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통법은 단말기유통구조개선법의 줄임말이다. 그런데 세간에서는 단통법의 준말이 '단지 통신사를 위한 법'이라는 우스갯소리가 나오고 있다. 단통법이 이동통신 3사의 배만 불렸다는 의미다.

지원금 상한제를 골자로 하는 단통법 제정 2년. 국민들의 기대와 입법 취지와는 달리 오히려 이용자의 부담만 가중되는 사태가 벌어지고 있다. 오히려 마케팅 비용이 줄어들면서 생긴 이익은 오롯이 이통 3사에게 돌아갔다. 지원금이 일정금액으로 묶이면서 시장 경쟁이 사라지고, 통신요금 인가제로 인해 이통 3사의 요금이 동조화되면서 '정부가 주도한 담합'이라는 비판도 나오고 있다.

▲이동통신 3사의 재무지표 비교. 단통법 이후 오히려 마케팅 비용이 줄면서 2015년 2분기에는 2014년 같은 분기보다 더 많은 이익을 냈다. (자료=참여연대 제공)

23일 오전 10시 서울 명동 은행회관 컨벤션홀 2층 국제회의실에서 <말 많은 단통법, 국민과 함께 해법을 찾는다> 국민참여 대토론회가 열렸다. 이번 토론회는 참여연대와 (사)전국이동통신유통협회가 주최하고 김경진 국민의당 의원, 신경민·유승희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후원했다.

단통법? 경쟁은 사라지고 소비자 부담만 늘었다

토론자들은 단통법이 경쟁을 없애고, 오히려 정부가 나서 이통 3사의 담합을 도운 셈이라고 한 목소리로 비판했다.

김남수 한국소비자원 책임연구원은 "단통법의 법 취지는 번호이동고객과 기기변경고객에 대해서도 동일한 혜택을 부여하도록 규제하는 것이었는데, 오히려 번호이동 고객에 대한 스마트폰 가격은 상승했고 기기변경 고객 혜택은 크지 않았으며, 기대했던 요금인하 효과도 일어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김남수 책임연구원은 "결국 단통법은 소비자 후생을 개선시키지도 못했고, 산업의 수직적 결합을 강화시키면서 사실상 통신시장의 불완전경쟁화를 가져왔을 뿐"이라고 비판했다.

김연학 서강대 교수는 "애초에 단말기 보조금 규제 도입 시 자유로운 시장경쟁을 저해한다는 반론도 있었지만 긍정적 효과도 있기는 했다"면서도 "하지만 이통시장의 성장정체·시장점유율이 고착화되면서 보조금 규제의 긍정적인 측면보다는 시장경쟁 제한이라는 부정적인 측면이 더 커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시장점유율이 고착화되면서 무제한적 보조금 살포 우려가 사라지고 사업자 간 시장점유율과 이익을 지키려는 움직임이 강해졌다"며 "경쟁을 장려해야 할 규제기관에서 경쟁을 제한해 사실상 과점이익을 보호해 주는 결과를 초래했다"고 비판했다. 김연학 교수는 "이용자 차별금지라고 하지만 소비자 모두가 같은 가격을 지불하게 만드는 것은 자본주의 체제에서 결코 상식적인 일이 아니다"라고 꼬집기도 했다.

▲이동통신 3사의 요금제 변화 시기. 단통법 시행 이후 요금제를 변경한 적이 없다. (자료=참여연대)

조동근 명지대 교수는 "단통법은 투명성 제고와 부당한 차별대우 금지라는 화려한 약속으로 제정됐지만 성과는 우울했다"며 "차별은 없어졌을지 모르지만 모든 국민은 예전에 비해 단말기를 비싼 가격에 구입하게 됐다. 단통법은 전국민 호갱법"이라고 비판했다. 이어 "애초에 시장경쟁 본질에 대한 이해가 부족했던 것이 원인"이라고 덧붙였다.

박지호 경실련 소비자정의센터 박지호 간사는 "정부의 안일하고 근시안적인 시각으로 추진된 단통법이 고착화된 통신시장의 비경쟁상태를 개선하기 위한 사회적 논의를 가로 막았다"며 "이통사들은 지원금 경쟁을 하지 않아 마케팅 비용을 절감했고, 업체별 요금경쟁은 전무한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안진걸 참여연대 공동사무처장은 "단통법이 지원금을 축소시켜 소비자의 단말기 구입부담을 높인 반면 단말기 거품은 전혀 빼지 못했다"며 "통신요금 인하도 이뤄지지 않았고, 오히려 이동통신 유통업에 종사하는 중소상공인들의 고충까지 늘어나고 있는 상황"이라고 전했다. 그는 "단통법의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 정부가 나서야 하는데, 정부는 여전히 통신사들의 이익을 중심으로 정책을 펼치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주홍 녹색소비자연대 사무총장은 "단통법 시행 이후 지원금은 제한적이고 단말기는 비싸 가계통신비 부담만 가중시켰다"고 지적했고, 이종천 전국이동통신유통협회 상임이사는 "단통법의 지원금 상한제 규제로 인해 골목상권이 대형 유통망으로부터의 위협에 직면하는 결과를 낳았다"고 강조했다.

"지원금 상한제부터 재고하자"

단통법의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한 방안에 대한 논의도 이어졌다. 김연학 교수는 "보조금 지원 상한제를 우선적으로 폐지해 시장에 경쟁원리를 도입하고, 궁극적으로는 단통법도 폐지해야 한다"며 "지원금 상한제가 폐지되더라도 초기 혼란이 있을지 모르나, 시장 기능에 의해 통신사들이 적정 수준의 경쟁을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이용자들은 요금할인보다는 단기간에 제공되는 보조금 혜택에 더 관심을 보이고 있어, 이통사들의 마케팅 측면에서도 장기적 요금할인보다는 보조금 지급이 판매활성화에 더 기여할 수 있다"며 "이용자 혜택은 이용자의 선택에 맡기고 규제기관에서 이에 개입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강조했다.

▲이동통신 3사의 영업수익 대비 마케팅 비용 비율. 오히려 단통법 시행 이후 적은 비중의 마케팅비를 쓰고 있다. (자료=참여연대)

조동근 교수는 "분리공시 제외가 단통법 실패의 원인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영업비밀도일종의 재산권"이라며 "분리공시는 국가가 강제로 단말기 제조업자의 영업비밀을 공개하라는 것과 같다"고 최근 이슈가 되고 있는 분리공시제에 대해 비판적인 시각을 드러냈다.

그는 "그런 규제보다는 요금인가제를 폐기해 통신사 간 요금경쟁을 유도할 필요가 있다. 통신요금 경쟁이 불가능하도록 단통법으로 인·허가권을 움켜진 것이 원죄"라며 "가계의 통신비 부담을 낮추려면 통신사업자 간의 요금인하 경쟁 기제가 작동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박지호 간사도 "공정거래법 등의 개정을 통해 공정거래위원회가 통신시장의 독과점적 시장구조의 개선을 위한 시책을 세울 수 있도록 하는 방안을 모색하고, 묵계적 담합이 이뤄지고 있는 요금, 지원금 경쟁에 있어 부당한 공동행위를 금지할 수 있도록 규제해야 한다"고 말했다.

아울러 "통신은 공공재의 성격이 강한 만큼 요금 관련 정보도 통신서비스를 이용하는 소비자들에게 투명하게 공개돼야 할 필요가 있다"며 "정부는 인가 관련 정보를 투명하게 공개해 통신요금이 적정한지 요금인하의 여력이 존재하는지를 사회에서 자유로이 논의될 수 있는 장을 마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종천 상임이사는"오히려 우리가 마케팅비 줄였다고 해서 통신비가 인하된 것도 아니고, 결국은 모두 통신사의 수입으로 갔다"고 지적하며, "오히려 단통법으로 지원금 상한을 정해 놓는 바람에 각종 혜택을 이용한 할인, 불법적인 행태 등이 늘어나고 소비자를 혼란스럽게 만들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결국은 쓸 데 없는 규제를 없애는 것이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분리공시제, 단말기 가격인하 유일한 대안"

안진걸 공동사무처장은 분리공시제 도입을 주장했다. 안 공동사무처장은 "분리공시는 본래 단통법 시행 당시 시행령에 규정돼 있던 것인데, 국무회의까지 의결된 것을 규제개혁위원회가 부결시켜 도입되지 못했다"며 "분리공시제는 단말기 가격 인하를 이끌어낼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정책"이라고 말했다.

안진걸 공동사무처장은 "통신서비스 요금을 획기적으로 낮출 수 있는 방안은 통신요금에 포함돼 있는 1만1000원의 기본료를 일괄 폐지하는 것"이라며 "기본료는 통신망 설치를 위해 모든 가입자에게 징수한 것인데, 통신망 설치가 완료된 지금까지도 계속 징수하는 것은 심각한 문제"라고 지적했다.

▲<말 많은 단통법, 국민참여 대토론회>에서 안진걸 참여연대 공동사무처장이 발언하고 있다. ⓒ미디어스

안진걸 공동사무처장은 지원금에 상응하는 할인율(선택약정할인제)도 증액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단통법 시행 전 선택약정할인제 요금인하율이 12%에 불과했는데, 참여연대가 이를 30%로 높이자고 주장해 미래부가 20%까지 상향시켰다"며 "그 결과 현재 800만 명 이상의 소비자가 선택약정할인제를 선택했고 지금도 단통법의 최대 성과로 꼽히고 있다"고 전했다. 이어 "그런데 해외 주요국들의 선택약정할인제 할인율은 26.2%에 달하는데, 우리는 아직도 20%"라며 "당초 우리가 주장했던 대로 30%로 상향해야 한다"고 말했다.

또 안 공동사무처장은 ▲부가세를 의도적으로 누락한 사기성 요금제 표시 문제 ▲약정기간 미준수시 단말기 제조사가 지급한 판매장려금까지도 위약금으로 반환해야 하는 문제 ▲통신사가 일방적으로 축소하는 멤버십포인트 문제 ▲정부가 스스로 소비자 보호장치를 포기하는 통신약관신고제 도입 ▲3만2900원 최소 데이터요금제에서 데이터제공량 확대 문제 등에 대한 개선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안진걸 공동사무처장은 지원금 상한제에 대해서는 "지금 당장 공시지원금 상한을 폐지하게 되면 '보조금 대란' 발생 우려나, 호갱 논란이 재현될 가능성이 높아, 지원금 상한선 폐지는 신중한 논의가 필요하다"며 "전례를 봐도 통신비·단말기 가격거품이 더 심각해질 것"이라고 신중한 입장을 보였다.

그는 "다만 지금의 지원금 상한선이 비현실적인 면이 있고, 더 싸게 팔겠다는 것을 막는 것도 어색하다"며 "무엇보다도 당사자인 판매점들이나 소비자들이 지원금 상향을 원하고 있는 만큼, 공시지원금 상한을 일부 상향하는 것은 적극적으로 논의해야 할 것"이라는 의견을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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