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경찰관이 휴무일 점심에 직원들과 식사를 하며 술을 마신 후 개인 차량을 운전하다 교통사고를 냈다. 다행히 인명피해는 없었지만, 음주운전으로 100만 원의 벌금형을 받았다. 하지만 이 경찰관은 자신의 신분을 밝히지 않아 내부징계는 피해갔다. 이후 그는 음주운전 사실을 숨긴 채 승승장구했고, 경찰청장의 자리에까지 올랐다. 음주운전 전과자가 경찰청장이 된 막장드라마. 이 막장드라마의 주인공은 바로 이철성 신임 경찰청장이다.

24일 청와대가 신임 경찰청장에 이철성 후보자를 공식 임명한다. 음주운전에 사고까지 낸 인물이 경찰청장이 되는 웃지 못할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지난 19일 오전 국회 안전행정위원회에서 열린 인사청문회에서 이철성 청장은 음주운전사고 사실을 시인했다. 이 청장은 "1993년 당시 조사를 받는데 너무 정신도 없고 부끄러워서, 직원에게 신분을 밝히지 못했다"며 "그로 인해 징계 기록은 없다"고 말했다.

이철성 청장은 조사 이후에 벌금 등의 처분으로 이어지는 과정에서도 신분을 밝히지 않은 이유에 대해 "그 후에는 밝히는 게 마땅하겠지만, 제가 그럴 기회가 없었다"며 "다시 한 번 송구하다는 말씀을 드리고, 어떤 질책을 해도 제가 드릴 말씀이 없다"고 답하기도 했다. 그렇다면 이 청장은 스스로 경찰청장 후보자를 내려놔야 했던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이철성 신임 경찰청장. (연합뉴스)

청와대는 이철성 청장이 23년 전 일어난 사건에 대해 사죄와 반성의 뜻을 여러 차례 밝혔고, 1995년 사면을 받았다는 점을 들며 경찰청장 임명을 강행했다. 그런데 다른 직책도 아니고, '민중의 지팡이'라는 경찰의 수장이 음주운전을 하고 사고를 낸 것은 상식적으로 그냥 넘어가기 어렵다는 게 대다수 국민들의 생각일 것이다.

음주운전이 가벼운 죄도 아니다. 음주운전은 형사처벌이 예정돼 있는 범죄이고, 사고발생시 상대방의 생명·신체에 큰 위해를 가할 수 있는 무거운 죄다. 특히 공무원, 그 중에서도 경찰공무원이 음주운전에 적발될 경우 해임 등의 중징계를 받게 되는 것이 일반적이다. 이철성 청장의 경우 사고까지 냈다. 그런데 이철성 청장은 이유야 어찌됐건 신분을 감추고 어떠한 내부징계도 받지 않았다.

심지어 새누리당까지도 이 청장의 청문회에서 의아함을 감추지 못했다. 황영철 새누리당 의원은 청와대 인사 검증 당시 이 문제에 대한 소명요구가 있었는지, 신분을 고의적으로 숨긴 것은 아닌지 따져 묻기도 했다. 여당 의원이 봤을 때도 아닌 건 아니었던 것이다.

그럼에도 청와대는 이철성 청장 임명을 강행하기 위해 인사청문회법까지 '제대로' 악용했다. 인사청문회법 6조에 따르면, 국회가 경찰청장 내정자 등에 대한 인사청문경과보고서를 임명동의안 제출 후 20일 이내에 송부하지 않으면, 대통령은 10일 이내 범위에서 기간을 정해 보고서 채택을 요청할 수 있게 돼 있다. 그리고 대통령이 정한 기간 내에 보고서가 송부되지 않더라도 임명을 할 수 있다고 정하고 있다.

이에 따라 박근혜 대통령은 23일 오전 이철성 청장에 대한 인사청문경과보고서를 송부해달라고 요청했고, 10일 이내에서 정할 수 있는 송부 기한을 통보했다. 박근혜 대통령이 통보한 송부 기한은 단 '1일'이었다. 애초에 박근혜 대통령이 국회 청문회 결과에는 별다른 관심이 없었던 것으로 밖에 볼 수 없는 대목이다.

23일 정연국 청와대 대변인은 당당하게 "법 절차에 따라 진행될 것"이라고 밝혔다. 그리고 24일 오전 박근혜 대통령은 자신의 고집대로 이철성 청장을 신임 경찰청장에 임명했다. '불통령'이라는 별명에 걸맞은 행보다. 야권이 일제히 반발하고 나섰지만, 소용없는 일이었다.

▲박근혜 대통령. (연합뉴스)

일각에서는 박근혜 대통령의 이번 경찰청장 임명이 최근 각종 비리 혐의로 검찰 수사를 받게 된 우병우 청와대 민정수석 감싸기의 일환이라는 의혹까지 나오고 있다. 민정수석이 각종 인사에 대한 검증을 담당하는 직책이기 때문이다.

박근혜 대통령이 어떤 생각으로 이철성 청장 임명을 강행했는지는 알 수 없다. 본인의 잘못된 내정을 인정하기 싫어서일 수도 있고, 정말로 우병우 수석을 감싸기 위한 조치였을 수도 있다. 순경부터 청장까지 승진한 선례를 만들고 싶었을 수도 있고, 이도 아니면 제3의 다른 이유가 있었을 수도 있다.

이유가 어찌됐건 이것 한 가지는 확실하다. 음주운전사고로 벌금형에 처해졌던 인물이 음주운전을 적발하고 교통사고를 처벌하는 경찰의 수장이 됐다는 점이다. 문득 앞으로 경찰이 어떤 생각을 갖고 음주측정에 나설지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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