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연재의 올림픽이 끝났다. 메달은 없었다. 하지만 그 무엇으로도 설명하기 힘든 감동과 여운이 남는 무대를 펼쳤다.

손연재는 21일(한국시간)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의 리우 올림픽 경기장에서 열린 2016 리우 올림픽 리듬체조 개인종합 결선에서 후프(18.216점)-볼(18.266점)-곤봉(18.300점)-리본(18.116점) 4종목 합계 72.898점으로 경쟁자인 우크라이나의 간나 리자트디노바(73.583점)에 이어 4위에 이름을 올렸다.

앞서 손연재는 첫 출전한 올림픽이었던 2012년 런던올림픽에서 5위를 차지했었다. 따라서 손연재가 이번 리우올림픽에서 거둔 성적은 4년 전에 비해 순위를 한 계단 끌어올린 것으로, 한국 선수로는 물론 아시아 선수로서 올림픽 무대에서 거둔 역대 최고 성적이다.

2004년 아테네 올림픽에서 카자흐스탄의 알리야 유수포바가 개인종합 4위에 올랐던 기록이 있으나 구 소련연방국가 가운데 하나였던 카자흐스탄 선수가 거둔 성적이란 점을 감안하면, 진정한 의미에서 아시아 최고의 성적을 거둔 선수는 손연재라고 할 수 있다.

20일(현지시간)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 리우 올림픽 경기장에서 열린 리우올림픽 리듬체조 개인종합 결선에서 손연재가 리본 연기를 펼치고 있다. (리우데자네이루=연합뉴스)

그동안 손연재는 승부근성이 강하고 멘탈 매니지먼트 역시 뛰어난 선수로 정평이 나 있었지만 리우 올림픽 무대에 선 손연재는 우리가 예전에 알던 그 손연재가 아니었다.

손연재는 앞서 지난 20일 열린 개인종합 예선에서 볼(18.266점), 후프(17.466점), 리본(17.866점), 곤봉(18.358점) 등4종목 합계 71.956점으로 5위에 올라 여유 있게 결선 진출 티켓을 따냈다.

4년 전 런던올림픽 예선에서는 6위로 결선에 올랐지만 이번에는 5위로 결선에 올랐다. 이 부분은 손연재의 성장을 보여주는 지표로 볼 수 있지만 실제 연기 내용은 불안한 것이 사실이었다.

예선 1위와 2위를 예상대로 러시아의 마르가리타 마문과 야나 쿠드랍체바가 차지한 가운데, 손연재는 이번 대회에서 개인종합 동메달을 놓고 경쟁을 펼칠 것으로 예상됐던 두 경쟁자 간나 리자트디노바(우크라이나)와 멜리티나 스타니우타(벨라루스)에 모두 뒤졌다. 예선에서 71.956점을 받은 손연재는 3위 리자트디노바(73.932점)에는 1.976점, 4위 스타니우타(72.575점)에는 0.619점 뒤졌다.

20일 오후(현지시간) 브라질 리우 올림픽 경기장에서 열린 리듬체조 개인종합 결승에서 손연재가 곤봉 연기를 하고 있다(다중노출촬영). (리우데자네이루=연합뉴스)

후프와 리본에서 크고 작은 실수가 이어지면서 당초 목표로 했던 18점대 점수가 아닌 17점대의 점수를 받는 데 그쳤다. 볼 연기와 곤봉 연기도 18점대 점수를 받기는 했지만 긴장한 빛이 역력했다.

총 26명의 예선 출전 선수들 가운데 10번째로 연기를 펼치도록 순서가 정해졌을 때 적당한 순서라고 생각들을 했지만, 예선에서 보여준 긴장한 모습은 손연재에게 연기 순서는 큰 의미가 없음을 보여주고 있었다.

동메달을 목표로 나선 올림픽 무대였지만 메달을 생각하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하지만 결선에서의 손연재는 달랐다. 예전에 알던 손연재의 모습으로 돌아온 것. 마음을 무겁게 누르고 있던 부담을 내려놓은 듯 편안한 표정으로 그동안 준비해온 것들 하나하나를 차분하게 펼쳐 놓았다.

마지막 리본 연기를 마치고 경기장을 벗어나 채점 결과를 기다리는 손연재의 얼굴은 금방이라도 눈물이 쏟아질 것 같았다. 그리고 경쟁자 리자트디노바의 동메달 획득이 확정된 순간 손연재는 관중석을 바라보며 눈물을 지었다.

메달 획득이 무산됐기 때문이라기보다는 리듬체조 선수로서 17년의 커리어를 마감하는 순간 교차하는 만감 때문이었으리라.

손연재가 20일 오후(현지시간)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 경기장에서 열린 2016 리우올림픽 리듬체조 개인종합 결선에서 4위로 경기를 마친 뒤 관중석을 향해 손을 흔들며 울고 있다. (리우데자네이루=연합뉴스)

손연재가 선수로서 종착점으로 예고해 온 리우 올림픽 피날레 무대는 그렇게 메달만 없었던 감동과 여운의 무대였다.

경기 직후 손연재는 인터뷰에서 눈물을 흘렸다. 그는 "끝나니까 눈물이 났다. 러시아 선수들 축하해주는데 눈물이 났다. 같이 고생했다. 우크라이나 선수도 눈물을 흘렸고. 다 같은 마음이다. 다 같은 노력으로 고생했다. 그래서 축하해줄 수 있었다. 지금까지 갖고 있던 짐을 내려놓는 것에 대한 후련함의 의미였던 것 같다"고 했다.

손연재는 “자부할 수 있는 것은 조금 느려도 천천히, 계속해서 노력해왔고 발전해왔다고 생각한다. 스스로에 대한 자부심이 있다"며 "100점이 있다면 100점을 주고 싶다. 제가 주는 점수니까"라고 웃었다.

마지막으로 손연재는 "사실 한국에 있던 시간이 최근 6년 동안 1년도 안 된다. 거의 러시아인이 다 됐는데, 한국인으로 살겠다"는 소박하지만 간절했던 바람을 밝혔다.

리듬체조 요정 손연재와의 작별. 결코 올 것 같지 않던 그 시간이 마침내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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