한다. 아주 많지도 않지만 그렇다고 어리지도 않은 나이도 문제였고, 인기가 있는 것도 아니고 없는 것도 아닌 어정쩡한 위치에서 방송 섭외는 들어오지 않고, 그렇다고 연예계 활동을 접은 것도 아니라면 아무래도 수입보다 지출이 훨씬 많은 것은 당연하다.

결국엔 집세나 공과금을 충당하기도 어려운 지경까지 몰려 원형탈모까지 왔다니 그 스트레스를 어림짐작할 수 있다. 그렇게 마지막까지 몰린 상황에서 이지혜는 배우 채정안에게 사정을 털어놨다고 한다. 여기서 놀라운 사실은 그런 이지혜의 사정을 들은 채정안이 다음날 바로 천만 원을 보내주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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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디 돈이라는 것은 잘나가는 사람에게는 잘 빌려줘도 진짜 힘들고 필요한 사람에겐 그렇지 않은 것이 세상인심이다. 우선 채정안의 의리와 배포가 놀랍고, 그럴 만큼 신뢰를 쌓은 이지혜에 다시 놀랐다. 다수가 아니더라도 누군가에게 그런 정도로 신뢰를 주고 있다면 그의 인생은 결코 쉽게 볼 수 없는 무엇이 있다고 생각할 수 있기 때문이다.

사실 이지혜는 샾 해체 이후로도 그다지 긍정적인 이미지를 대중에게 주지 못했다. 가슴 성형설에 맞서기 위해 비키니를 입고 기자들 앞에 선 것이나, 다시 몇 년 후에는 신기가 있다는 말을 한 것 등이 결과적으로는 그녀에 대한 부정적 이미지로 작용했다. 물론 무플보다 악플이 낫다는 말처럼 노이즈 마케팅마저도 절실한 상황이었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아니 우리가 이지혜를 너무 부정적인 면만 바라봤다는 반성(?)을 하게 된다. 사실 대중이 연예인을 알 수 있는 부분이 너무도 제한적이기 때문에 한번 이미지가 잘못되면 영영 그 그릇된 이미지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경우도 흔하다면 흔한 일이다. 그걸 견디고 어쨌든 연예계에서 버틴 것에 왠지 모를 박수를 보내고 싶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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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피투게더>에서 남들은 모두 웃을 때에도 혼자 웃지 못하고 자기 멘트나 개인기를 생각해내기 위해 긴장한 모습은 그래서 웃기면서도 슬퍼 보였다. 그런 어려운 시기를 견디며 보냈기에 <걸스피릿>에 나와 힘겹게 경쟁하는 후배들에게 기왕이면 따뜻한 말 한 마디라도 해주려고 했을 거라는 것도 이해가 됐다. 드라마에서 이종석이 한 말처럼 요즘 방송에서 보이는 이지혜의 달라진 모습의 맥락이 보이는 것만 같았다.

이지혜는 방송이 끝날 무렵 이런 말을 했다. “제 노래에 자부심을 갖고 살았어요. 그래서 웃기는 게 안 창피한 거에요”라고 했다. 그 말 또한 짠했다. 언젠가 그리 멀지 않은 날에 이지혜가 좋은 노래로, 예능인이 아닌 가수로 방송에 설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

매스 미디어랑 같이 보고 달리 말하기. 매일 물 한 바가지씩 마당에 붓는 마음으로 티비와 씨름하고 있다. ‘탁발의 티비 읽기’ http://artofdie.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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