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8월 21일 일요일은 1904년 기상관측 이래 112년 만에 최고온도를 기록하면서 전국 주요지역에 폭염경보가 내려지는 등 그야말로 가장 무더운 여름날 중 하루였다. 국민안전처에서 보낸 폭염경보 문자에는 노약자는 야외활동을 자제하고 충분한 수분을 섭취할 것을 권유하고 있었고, 실제로 바깥을 보니 이글거리는 아지랑이가 피어오르는 듯 아스팔트길이 뜨겁게 달궈지고 있었다. 도대체 이런 날씨에 서울 한복판에서 집회를 하고 행진까지 해야 하는 것일까 스스로에게 되물어보았다.

불과 한 달 전에 직접 집회신고를 하러간 당사자로서 기상청이 이번 주말에는 무더위가 가신다는 기상예보를 계속 믿고 있었던 것이 잘못된 것이었을까? 왜 하필 고용허가제는 이 무더운 8월 17일에 국회에서 통과되는 바람에 매년 이 고생을 하는 것일까 하는 하소연까지 머릿속에서는 꼬리에 꼬리를 문 고민이 이어지고 있었다.

그렇게 폭염경보가 전국에 내려진 8월 21일 일요일 오후 3시, 서울 보신각, 대구 2.28공원, 부산 부산역 등지에서 <고용허가제 폐지! 노동3권 쟁취! 이주노동자 결의대회>가 개최되었다. 수도권 지역에서는 집회에 앞서 8월 17일 고용허가제 시행일에 맞추어 서울고용노동청 앞에서 <착취와 무권리의 고용허가제 12년, 이주노동자 인권과 노동권을 보장하는 사회로 나아가야 한다!>라는 이름으로 100여개 이주·인권·시민사회·노동단체가 공동으로 기자회견을 진행하기도 했다. 이 기자회견에서는 멀리 경남에서 올라온 인도출신의 해외투자기업 산업연수생 스리칸트 씨가 직접 산재를 당한 팔을 공개하며 월 300시간이 넘는 노동시간에도 불구하고 이에 따른 임금으로 불과 15만 원밖에 받지 못했음을 증언하면서 충격을 주기도 했다. 이 문제점에 대해서는 이미 지난 기고글에 밝힌 바 있으니 참고하길 바란다.

폭염경보에 대비해 주최 측에서는 얼음물과 휴대용 깔판 등을 준비했지만 햇빛을 피할 곳조차 여의치 않은 보신각 광장에서 가두집회를 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오후 3시 집회 시작 시간이 되기 직전 하늘이 도왔는지 무대차 앞으로 그늘이 드리워져서 햇빛을 피할 정도의 공간이 마련되었다. 캄보디아, 방글라데시, 네팔, 필리핀, 태국 등 다양한 나라에서 모인 이주노동자들은 각자의 요구가 담긴 피켓을 들고 사회자의 선동에 맞추어 “STOP EPS”(고용허가제 폐지하라!) “STOP CRACKDOWN”(강제추방 중단하라!) “WE ARE LABOR”(우리는 노동자다!) “LABOR IS ONE”(노동자는 하나다!)와 같은 구호를 힘차게 외쳤다. 특히 우즈베키스탄에서 온 이주노동자들은 밴드를 구성해서 아리랑을 연주하는 등 박수갈채를 받았고 네팔에서 온 이주노동자도 신나는 노래로 이주노동자의 어깨를 들썩이게 만들었다.

집회의 하이라이트는 미리 준비한 150여개의 물풍선을 던지는 퍼포먼스였다. 보신각 광장 바닥에 부착한 플랜카드에는 고용허가제, 고용노동부, 사업장 이동 제한 등 이주노동자를 탄압하고 있는 각종 제도와 문제점이 담겨 있었고 이주노동자들은 일제히 분노를 담아 물풍선을 던졌다. 십여 분도 채 되지 않는 순간이었지만 무더운 여름 밤낮없이 일하고 있는 이주노동자들의 스트레스를 잠시나마 식힐 수 있는 시간이었을 것이다. 본 집회를 마친 170여명의 이주노동자와 한국인활동가들은 보신각에서 서울고용노동청까지 행진을 통해 고용허가제의 문제점을 알리는 선전물을 시민들에게 나누어주었다. 노동청 앞에서도 12년 동안 이주노동자의 착취와 무권리로 점철된 고용허가제를 끝장내기 위한 투쟁을 다함께 결의하면서 무더운 여름날 이주노동자들의 가두시위는 막을 내렸다.

지난 21일 열린 고용허가제 폐지 촉구 집회

매해 8월 고용허가제 폐지 집회를 준비하면서 과연 이 철옹성 같은 제도가 폐지될 수 있을까? 고용허가제가 폐지된다면 이 다음은 무엇이 되어야 하는가? 과연 이주노동자들은 고용허가제를 폐지하는 것을 지지하고 있는가? 등 여러 고민을 하게 된다. 하지만 불과 이십 여 년 전 현대판 노예허가제라고 불렸던 산업연수생제도가 악명을 떨칠 때에도 이주노동자들 스스로 몸에 쇠사슬을 두르면서 “우리는 기계가 아니다” “우리도 퇴직금을 달라”고 하면서 결국 노동관계법이 적용되는 판례를 만들어왔던 투쟁의 역사가 실제로 존재했다.

이 무더운 여름날 이주노동자들의 투쟁 역시 당장의 결과로 나타나진 않더라도 언젠가 이 다음 세대의 이주노동자들에게는 보다 더 나은 미래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우러나는 것이 아닐까 싶다. 2012년 9월 서울역에 전국에서 천명이 넘는 이주노동자들이 모여서 고용허가제 폐지를 외칠 때 한 이주노동자가 했던 말이 아직도 기억에 남는다.

“난 올해 말이면 이제 네팔로 돌아가요. 하지만 네팔에 돌아가서 한국에 들어오고 싶어 하는 사람들에게 당당하게 이야기할 거에요. 내가 열심히 투쟁해서 조금이라도 더 나은 조건에서 당신이 일할 수 있도록 만든 거라구요”

그런 의미에서 오늘의 추천 노래는 보다 더 나은 미래를 위한 노래, YB의 7집 수록곡 “나는 나비”이다. 1년 전 딱 이맘때 이주노조 합법화를 위한 서울 고용노동청 농성장에서 자주 불렸던 노래이기도 하다. 노래 가사에 나오는 말처럼 모든 노동자들이 국적과 성별, 나이, 피부색에 상관없이 날개를 활짝 펴고 자유롭게 살아갈 수 있는 그런 세상을 꿈꿔본다.

박진우_ 2012년부터 이주노동조합의 상근자로 일을 하고 있다. 어릴 때부터 대안학교 선생님을 하고 싶다는 막연한 꿈을 꾸고 있어서 언젠가는 이주아동 대안학교 선생님을 하겠다는 나름의 목표를 가지고 있다. 일을 한 지 5년이 되어가지만 부족한 외국어실력 탓인지 가능한 한국어로만 상담을 하고 있다. 이주노조 합법화 이후에 다음 역할이 무엇이 되어야 할지 고민 중이다. 건강한 몸과 마음을 만들기 위해 지속적인 노력을 하고 있다. 무엇을 하더라도 스스로 재미있게 살아갈 수 있기를 진심으로 바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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