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슨 곤란한 사건이 터졌을 때 문제를 어떤 ‘음모’의 수준으로 만드는 것은 쉽고 편한 방법이다. 박근혜 정권은 정윤회 문건 사태에서나 이번 우병우 민정수석 문제에 대해서나 마찬가지로 이런 방법을 택하고 있다. 사드 배치 반대 여론에 대해 ‘외부세력’을 들먹이거나 야당의 정당한 문제제기에 ‘종북’ 또는 실체도 불분명한 ‘친노 강경파’라는 모자를 씌워 사안을 물타기 하는 것도 이런 맥락에서 나오는 고질적 행태다. 그러나 이런 식의 쉽고 편한 길을 추구하는 건 결국 공론장의 붕괴를 불러올 뿐이다. 공론장을 책임져야 할 언론마저 이런 세태에서 벗어나질 못하니 큰일이다.

동아일보 25일자 칼럼

이런 흐름은 25일 동아일보의 지면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동아일보는 25일 최우열 사회부 기자 명의의 <조응천의 힘?>이란 제목의 글을 통해 이석수 특별감찰관의 감찰 누설 행위 배후에 사실상 더불어민주당 조응천 의원이 존재한다는 의혹을 재론했다. 우병우 민정수석이 검찰에 있을 당시 검사장 승진을 위한 인사검증을 담당한 사람 중 하나가 당시 공직기강비서관이던 조응천 의원이고, 이석수 특별감찰관과는 대학과 사법연수원 동기이기 때문에 이런 의심을 살 수밖에 없다는 거다.

동아일보는 애초 이석수 특별감찰관의 감찰 내용 누설 의혹이 나온 직후인 지난 18일에도 “특별감찰관이 이 기회에 이름을 날려 야당 공천 받으려 하는지 의도가 의심스럽다”는 정치권 일각의 주장을 기사에 쓴 바 있다. 결국 이른바 ‘메이저’라는 일간지들 중에서는 ‘조응천 배후론’을 가장 적극적으로 지면에 반영해 온 셈이다.

이런 식이면 결국 우병우 민정수석 논란 자체를 조응천 의원이 만들었다는 결론도 가능하다. 동아일보의 글에 따르면 우병우 민정수석 처가 부동산을 넥슨이 샀다는 걸 알 수 있는 사람은 단 네 명 뿐인데 하필이면 대우조선해양 문제로 의혹을 받고 있는 걸로 추정되는 조선일보가 이 문제를 1면에 썼고, 이 네 명 중 야당 소속은 조응천 의원뿐이기 때문이다.

즉, ‘조응천-조선일보-이석수’의 삼각커넥션이 완성되는 셈인데, 조응천 의원이 이 커넥션의 정점에 서서 사건을 진두지휘(?)하는 이유는 ‘반대파’ 입장인 소속 정당의 정치적 이해득실 때문이거나 청와대에서 쫓겨났다는 개인적 복수심에 의한 것일 게다. 동아일보 글의 서두에는 조응천 의원이 과거 청와대에서 건강검진을 받을 때 수면내시경을 이용한 진단 과정에서 ‘나쁜 술버릇’을 드러냈다는 얘기까지 써 있다. 동아일보가 직접적으로 그렇게 쓰고 있는 건 아니지만 보는 사람에 따라서는 ‘원래부터 나쁜 놈이었다’는 식의 해석도 가능할 걸로 생각된다. 동아일보의 글은 이게 다 대통령이 ‘배신자’를 너무 많이 만들어서 생긴 일이라는 결론으로 마무리 되지만, 그저 이상한 억지 논리일 뿐더러 읽는 사람에게는 그런 문제의식을 담은 글로 받아들여지지 않을 게 뻔한 글을 쓴 데에는 다 이유가 있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다.

동아일보의 이런 태도는 전형적인 냉소주의적 세계관을 재생산하고 있는 것으로 느껴진다. 냉소주의의 세계관에서는 진실된 태도란 현실에 존재하지 않으며, 오로지 개인의 사익 추구만이 세상을 움직이는 동력인 것으로 간주된다. 그래서 사안의 본질에 대해 논하기보다는 누가 무슨 의도로 일을 벌였는지가 가장 중요하게 여겨진다. 이런 상황에서 대다수의 사람들은 조선일보의 보도가 저널리즘적 원칙에 맞는가, 또는 우병우 민정수석이 공직자에 걸맞는 소양을 갖추고 있는가, 이석수 특별감찰관의 행위가 어떤 면에서 위법적인가를 따지는 것에 사실 관심이 없다. 누가 누구를 왜 공격했고 어떻게 뒤를 봐주었더라는 정치게임 서사만이 흥미의 대상이다.

동아일보 지난 18일 지면 기사

이석수 특별감찰관이 조응천 의원과 대학을 같이 나왔고 사법연수원 동기인 게 문제인가. 하다못해 감찰 과정에서 이석수 특별감찰관이 전직 청와대 비서관인 조응천 의원에게 문의라도 한 정황이 있다면 또 모르겠다. 아니, 사실 문의를 했다 한들 그게 무슨 문제인가. 적법한 절차에 따른 것인지가 유일한 판단 기준인데, 동아일보가 고백하듯 “강남 땅 의혹이든 이석수 커넥션이든, 정보의 유통 경로를 찾는 것은 거의 입증 불능”이다. 판단의 대상조차 없는데 ‘조응천 배후론’으로만 이렇게 시끄러운 이유가 도대체 무엇인가.

다 양보해서 조응천 의원이 조선일보에 의도를 갖고 접근해 우병우 민정수석 처가 부동산 관련 의혹을 ‘제보’했다고 치자. 대형 언론사에는 이런 저런 의도를 갖고 접근하는 수많은 제보자들이 존재하기 마련이다. 이들의 제보 내용이 의도가 어떻든 공익성이 있는가를 판단하고 공론의 조성에 반영할지를 판단하는 건 언론이 갖는 고유한 기능이다. 즉, 조선일보가 어떤 경로로 우병우 민정수석 처가 부동산 관련 의혹을 입수했는지 몰라도, 이를 기사의 형태로 보도한 이후에는 문제 자체를 공론의 영역에서 다뤄야 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말이 나온 김에 ‘특정 언론’의 최고위급 간부 S씨에 대해서도 논해보자. 청와대의 ‘부패 기득권 세력’이란 명명으로 사건의 맥락은 분명해졌다. 여기서 우리가 들여다보아야 할 것은 S씨가 구속영장이 청구된 뉴스커뮤니케이션스의 박수환 대표를 고리로 대우조선해양의 특혜를 받는 과정에서 대가로 무엇을 해줬느냐의 문제이다. 돈을 줬다면 이는 뇌물이다. 대우조선해양 내의 특정인이나 회사 자체에 유리한 효과를 내는 기사나 글을 생산하였다면 언론인으로서 자격 상실이다. 그러나 그렇다는 사실이 조선일보의 우병우 민정수석 처가 부동산 의혹 보도의 정당성을 붕괴시키는 것은 아니다.

청와대는 이 사태를 ‘국기문란’으로 규정하고 있다. 언제부터 ‘국기문란’이란 단어가 이렇게 저렴해졌는지 모르겠다. 이 정부 들어서는 국기문란 행위가 벌써 세 번째 벌어졌다. 첫 번째는 이른바 NLL대화록 실종 문제였고 두 번째는 ‘정윤회 문건’ 문제였다. 모두 엄정히 수사하고 진실을 밝혀 책임져야 할 사람이 마땅한 책임을 지면 되는 문제였는데 여기에 ‘국기문란’이라는 단어를 갖다 붙이는 이유가 무엇인가.

결국 대통령의 세상에 대한 냉소적 인식이 문제인 거다. ‘국기문란’이라는 것은 어떤 자가 불순한 생각과 계산을 갖고 정권을 위기로 몰아 넣고 있다는 것이다. 이런 개념은 박근혜 대통령이 남을 비난하기 위해 사용하는 여러 어휘들과도 일맥상통한다. 예를 들면 ‘배신의 정치’다. 이 말은 유승민 의원이 과거 원내대표이던 시절 교섭단체대표연설에 문제제기를 하기 위해 나온 것인데, 내용은 관계가 없고 오로지 ‘의도’를 문제 삼았다는 특징이 있다. 이에 대비되는 ‘진실한 사람들’이란 개념도 마찬가지다. ‘진실한 사람들’의 반대는 ‘진실하지 않은 사람들’이고 그들은 즉 불순한 의도를 갖고 있다. 진실한 사람들과 불순한 사람 및 세력의 끝없는 대결…, 이게 박근혜 대통령이 갖고 있는 ‘정치’의 본질에 대한 인식의 핵심이다. 뭐 눈에는 뭐만 보인다고 했으니 뒤집어 말하면 박근혜 대통령도 본인이 ‘진실하다’는 것 말고는 ‘진실하지 않은 사람들’이 할법한 일들을 그들을 대상으로 똑같이 돌려주고 있다는 해석도 가능하다.

언론의 사명은 대통령의 이런 자학적 자기 규정을 정치사회적으로 무력화시킬 수 있는 공론 조성에 힘쓰는 것이다. 진실한 사람들과 불순한 사람들이 끝없이 싸우는 아비규환에서 무슨 설득이 되고 이해관계의 조율이 되겠는가. 그러나 이제 언론은 이런 냉소적 자기인식을 재생산하며 별 것 아닌 정치적 이득에 목을 매고 있다. 이제는 자기 자신들을 향한 화살에도 그런 식이니 저널리즘의 미래가 암울하다. ‘부패 기득권’ 조선일보가 무너지면 나머지 신문들에 좋은 세상이 올 것 같은가. 조선일보가 무너지더라도 ‘어떻게’ 무너지는가가 중요하다. 언론의 흥망성쇠는 오직 저널리즘의 문제로 좌우돼야 한다. 이런 당연한 얘기가 ‘유난’이 되고 ‘선비질’이 되는 세상이니 참으로 걱정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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