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위 '막방 버프'라는 것도 없었다. 올림픽 중계방송으로 지난 한 주를 쉬어간 <원티드>는 마지막 회 4.9%라는 초라한 성적표를 받아들었다. 그나마 초반 7,8%를 오르내리던 시청률은 비슷한 장르 드라마인 <W>의 방영과 함께 반 토막 나다시피 했고, 거기서 좀처럼 반등의 기회를 잡지 못한 채 종영을 맞았다.

그렇다면 역시나 '시청률'이라는 잣대로 <원티드>를 평가해야 할까? 중장년층이, 심지어 젊은층조차 고달픈 현실 생활의 시름을 잊고자 드라마를 보는 세상에서, '현실'의 가장 적나라한 모사가 이루어졌던 비주류 장르 드라마를 '시청률'로만 평가한다면 아마도 지상파 TV에서 '스릴러'나 신선한 장르의 시도는 씨가 마를 듯하다. 마치 우리가 건강을 위해 심심한 야채를 밥상에 채워 넣듯, <원티드>와 같은 새로운 스릴러는 건강한 방송 문화의 비타민처럼 앞으로도 꾸준히 복용되어야 할 것이다.

드라마로 들어온 리얼리티 쇼 <원티드>

SBS 수목드라마 <원티드>

당대 최고의 여배우 정혜인(김아중 분)이 은퇴 발표를 하기가 무섭게 그녀의 아들이 납치된다. 그리고 범인은 요구한다. 자신의 미션을 수행할, 시청률 20%가 넘는 리얼리티 쇼를 만들어라! 아들을 살리기 위해 정혜인은 범인의 요구를 들어주고자 하고, 현 남편 송정호(박해준 분) UCN 사장과 방송인 신동욱(엄태웅 분) 피디와 최준구(이문식 분) UCN 드라마국 국장 등과 함께 <원티드>를 방영한다. 여기에, 방송 작가 연우신(박효주 분)과 신참내기 방송인 박보연(전효성 분)이 합류한다.

범인의 미션에 따라 <원티드>를 만들기로 한 제작진. 하지만 아들을 구하기 위해서란 정해인의 뜻과 합류한 이들 각자의 이해관계는 서로 다르다. 이런 서로 다른 이해관계와 범인의 요구가 엇물리면서 리얼리티 쇼 <원티드>는 첫 회부터 난항을 겪는다. 방영 전부터 방송사 앞에 진을 치며 방영 반대를 외치던 시민들. 하지만 시청률 20%라는 요구를 달성하기 위해 타 리얼리티쇼 출연까지 감행하며 애썼던 <원티드>. '방송'이라는 목적에 충실하겠다는 신동욱 피디의 적나라한 연출은 선정성에 약한 시청자의 관심을 끌어당기고 순조롭게 시청률 20%라는 미션을 달성할 수 있게 된다.

하지만 방송 개시와 함께 리얼리티 쇼는 뜻밖의 상황을 만들어낸다. 어린 현우인 줄 알고 구출했던 아이가 알고 보니 가정 폭력의 피해자라던가, 그 아버지가 범인에게 살해당한다던가, 현우의 주치의였던 사람이 가난한 환자들을 상대로 부도덕한 임상 실험을 했다던가, 현우의 사건과는 전혀 다른 성질의 사건들이 마구 튀어나온다. 현우를 찾겠다는 목적에 정혜인은 애를 태우지만, 이 사건을 수사하기 시작한 경찰 차승인(지현우 분) 등은 리얼리티 쇼에서 벌어진 사건의 '함의'를 찾기에 골몰하는데...

리얼리티 쇼의 중반을 넘기며 하나둘씩 드러나는 진짜 사건의 그림자. 방송 초반 가정 폭력범인 대학 교수도, 불법 임상 실험을 했다던 의사도 알고 보니 SG그룹의 가습기 살균제 독성 실험을 무마했던 조력자들이었다. 조카의 안전을 돕겠다며 UCN 방송국조차 사들이기를 마다하지 않았던 큰아버지 SG그룹 후계자는 알고 보니 가습기 살균제 독성을 덮어둔 최후의 '보스'였고, 오히려 정혜인 아들을 납치까지 하며 범인에 조력했던 나수연과 BJ는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나 내부 고발자의 가족이었던 것. 숨겨진 진실이 드러나며 이제까지 방송에 호의적이었던 SG그룹은 경찰청장, 사장 등을 내세워 방송을 막고자 하고, 이제 방송팀은 현우의 안전과 범인이 <원티드>를 통해 밝히려고 했던 진실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좇아야 하는 숙명에 처한다.

너무도, 너무도 현실적이었던 <원티드>

SBS 수목드라마 <원티드>

납치된 아들을 찾기 위해 리얼리티 쇼를 만드는 독특한 상황을 설정한 드라마 <원티드>. 하지만 그 기발한 아이디어와 달리, 그 과정에서 드러난 인간 군상의 민낯은 현실을 고스란히 모사한다.

아들을 찾기 위해 방송을 해야 하는 정혜인. 하지만 정혜인과 손잡은 방송팀은 '돈' 혹은 '방송사의 시청률', 심지어 '방송으로 할 수 있는 한계에 도전하고픈 욕망'까지 저마다의 이해관계로 엇물린다. 하지만 그 엇물린 이해관계는 '시청률 20%'라는 마약 같은 목적을 위해 뒤엉켜 굴러간다. 스스로 범인의 인질이 되는 순간에도 카메라에 잡히는 비극의 당사자로서의 깨달음을 얻기까지는.

'방송' 혹은 '시청률'이라는 마약에 취한 듯한 제작진을 탓할 것도 없다. 그들에게 기꺼이 시청자들이 춤을 춰주니 말이다. 정혜인의 아들이 납치당하고 방송 과정에서 인질극이 벌어지고 사람이 죽어나가며, 그 과정이 가감 없이 전파를 타고 방영하는데, 사람들은 그걸 '게임'처럼 즐긴다. '재밌다'고 반응한다. 시청자들의 반응은 '비극'에의 공감이 아니라 불난 집에 불구경하는 '오락성'을 넘지 못하고, <원티드>는 방송을 만드는 사람의 부도덕성과 함께 시청자들의 탈도덕적 관음주의을 신랄하게 드러낸다.

아이러니하게도 결국 최준구로 밝혀진 범인은 그런 현실의 맹목적 부도덕, 탈도덕을 가장 예리하게 집어냈고, 덕분에 미스터리 리얼리티 쇼 <원티드>는 매회 높은 시청률로 전 사회적 관심을 끌었다. 덕분에 애초에 그가 목적했던 바, SG그룹의 가습기 살균제 독성 폭로에 다가갈 수 있었다. <원티드>의 첫 회 가정 폭력에 이어 부도덕한 임상 실험 등이 '낚싯밥'으로 시청자들의 관심을 끌어가며, 경찰청장의 사생활 비리 등을 거쳐 SG라는 자본의 거대한 음모의 폭로로 이어가는 일련의 흐름은 대중적 관심도의 이율배반성을 절묘하게 증명해낸다.

하지만 다른 드라마나 영화에서 통쾌하게 폭로된 자본의 음모는 드라마 <원티드>에서는 순탄치 않다. 자신의 이해를 위해 피해자 가족이나 경찰은 물론 심지어 자신의 혈연인 재벌가의 아들조차 제거했던 자본은, 방송사를 사들여 <원티드>의 방영을 막는 것부터, 언제나 방송팀보다 한 발 앞서 사건의 진실을 알고 있는 당사자들을 제거하며 진실에의 접근을 막는다. 최준구가 스스로 칼에 찔려가며 자본가의 법정 구속을 노리지만, 언론을 장악한 자본은 그조차도 유유히, 오히려 최준구를 '테러범'으로 몰며 법망을 빠져나간다. 심지어 가습기 피해자들이 잔뜩 들어찬 스튜디오에서 '사과'를 요구하는 방송에, 여유만만한 미소를 띠며 완벽한 조작이라며 반전을 꾀한다. 진실이 드러나도, 그 진실조차 덮어버리는 자본의 힘이다.

영화 <터널>이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심 끝에 터널 속에 갇힌 이정수(하정우 분)를 구해내듯, 그리고 그의 '꺼져 개새끼들아!'로 답답한 마음을 대변하는 것으로 보는 이들의 마음을 긁어주듯, 현실을 반영한 대부분의 드라마들은 '홍길동'이거나 '장총찬(인간시장의 주인공)'이 되어 부도덕한 현실을 징벌한다. 그게 아니라도 가진 자들이 스스로의 부도덕한 치여 무너지곤 한다. 하지만, 원티드는 그런 통쾌한 판타지에서 한 발 물러선다.

사이다 대신 저마다의 '도리'를 일깨운 결말

SBS 수목드라마 <원티드>

아들 현우는 돌아왔지만, 남편의 죽음과 그를 둘러싼 진실을 알게 된 정혜인은 마지막 방송을 한다. 전남편이자 동생이었던 함태영과의 대화 내용을 예고편으로 꾸민 제작진, 그들의 의도에 따라 함태섭은 방송에 출연한다. 그의 예견된 변호 발언을 뒤로 하고, 그가 예상치 못했던 BJ와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들이 스튜디오로 등장하여, 그가 그간 벌인 인면수심의 사건과 그것을 뛰어넘는 전 사회를 대상으로 한 '살해 시도'인 독성 무마에 대해 '폭로'한다.

하지만 '사과'를 하라는 피해자들의 읍소에도, 함태섭은 눈 하나 꿈쩍하지 않고 모든 것을 '음모'로 돌린다. 그런 그가 자리를 나서고 대신 정혜인이 허리를 숙여 사과한다. 왜 최준구가 자신을, 자신의 아들을 납치했을까라는 오랜 질문에 대답을 하며. 자신의 전남편 함태영이 사건의 진실을 알고 해결하려 했을 때 자기 가족의 안위를 내세우며 그를 말리지 않았더라면, 사태가 이 지경에 이르지 않았을 것이라 사과한다.

<원티드>는 통쾌한 한 방 혹은 사이다 같은 자본에 대한 징벌이라는 '판타지' 대신, 그 무엇도 달라진 것이 없는 현실에도 불구하고 저마다의 '도리'를 남긴다. 시청률 상승을 위해 좀 더 자극적인 방송이나 폭로에 골몰하던 제작진과 기자가 다른 태도를 가질 때, 방송이 어떻게 달라지는가를 <원티드> 10회는 보여준다.

또한 사건 수사 과정에서 죽어간 선배의 한 마디, 난 '형사니깐, 그렇게 해야 하는 사람이니까'라는 그 말 한 마디를 가슴에 담은 차승인은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해야 한다’고 담담하게 말한다. 누구 한 사람의 '영웅'은 없었지만, 또한 통쾌한 반전 복수극은 없었지만, 대신 사람들은 이제 저마다의 자리에서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위해 조금씩 움직이기 시작한다. 한 사람의 영웅 대신 모두의 자각, 모두의 한 발이 어쩌면 그 어떤 반전 복수극보다 가슴과 머리를 울린다. 그리고 이는 비록 4%의 낮은 시청률에도 불구하고 <원티드>의 존재 이유를 설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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