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당신이 이 글의 화자인 ‘나’가 되어 읽으시면, 더욱 즐겁습니다.

그러니까 나의 불만은 <미디어스>와 같은 개종 가능성 제로의 군소 인터넷 매체 따위는 어찌하여, 늘상 나의 푸른 기와집 입주 1주년과 같은 안정적 소식보다는 광화문 촛불 난동 사건 1주년과 같은 내가 개고생한 사실을 더 성대하게 기념하려 하는가 하는 것이지. 아시다시피 그건 선진일류국가로 발돋움하는 ‘법치’의 자세에 어긋나는 일일 뿐더러 삽질 같은 ‘저탄소 녹색성장’의 생산성과 비할 수 없는, 세상만사 그저 모든 일에 반대를 위한 반대만 일삼는 사탄의 무리 같은 지독한 ‘좌빨’ 세력에 동조하는 일이지 않은가 말이다. MBC마냥, 공정하지 못 하게시리. 이거 일일이 찾아다니면서 사장을 바꿀 수도 없는 노릇이고, 이거 참.

길게 말하고 자시고 할 것도 없다. 그건 그냥 ‘반대를 위한 반대’였다. 지금의 난, 그해 5월을 아무리 기억하려고, 애를 써 봐도 당최 무엇도 떠오르지가 않는 주기 망각의 상태에 빠졌다. 이제와 새삼 내가 그따위 것들을 기억할 까닭이 또 무어람. 별일 없이, 천하가 태평한데. 자꾸, 인왕산에 올라서 <아침이슬> 들으며 울었다고 해대는데, 가당치 않은 말씀. 아, 글쎄 기억이 안 난다니까.

그리고 말이 나와서 말인데, 통치행위의 일환으로 한 말을 사회학적으로 해석해버리는 87년 6월 항쟁 때나 통했을 법한 못된 버릇을 아직도 못 고치고 있으면 대관절 뭘 어쩌잔 말인가. 자꾸 이런 식으로 나오니까 원래 지독히 ‘정치’를 혐오했던 내가 어쩔 수 없이 점점 더 ‘정치’를 할 수밖에 없게 되는 것이 아닌가. 모든 건 당신 탓, 그러니까 모두 촛불 때문이다.

말하건대 무릇, 정치란 ‘나라를 다스리는 일’이다. 내 말이 아니라 엄연히 사전에 나오는 말이다. 정치란 그래서 국가의 권력을 획득하고 유지하며 행사하는 활동이고, 국민들이 인간다운 삶을 영위하고, 상호간의 오해 없게 사회 질서를 바로잡는 역할 아니겠나? 어떤가, 내가 하는 일들이 바로 한 치의 오차도 없이 바로 그것 아닌가.

나는 나라를 다스리는데 방해되는 이들을 격리하여 국가 권력을 매우 강하게 획득, 유지, 행사하는 모든 활동을 할 뿐이고, 국민들이 우리가 선진국답다고 믿는 착각 속에서 삶을 영위하게 하고 싶을 뿐이고, 상호간에 아무런 오해도 발생하지 않는, 그런 소지조차 생기지 않게 하는 하나의 법치 사회로 질서를 때려잡고 있을 뿐이다. 한 마디로 말하자면, 반봉건적인 촛불 같은 것들이 날뛰는 좀비들의 세상을 없애는 일. 그것이 바로 내가 생각하는 아주 실용적인 ‘정치’이다. 아니라고 생각하면 그냥 영장 발부 받으시든가.

곰곰이 따져보면, 1년 전에도 경제만 살리면 됐다고 했지, 어디까지나 정치는 덤이었다. 한나라당이 정권을 잡아도 민주주의는 안 망한다고, 오히려 그게 민주주의 정치의 진전이라고 씨부리던 유명한 정치학자도 있었지 않은가, 왜 그 키 큰 사람. 그러니까 잘난 정치, 못난 정치는 없다 이 말씀이지. 그냥 뭐든 정치만 잘 하면 됐지, 굳이 봉건적인 정치는 하면 안 된다고 했던 사람 나와 보란 말이지. 난 고도의 민주주의가 실현되는 정치가 모델인 대통령이 아니거든. (낄낄) 그리고 무엇보다 그걸 몰랐어? 여태. 난 원래 그런 사람이었단 말이지.

남우세스런 말이지만, 기업 할 때도 내가 정치 하나는 참 잘했다고. ‘기업을 다스리는 일’ 그거 뭐 별거 있나, 기억나나? 부도난 현대건설과 홍보만 한 BBK. 그게 다 내 작품 아니었겠어. 어디 그뿐인가, 시장할 적에 서울시청 본관 2층에 시장 집무실 창밖으로 펼쳐진 시청 앞 광장의 파란 잔디를 내려다보는 풍경은 또 어땠고. 뭐, 태양왕이라 불리던 이가 살았다던 베르사유 궁전 부럽지 않았었다고나 할까. 그 삽질도 내가 떴단 말이지. 그 시절 내 별명 알잖은가. 태양시장. 참 내 인생에 있어 포항 앞바다 태양처럼 참 찬란했던 시절이었지. 잠시의 여유와 풍경, 그리고 나 한 명의 심미적 만족을 위해 몇 십억 짜리 잔디 위에 몇 천 만원치의 영양제를 담은 스프링쿨러가 잘도 돌아가던 아름다웠던 시절…. 그땐 왜 다 좋다고 했잖아. 아무 말도 없더니. 촛불도 다 꺼트린 주제에 이제와 새삼 웬 지랄들인가? 압수수색 해버릴까 보다.

그러니까 다시 한번 말하지만 작년 이맘때 봄꽃이 좋아 인왕산에 오른 사실은 있지만, 난 <아침이슬>을 들은 일도, 더군다나 눈물을 보인 일 따위는 아예 없었단 말씀이지. 내가 그렇게 낭만적으로 여유를 즐기며 살아온 사람이 아니란 거 더 잘 알지 않나? 20대에 이사되고, 30대에 사장되고 국회의원 하다가 벤처기업하고 다시 시장 한, 나를 못 알아보고, 한심한 자들의 맥없는 소리하곤. 그리고 산에서 어떻게 노래를 듣는단 말인가? 상상조차 되질 않는다. 난 그 흔한 ‘마이마이’도 안 샀다. 알잖은가? 나, 이래 뵈도 컴퓨터도 못 켜는 사람이다.

그러니까 내 말은 광화문 촛불 난동을 기릴 시간들일랑 있으면 그러지 말고 날도 좋은데 다들 ‘자전거’나 타시라는 얘기일세. 목포에 사는 젊은이는 영산강을 출발해 금강을 거쳐 서울에 오고, 서울을 출발한 청소년들은 강바람을 가르며 한강과 낙동강을 거쳐서 부산까지 가면 하늘엔 조각구름도 떠있고 풍경도 고즈넉스러우니 얼마나 좋겠는가? 근데, 왜 가야 하냐고? 이유 같은 걸 감히 나한테 묻지 마라. 확 긴급체포해 버리기 전에.

강조하지만, 중요한 건 내가 100%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이라는 거다. 잘 못 느끼겠지만, 당신의 삶 속에서 이미 그 사랑 받고 있다. 태초부터 시작된 하나님의 사랑은 푸른 기와집과 나의 만남을 통해 열매를 맺으셨고, 내가 이 세상에 존재함으로 인해 소망교회 신도들에게 얼마나 큰 기쁨이 되는지는 아침 라디오를 들으며 잘 생각해 보라. 아니면 뉴라이트나 구국 기도회에 가보던가. 그리하여 이 글은 촛불 1주년 따위와는 아무 상관도 없이 오로지 내 형님 광대와 그 세 아들들에 대한 강부자의 노래일 뿐이다. 각설하고 시작한다. (패닉의 ‘그 어릿 광대의 세 아들들에 대하여’ 노래를 생각하며 읽으면, 더욱 즐겁습니다.)

이 글은 내 형님 광대의 그 세 아들들에 대한 노래. 전해지는 이야기에 따르면 형님 광대와 그 세 아들들은 내가 푸른 기와집에 오르던 날 함께 모여 과메기를 안주삼아 밤을 새워 웃어댔다고 하죠.

여론 조사를 하던 첫째, 3월에 웃으며 마을로 돌아와, 시중에 있는 모든 방송/통신 (그 모든 걸 옛날 방식으로 고칠 수 있다고) 그렇게 장악을 해나갈 때마다 (채 벌어지지도 않은 자리마다 누구도 믿기 힘든 낙하산들이) 낙하산이 떨어진 자리마다 (병이 난 방송, 통신들은 커다란 고통) 조금씩 갱신의 삶을 찾아갔죠. 난 그냥 상관없는 사람처럼 ‘허허허’ 웃었다. 비록, 잘못 착지한 어떤 띨띨한 낙하산이 새벽 출근에 약간의 서러움을 겪었지만, 큰 고비에서 감사원이 도와주고, 기자를 징계하고 노조원을 해고하는 방법이 있으니 결국, 그 낙하산들이 하나하나 사장실을 꿰차고 앉았으니 영 흐뭇할 뿐이다. 앞으로 4년 동안 그 이후에도 고비마다 어려운 날이 올 때마다 우리를 지켜줄 테다.

이 글은 내 형님광대의 그 세 아들들에 대한 노래이다. 이제 그 두 번째이다. 전해지는 이야기에 따르면, 그 세 아들들은 내가 푸른 기와집에 들어오던 날 함께 모여 이제 우리에게도 콩고물 좀 떨어질 것 같다며 함께 모여 밤을 새워 춤을 추었다고 한다.

양촌리 살던 둘째, 그 어느 날 “성질 뻗쳐 씨~ㅂ” 하며 마을로 돌아와, 세상의 모든 문화와 관광과 체육(그보다도 나팔이 훨씬 중요하다며) 자기 밑의 기관장 그 모두를 한 번에 바꿀 수 있다고 (나팔을 불어 제쳤죠) 그가 나팔을 불 때마다 (이름 있는 예술가들, 인터넷을 통해 정보를 유통하는 젊은이들이) 아무런 이유 없이 (그 나팔 소리에 하나 둘씩 쓰러져 가고) 그가 지나간 자리마다 (문화를 잃은 나팔의 야단법석이 드높고) 그를 보는 괴기스런 고통은 야구장을 배회하는 강아지마저 발걸음을 돌리게 만들었죠.

이 글은 그 형님 광대의 세 아들들에 대한 노래, 이제 그 마지막이다.

노아무개와 맞장 떴던 셋째, 그 어느 날 웃으며 옛날로 돌아가, (세상의 모든 민주주의 그 모두를 한 방에 돌릴 수 있다며) 공권력을 휘두를 때마다, 법치가 서슬 퍼래 낯을 간지럽힐 때마다 (이사가 해임되고, 사장이 기소되고, PD가 체포되고, 박아무개가 체포/구속되고, 네티즌들이 처벌) 검객에 당한 사람들이 늘어갈수록 (아무도 알지 못할 이상한 효과로 세상이 입이 닫고 귀가 멀고) 검찰이 뜰 때마 (표현을 잃은 MBC는 서러운 고통에 스크럼의 춤사위로)

<에필로그>

벌써 1년, 아니 이제 1년. 미래 4년 고난. 당신은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 그렇다면 우리는? 넌 누군가? 대체 여긴 어딘가?

저작권자 © 미디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