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예계에는 괴담 아닌 괴담이 떠돌고 있다. 이른바 응답의 저주라는 것인데, 응답하라 시리즈에 출연해 큰 인기를 얻은 배우가 다른 드라마에 출연하며 참패를 면치 못한다는 내용이다. 이것이 그저 괴담이 아닌 것이 가장 가까운 응답시리즈인 응팔에서 폭발적인 인기를 얻었고, 연기력도 호평을 받았던 류준열, 혜리가 바로 응답 괴담을 증명하고 말았다.

물론 그래도 괴담은 여전히 괴담일 뿐이다. 드라마 한 편이 잘 되고 못 되고가 어디 배우 한 명에 달렸겠는가 말이다. 그렇지만 정작 당사자들로서는 꽤나 신경 쓰이고 까닭 없이 불안해질 수도 있는 상황인 것도 분명하다. 그래서 오래 전부터 화제가 되고, 기대가 되었던 KBS 새 월화드라마 <구르미 그린 달빛>의 주연을 맡은 박보검에 쏠린 관심 중에는 과연 응답의 저주가 통하는지 지켜보는 이들도 적지 않을 것이다.

KBS 2TV 새 월화드라마 <구르미 그린 달빛>

모든 새로 시작하는 드라마에는 기대와 우려가 교차하기 마련인데, 마침내 올림픽이 끝난 시점에 홀가분하게 시작된 박보검, 김유정의 청춘사극 <구르미 그린 달빛>은 지금까지 호사가들의 입방아에 올랐던 응답의 저주는 꺼낼 이유가 전혀 없었다. 무엇보다 걱정했던 박보검은 자신이 본래 갖고 태어난 것 외에는 연기적으로 응답의 이미지를 거의 다 지우고 카메라 앞에 선 것이 역력했다.

응팔이 끝난 지도 제법 됐고 이 드라마가 사극이라는 것도 박보검이 응팔의 최택을 멀리 떨어뜨려 놓기에 수월했던 점도 무시하지 못하겠지만, 무엇보다 응팔과 달리 발끈하는 세자를 연기하는 박보검의 팔색조 연기가 통했다고 보는 것이 맞을 것이다. 표정을 순식간에 바꾸는데 그 모습이 마치 변검을 보는 것처럼 전혀 다른 얼굴인가 싶을 정도였다. 이 정도면 일박이일의 표현을 빌려와 보검 매직이라 해도 과하지 않을 것 같다.

KBS 2TV 새 월화드라마 <구르미 그린 달빛>

거기에는 기가 막힌 케미를 보장해준 상대 배우 김유정의 공로를 빼놓을 수는 없을 것 같다. 현재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아역(?) 3인방이 근래 시차를 두고 드라마 주연을 꿰찼는데, 공교롭게도 모두가 독특한 캐릭터를 맡았다. 김새론은 마녀로, 김소현은 귀신으로 그리고 김유정은 남장내시라는 상상을 깨는 독특한 역할로 나섰다.

사실 이들 아역 3인방이 너무 일찍 멜로드라마의 주인공이 되는 것에 문제를 제기하는 여론도 존재한다. 자연 키스신 등 애정신들도 나오기 마련인데, 너무 이르지 않느냐는 우려는 나름 일리가 있다. 또한 김유정은 이번 드라마에서 좀 과하다 싶은 노출신이 있었기 때문에 자칫 논란으로 발전할까 걱정스러운 부분이기도 하다.

어쨌든 그런 아쉬움은 숙제로 남겨두고 김유정의 역할만 말한다면, ‘역시 김유정’이라는 말밖에 할 말이 없다. 식상한 표현이지만 딱히 다른 방법이 없다. 김유정은 믿고 보는 배우임에 틀림없다.

KBS 2TV 새 월화드라마 <구르미 그린 달빛>

그간 남장여자는 많았다. 그렇지만 그 남장의 역할이 내시라는 황당한 설정은 없었다. 그 애매하고 황당무계한 상황을 김유정은 참 잘도 소화해내는 모습에 그저 감탄밖에 할 수 없었다. 사실 김유정에게는 남장여자라는 것보다 더 큰 숙제는 홍라온이라는 인물의 성격이었을 것이다. 가볍게 보면 흔한 캔디 캐릭터겠지만 김유정의 홍라온은 순정만화 수준을 훌쩍 뛰어넘는 고도의 너스레가 필요한 역할이다. 슬픔과 너스레의 균형을 맞춰야 하는 역할을 이 어린 연기자 김유정은 식은 죽 먹듯이 해내고 있다.

결국 박보검의 모든 우려를 무효화시키는 매력적인 연기 변신과, 김유정의 일취월장한 연기의 합은 시청자를 매료시킬 수밖에는 없다. 가장 기대되는 경쟁작인 이준기와 아이유의 <보경심 려>와의 경쟁에서 일단 유리한 고지를 선점했다고 봐도 좋을 것 같다. 아, 그리고 특별출연한 차태현, 조여정의 짧지만 강렬하고도 아름다운 일화도 너무 좋았다.

매스 미디어랑 같이 보고 달리 말하기. 매일 물 한 바가지씩 마당에 붓는 마음으로 티비와 씨름하고 있다. ‘탁발의 티비 읽기’ http://artofdie.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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