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역을 맡더라도 배우는 그래야 하지만 2008 촛불 이후 ‘나’만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전체를 바라보는 눈이 틔였다.”

▲ 맹봉학씨 미니 홈페이지
사람은 무엇으로 변하는가. MBC 드라마 <내 이름은 김삼순>에서 삼순이 아버지로 유명세를 탄 맹봉학씨. 그는 2008년 어느 때보다 뜨거웠던 ‘촛불’로 변하고 있었다. 이것은 과거형이 아니라 현재진행형이다. 그는 이미 국민들에게는 ‘촛불’ 집회에 참석한 연예인 중 경찰 조사를 받은 1호 연예인으로 기억되고 있다. 그는 요즘 무엇을 하면서 살아갈까?

그는 2008년 ‘촛불’을 ‘사회를 바라보는 눈을 틔워준 사건’으로 기억했다. 그가 지난해보다 올 ‘용산 참사’ 얘기를 더 많이 하는 것도 그래서 자연스러워 보였다. “용산은 남의 일이 아니다. 결과적으로는 내 일이다. 전 국민이 가슴 아파해야 하는 비극이다.” 전화기 너머로도 그의 심경이 고스란히 전해져 왔다. 그는 “누가 보더라도 용산 세입자들의 요구는 정당했다”며 “사과는커녕 오히려 그들을 참사 희생자들의 살인범으로 만들고 있는 정부가 너무 안타깝다”고 말했다.

용산 참사 촛불집회에도 참가했다는 그에게 용산은 2008년 촛불의 연장이었다. 그가 보기에 미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가 이명박 정부에 대한 불신으로 이어지게 했던 요인은 용산 참사에서도 똑같이 작용하고 있다.

연예인인 맹봉학씨에게 ‘촛불’은 또한 사회환원이었다. 그가 말하는 사회환원이란 정치적인 문제에 국한된 것이 아니었다. 촛불 이전에도 그는 사회봉사를 열심히 했다. 사회봉사는 대중들로부터 얻은 인기를 돌려주는 것이라고 했다. 물론 상투적으로 들릴 수 있는 말이다. 하지만 그것을 실천하는 사람들은 얼마나 될까?

그러나 그 역시 ‘어쩔 수 없는’ 연예인이었다. 김미화, 윤도현, 이하나, 김민선처럼 그도 촛불 때문에 곤혹을 치렀다. “이상하게 캐스팅이 잘 안되더라. 무엇이 옳은 것인지 고민하게 된다.” 그래도 답은 이미 그에게 정해져 있는 듯하다. “앞으로도 조용히 나가긴 나갈 건데, 보도는 안 됐으면 좋겠다”고.

옳은 것을 옳다고 이야기하는 것이 어려운 사회. 2008년 촛불은 끝났을지 모르지만 막돼먹은 세상을 향한 맹봉학씨의 고군분투는 계속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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