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찬욱’이라는 이름 세 글자를 들으면 기분이 묘해진다. 그의 개봉작마다 비판 리뷰를 작성했다가 악전고투를 거듭한 기억이 새록새록 떠오르기 때문이다. 공교롭게도 그때마다 과분한 조회수를 기록하면서 많은 이들이 글을 지켜보기도 했다. 어쨌든, 박찬욱 팬들과의 인터넷 전쟁 때마다 내가 가장 많이 들었던 이야기는 바로 이것일 것 같다.

“네가 박찬욱 감독 영화에 대해 뭘 알아?”
“해석을 잘못하셨군요. 당신의 영화보는 눈이 수준 낮은 탓입니다.”

이런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나는 섹티즘의 위험성을 느꼈다. 어떤 분야든, 자신만의 틀과 영역을 구축한 유명인들이 빠질 수 있는 위험이다. 많은 이들의 찬양이 곧 세력이 된다. 그리고 그 세력은 오히려 ‘완고한 틀’로 자리잡힐 위험이 존재한다. 폭넓은 다양성과 해석의 무한함을 추구해야 할 문화 영역에서는 위험한 현상이다. 어쩌면, 이것이야말로 내가 박찬욱 감독을 ‘스토킹’한 이유일 것이다.

그의 최신작 <박쥐>의 개봉 소식을 듣고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 24일 오후에 용산CGV에서 있었던 <박쥐>의 언론시사회에는, 많은 기자들이 몰려와 자리가 없어서 곳곳에서 항의가 이어졌을 정도. 간신히, 아주 간신히 자리를 잡아 영화를 감상할 수 있었다.

<박쥐> ‘구원’에 대한 전복

박찬욱 감독은 나르시스트의 면모를 보인다. 평론가 시절, 수많은 영화를 섭렵한 박학다식이 나르시즘으로 연결됐을 여지가 크다.

박찬욱 팬들이 박찬욱 감독의 영화에 매력을 느꼈을 결정적인 여지라고 판단한다. 뭔가 알듯 말듯한 것이 보이면 알고 싶어지는 인간의 욕구를 제대로 파고들어 그 헛점을 공략하는 것이야말로 박찬욱 영화의 특징이다. 박찬욱 팬들의 심리적 만족은, B급 선언을 하면서 오히려 고급화 전략을 추구했던 박찬욱 영화전략의 핵심 요소라고 할 수 있다.

소위 말하는 ‘복수 3부작’을 지켜보며 박찬욱 팬들이 가장 많은 언급을 한 단어는 ‘구원’일 것이다. 거창한 단어다. 그 ‘구원’에 대한 해석을 놓고 수많은 평론가와 팬들이 말의 향연을 벌였음을 기억해야 한다. 그런 관객이라면 <박쥐>는 당황스러울 여지가 있다. <박쥐>는 세상에서 구원의 상징으로 통하는 것들을 여지없이 뒤집어버리기 때문이다.

뱀파이어가 되는 상현(송강호)은 왜 신부일까? 신부가 주로 하는 일 중 하나는 고해성사다. 구원을 위한 회개 아니던가. 이것을 출발로 <박쥐>에서는 수많은 구원의 상징들을 깔아놓는다.

하지만 그 구원의 상징은 여지없이 전복된다. 신부가 친구의 아내와 바람나는 일부터가 그렇다. 게다가 뱀파이어가 됐으니 피를 빨아먹어야 한다. 피를 빨아먹으려면 인간에게 해를 끼쳐야 한다. 이렇듯, <박쥐>를 주의깊게 본다면 수많은 구원의 상징들이 등장하지만, 그 구원은 여러가지 성적 코드와 휘말려 무너진다. 뱀파이어가 피를 빨아먹는 것 자체가 성적 코드다.

자신도 모르게 조롱당할 가능성

<박쥐>를 주의깊게 감상하려면, 박찬욱 감독 특유의 나르시스트 기질을 반드시 기억해야 한다. 대략적으로 공개된 시놉시스만 봐도, 박찬욱 감독은 전복을 시도하면서 다시금 차별화에 나서고 있기 때문이다. 박찬욱 감독의 영화 특성상, 박찬욱 감독은 자신의 팬들과 지나치게 밀착돼선 안된다. 팬이 따라가면, 자신은 더 멀리 도망가 궁금증을 유발시키면서 차별화해야 한다. 반드시 기억해야 할 사항이다.

그렇기 때문에, 박찬욱 팬은, 특히 ‘구원’에 대해 이야기했던 박찬욱 팬들은 마음의 준비를 단단히 해야 한다. 나르시스트는 ‘자기 만족’이 제일 중요한 사람이다. 박찬욱 감독 영화가 ‘독특했던’ 결정적인 이유라고 할 수 있다. 박찬욱 감독이 흔히 말하듯 ‘불친절’한 이유이기도 하다. 팬 스스로, 자신도 모르게 조롱당하는 우를 범해서는 안되기에 공개하는 키 포인트다.

물론, 박찬욱 감독 특유의 상징이 있어 지나치게 낯설 것에 대한 대비 장치도 있음을 공개한다. 그것은 반드시 필요한 상황이 아님에도 전개되는 잔인한 장면들이다. 자, <박쥐>의 막은 그렇게 화려하게 올랐다. 더 자세한 이야기는 많은 관객들이 영화를 지켜본 이후 토론이 격화될 때에 나눠보도록 하자. 이번에도 일전을 각오할 생각이다.

박형준의 '창천항로' 블로그 : http://blog.daum.net/ctzx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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