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까지 <걸스피릿>을 보면서 줄곧 놀라던 것이 있었다. 바로 혼성그룹 샾 출신 이지혜의 색다른 모습이었다. 이지혜는 구루라는 이름으로 다른 아이돌 출신들과 함께 <걸스피릿>에 출연하고 있는데, 대표적으로 서인영이 독설에 가깝고 심사평에 가까운 멘트를 하는 것과 달리, 항상 후배들을 감싸고 긍정적인 요소를 찾아주려는 모습으로 일관했다.

그런 이지혜에게 공식천사라는 별명까지 붙었다. 그런데 이지혜가 독설을 참지 못했다. 그렇지만 시청자 입장에서는 백번 공감하고 속이 다 시원했다. 그런데 이지혜나 그 문제를 먼저 지적했던 천명훈이 미처 알지 못했거나 혹은 알고도 말하지 못한 부분이 있다. 바로 제작진의 문제다.

JTBC <걸스피릿>

<걸스피릿>이 세 번째 경연 무대를 군부대에서 마련했다. 걸그룹과 국군장병의 관계만큼 우호적이고 끈적끈적한 것은 없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경연을 떠나 누가 무대에 서건 노래 한 곡을 부른 것에 대한 보상과 보람은 어떤 곳에서도 누리지 못한 최상의 것이 될 것은 보지 않고도 알 수 있다.

그런데 착각했거나 혹은 과소평가했던 부분이 있었다. 예상대로 누가 나오든 400명의 장병들은 그 순간만 사는 사람들처럼 열광했다. 첫 번째 무대에 선 라붐의 소연과 소나무의 민재가 팀을 이룬 <군통령> 역시 다르지 않았다. 두 사람이 같은 그룹 팀원 각각 두 명씩의 지원을 받아 꾸민 무대는 AOA의 ‘심쿵해’였다.

일단 반응은 최고였다. 그러나 노래가 끝나고 받아 든 400명의 투표 결과는 정말 의외였다. 그렇게 뜨겁게 열광하던 것과는 달리 그들에게 투표를 한 장병은 그다지 많지 않았다. 그들의 1차 투표 득점은 257점이었다. 기존 방식대로 환산하면 64점 정도가 된다. 결국은 기존 리스너들에게 받았던 것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는 것이 된다.

JTBC <걸스피릿>

왜 이렇게도 반응과 투표가 엇갈리게 됐을까? 그것은 이들 노래가 끝난 후에 천명훈과 이지혜가 심각한 표정으로 “위문공연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천명훈)”든지 “민재 씨랑 소연 씨가 잘 안 보이는 거예요”라고 한 것에서 원인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럴 수밖에 없다. 군부대고, 걸그룹에서 두 명씩 총 6명으로 늘어난 인원으로 무엇을 하라는 것인지 분명하지 않는가. 그럼에도 더 깊은 해석을 했어야 겠지만 일차적으로 이런 공연을 하라고 시킨 것은 제작진이라고 해야 맞다.

그러나 장병들도 <걸스피릿>이 어떤 프로그램인지 잘 알고 있었다. 걸그룹의 상큼한 안무에 심장이 뛰어 들떴지만 자신에게 주어진 한 표의 무게마저 망각하지는 않았다. 놀라운 사실이었지만 어쩌면 너무도 당연한 결과였을 지도 모른다. 객석 반응은 가장 뜨거웠지만 경연의 질은 가장 낮았다고 말할 수밖에 없었으며, 결과적으로 군부대, 각 출연자의 팀원의 가세라는 두 가지 요소가 이번 경연을 망친 주범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제작진은 두 번의 경연으로 이미 갈린 상위권과 하위권의 격차를 줄이거나 혹은 역전의 기회를 제공하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지만 결과적으로는 오히려 격차는 더 벌어지게 됐을 뿐이었다. 물론 제작진의 생각과 달리 발라드를 선곡한 스피카의 김보형과 CLC의 승희 팀도 있었지만 대부분은 걸그룹 곡을 들고 나온 것을 보면 이번 경연이 <걸스피릿> 참가자들에게 어떻게 받아들여졌는지 알 수 있다.

JTBC <걸스피릿>

물론 그런 와중에서 베스티 유지와 러블리즈 케이 팀, 레이디스 코드 소정과 오마이걸 승희 팀은 밝은 걸그룹 히트곡 속에서도 편곡을 통해서 이 공연이 경연임을 잊지 않고 가창력을 과시했다. 그 결과 소정과 승희 팀이 1위를, 유지와 케이 팀이 2위 그리고 유일하게 발라드를 불렀던 김보형과 승희 팀이 3위를 했다.

더 절실하고, 더 열심히 준비한 팀이 이겼다고도 볼 수 있겠지만 일단 하위팀들에게 반전의 기회를 주지 못했다는 점에서 군부대 경연의 아이디어는 실패였다고 해야 할 것이다. 어설픈 아이디어에 자기 발등을 찍힌 꼴이랄까? 두 번의 경연만으로 이미 상하위권이 크게 갈려서 경연의 흥미가 사라질 지경이었는데 이번 경연으로 회복이 불가능해질 정도로 벌어진 격차를 과연 어떻게 해결할지, 묘안이나 있는지 의문이다.

매스 미디어랑 같이 보고 달리 말하기. 매일 물 한 바가지씩 마당에 붓는 마음으로 티비와 씨름하고 있다. ‘탁발의 티비 읽기’ http://artofdie.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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