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월은 공영방송 KBS가 정권에 장악되었음을 여실히 보여준 ‘잔인한 7월’이었다. KBS는 해야 할 보도는 은폐하면서, 하지 말아야 할 보도를 내놓고, ‘신 보도지침’이라고 불러도 전혀 손색이 없는 부당한 업무지시를 내린 뒤, 비판하거나 불응하면 ‘보복 인사’를 자행했다”

민주언론시민연합(공동대표 이완기·박석운)은 23일 ‘7월, 이달의 나쁜 방송보도’로 KBS 보도를 종합 선정한 뒤, 이 같이 말했다.

민언련은 첫 번째로 이정현 전 청와대 홍보수석(현 새누리당 대표)의 ‘보도개입’ 사건에 대한 KBS의 무보도를 꼽았다. 6월30일 전국언론노동조합(이하 언론노조) 등 7개 언론단체는 이정현 당시 청와대 홍보수석과 김시곤 KBS 당시 보도국장 간의 통화 녹취록을 공개했다. 민언련은 “통화 녹취록에서 최악의 ‘권언유착’이 포착됐지만 방송사들은 철저한 무관심으로 일관했다”면서 “특히, KBS는 녹취록이 공개된 시점부터 현재까지 단 1건의 보도도 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KBS의 무보도는 15건을 집중 보도한 JTBC와는 큰 차이를 보였다.

KBS의 이런 보도행태에 대해 먼저 문제를 제기한 것은 평기자들이었다. 보도본부 경인방송센터에 근무 중인 7년 차 정연욱 기자는 지난 달 13일 기자협회보에 <침묵에 휩싸인 KBS…보도국엔 ‘정상화 망령’>이란 제목의 글을 게시했다. 이정현 전 수석의 녹취록에 침묵하는 KBS 보도국 상황을 비판한 것이다. 정 기자는 얼마 되지 않아 제주 전출명령을 받았다. 민언련은 이에 대해 “KBS 보도국 간부진이 뼈를 깎는 자기반성에 나선 기자에게 오히려 ‘보복인사’를 감행한 것”이라고 비판했다.

KBS 사측의 ‘보도 지침’과 ‘보복인사’는 이게 다가 아니었다. KBS 전국기자협회는 본사에서 내려온 2개의 ‘사드 보도지침’을 폭로했다. 전국기자협회에 따르면, <총리에 달걀 투척, 감금…경찰 수사>(7월16일) 리포트에서 전날(15일) 성주군청 앞 충돌사태를 전하면서 이를 25년 전 정원식 총리 밀가루 투척 사건과 비유했는데, 이것이 본사 뉴스 책임자의 지시였다는 것이다.

이들은 <경찰 “성주 시위 외부 인사 참가 확인”>(7월19일) 리포트 역시 성주 군민들의 ‘폭력사태’가 통진당 세력에 의해 일어난 것처럼 보도하라는 본사 지시에 의한 것이었다고 밝혔다. 참다못한 박준형 대구총국 취재부장은 후배들에게 왜곡 보도를 맡길 수 없다며 19일 리포트에 직접 나섰다. 박 부장은 사드 투쟁위원장의 발언을 넣는 등 최대한 균형을 맞추려 노력했다.

이에 KBS사측은 ‘특별감사’로 대응했다. KBS 사측은 26일부터 노준철 전국기자협회장을 시작으로 특별 감사에 들어갔고 여기에는 박준형 취재부장도 포함됐다. 민언련은 “감사를 통해 자사의 부당한 취재·제작 지시를 은폐하고, 취재·제작 실무자인 대구 기자들의 정당한 반발을 힘으로 누르려는 것”이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KBS의 ‘보도지침’ 파문에 대한 비판 여론이 쏟아지자, KBS는 22일 <“보도지침‧공안몰이”…“언론자유 침해”>라는 보도를 냈다. 국회에서 우상호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가 KBS의 보도지침 문제를 지적한 것을 전하면서 이는 ‘언론자유 침해’라고 반박한 것이다. 민언련은 “보도지침을 비판한 우 원내대표에게 오히려 ‘언론자유를 침해 말라’라며 윽박지르라는 이 보도는 KBS경영진의 입장을 담은 성명을 저녁종합뉴스를 이용해 발표한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강조했다.

민언련은 “군부독재 시절과 같은 직접적, 물리적 겁박이 없는데도 KBS가 박근혜 정부가 원하는 내용만 보도하려 한다”면서 “게다가 부당 보도를 거부한 기자에게는 ‘보복인사’가 가해졌다”고 설명했다. 또한 “KBS의 ‘보도지침’ 및 ‘보복인사’는 모두 방송법에 의거한 ‘방송 편성규약’을 위반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민언련은 “지금 국민들은 공영방송이 기자의 취재 자유를 침해하고 공정 보도를 요구하는 노조의 힘을 약화시키려는 참담한 현실을 목도하고 있다”면서 “이 모든 횡포의 최종 목표는 사드 배치 정당화 등 박근혜 정부 및 보수 세력의 입맛에 맞는 보도만 내는 것이다. 이런 노선에 반기를 드는 기자들은 모두 ‘보복인사’의 철퇴를 맞고 있다”고 종합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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