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5일 광복절 71주년 축사에서 박근혜 대통령은 '건국 68주년' 발언으로 건국절 논란에 불을 붙였다. 뉴라이트 학자들과 일부 세력이 주장하고 있는 건국절 논란에 대해 부족한 역사인식이 부른 참사라는 평가가 우세하다. 하지만 새누리당이 아예 8월 15일을 건국절로 법제화하려는 움직임까지 보이고 있다.

그런데 건국절 논란에 대해 보수단체로 분류되는 광복회가 국가 기강을 뒤흔드는 일이라며 강하게 반발하고 나섰다. 광복회는 일제 치하에서 독립운동을 한 독립운동가들과 유족들로 구성된 보수성향의 독립운동가 단체다. '올바른 역사 지키기'에는 보수와 진보가 없다는 선례가 될 것으로 보인다.

▲광복절 기념사하는 박유철 광복회 20대 회장. (연합뉴스)

23일 광복회는 성명을 통해 "최근 또다시 국론분열의 원천이 되고, 끝없이 이어지는 정쟁거리는 물론 대한민국의 국가 기강마저 뒤흔드는 '건국절 논란'이 계속 되는 현실에 개탄과 실망감을 감출 수 없다"며 "이는 항일 독립운동을 폄하하고 선열 모두를 모독하는 반역사적이고, 반민족적인 망론이므로, 광복회원들은 지하에 계신 안중근, 윤봉길 의사님을 비롯한 독립운동 선열께 부끄러운 마음이 들어 혀라도 깨물고 싶은 심정"이라고 비통함을 전했다.

광복회는 최근 불거지고 있는 박근혜 대통령과 새누리당 의원들의 건국절 주장을 "역사의식과 헌법정신 부재에서 오는 망론"으로 규정하며 "유구한 역사와 정통성을 지닌 대한민국의 역사를 제2차 세계대전 이후 UN의 승인 하에 독립한 신생독립국의 경우와 같게 인식케 함으로써 국가체면을 손상시키는 일"이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광복회는 정진석 새누리당 원내대표가 "임시정부는 국가의 3요소를 갖추지 못했기 때문에 국가로 볼 수 없다"고 발언한 것에 대해 "국가구성 3요소(국민, 영토, 주권) 불비설이나 UN 등 국제적 불인정을 들어 대한민국의 건국시기를 1948년 정부수립시기로 보는 주장은 식민지 항쟁의 위대한 역사를 가진 우리나라의 역사를 보는 바른 역사관이 결코 아니다"라며 "국가구성 3요소를 어떻게 건국의 요소들로 동일시 할 수 있으며, 각 나라마다 역사가 다르고 환경이 다르고 건국의 동기와 원인이 다를 진데, 국가구성 요소의 잣대로만 우리의 역사를 판단할 수가 있는가"라고 반문했다.

광복회는 "우리의 우방인 미국을 보면 1776년 7월 4일에 미국 필라델피아에서 '미합중국(United States of America)'이라는 국호로 독립선언을 발표했다"며 "건국절을 주장하고 있는 뉴라이트 학자가 주장하는 미국의 건국절은 이 독립기념일을 말하고 있다"고 전했다. 이어 "당시 미국은 영국의 식민지로 국가, 영토, 주권이 없었다"며 "국제적인 인정도 미영전쟁 때 미국을 도왔던 프랑스 뿐이었다"고 건국절 주장을 일삼고 있는 일부 세력의 모순을 전했다.

광복회는 "그로부터 13년 후인 1789년 미연방정부가 수립됐고, 조지 워싱턴이 초대 대통령이 됐는데, 미국에는 국부가 아닌 '건국의 아버지들'이 있다. 조지 워싱턴은 그 중 한 명"이라며 새누리당과 일부 보수세력이 제기하고 있는 이승만 국부설도 일축했다. 광복을 위해 싸운 수많은 독립운동가들이 있는데, 이승만 전 대통령 한 명만을 국부로 추존할 수는 없다는 말이다.

광복회는 "이것에 비하면 1919년 우리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이보다 훨씬 나은 여건이었다. 한반도에 거주한 우리 선조들은 한 번도 일본국민이라고 생각하지 않았고, 한반도가 일본의 영토라고 생각하지 않았다"며 "중국의 호법정부를 비롯해 러시아의 레닌 정부, 프랑스와 폴란드의 망명정부, 리투아니아 정부 등도 우리 임시정부를 인정했다"고 밝혀, 임시정부가 국제적 인정을 받는 정부였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1948년 건국절 제정은 과거 친일 반민족행위자들에게 면죄부를 줘 친일행적을 지우는 구실이 될 수 있다"며 "민족정기를 바로 세우는 데 방해가 될 뿐만 아니라, 학생들로 하여금 자랑스럽고, 긍정적인 역사관을 갖게 하는 순기능보다 기회주의와 사대주의 사상을 배우게 하는 역기능이 더 많을 것"이라고 우려를 표하기도 했다.

광복회는 건국절을 주장하는 세력을 향해 "'다른 나라에 다 있는 생일도 없는 대한민국' 운운하며 국민을 오도하지 말라. 생일이 없기는 왜 없단 말인가? '대한민국'이라는 국호를 처음 쓴 1919년 4월 13일을 대한민국의 생일로 정하면 왜 안 되는가"라고 일갈했다.

또 "독립을 선언한 3·1독립운동 직후 '대한민국 수립'을 임시정부가 선포하고, 부단한 독립운동을 통해 광복을 되찾았으며, 1948년 정식정부가 수립돼 그 정통성을 이어받았다는 것이 우리 역사의 정설이다. 이것은 이승만 대통령의 주장"이라고 이승만 전 대통령의 정부수립을 건국절 주장의 근거로 삼는 것에 대한 불쾌함을 감추지 않았다.

광복회는 이정현 새누리당 대표의 건국절 관련 대국민 공개토론 제안에 대해서도 "대한민국의 근간을 분명히 밝히고, 국가정체성을 영구히 유지해 나가는 데 있어 중대 사안이라 여겨지기에 적극 환영한다"는 의사를 밝혀 자신감을 드러내기도 했다. 진짜 보수가 무엇인지 광복회가 몸소 보여주고 있다.

▲지난 12일 청와대 독립유공자 초청 오찬에서 김영관 전 광복군동지회장이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한편 광복회의 입장 표명에 앞서, 지난 12일에도 청와대 독립유공자 초청 오찬에 참석한 김영관 전 광복군동지회장은 박근혜 대통령과 동석한 자리에서 "대한민국이 1948년 8월 15일 출범했다고, 이날을 건국절로 하자는 일부 주장은 역사를 외면하는 처사일 뿐 아니라, 헌법에 위배되고, 실증적 사실과도 부합되지 않는 역사 왜곡"이라고 지적했다. 김영관 전 광복군동지회장의 지적에도 박근혜 대통령은 15일 건국절 주장을 강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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