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야말로 점입가경이다. 우병우 청와대 민정수석 문제가 특별감찰관의 위법행위 또는 불법사찰의 문제로 불이 옮겨 붙고 있다. 그림만 보면 우병우 민정수석과 조선일보 간의 힘겨루기에 MBC가 자객으로 등장한 모양새다. 근래 권력과 언론의 싸움이 이렇게 까지 혼탁 양상을 보인 예가 없다는 점에서, 이 상황은 역사에 남을 하나의 장면으로 기억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상황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간단한 정리가 필요하다. 이 문제는 지난달 18일에 조선일보가 우병우 민정수석 처가 문제를 1면 보도하면서 촉발됐다. 이후 여러 언론이 우병우 민정수석과 관련한 다양한 의혹을 경쟁적으로 보도했다. 우병우 민정수석은 이에 대한 나름의 해명을 하는 자리를 만들었으나 고압적 태도로 문제를 더욱 악화시켰다. 이후 박근혜 대통령은 “고난을 벗 삼아 당당히 소신을 지키라”는 저 유명한 말로 우병우 민정수석을 감쌌다. 이후 거의 모든 언론이 우병우 민정수석 사퇴의 불가피성을 주장했으나 청와대는 ‘특별감찰 결과를 보겠다’는 구실로 버티기로만 일관했다.

반격이 시작된 것은 5일이다. 이날 각 언론은 우병우 민정수석 처가 부동산 문제를 최초 유포한 사람이 입건됐다는 소식을 전했다. 애초 소문의 진원지로 정무수석실 치안비서관을 맡고 있는 경찰 출신 인사가 지목된 바 있으나 이는 사실이 아니고, 대기업 홍보실 직원이 최초 유포자로 밝혀졌다는 것이다. 경찰 발표에 따르면 이 최초 유포자는 시중에 떠도는 소문을 모아 회사에 보고한 후 지인에게도 알렸고, 이게 속칭 ‘찌라시’의 재료가 돼 사건이 커지는 계기로 작용했다는 거다. 이와 같은 사실은 경찰이 ‘카카오톡’ 서버를 압수수색 하면서 밝혀졌다.

조선일보 6일자 사설

조선일보를 비롯한 보수언론은 이를 어떤 수습의 신호탄으로 보았던 것 같다. 조선일보는 6일 <또 ‘허위 지라시’, 재벌·권력기관이 키운 쓰레기 정보 시장>이란 제목의 사설을 지면에 배치해 이른바 ‘찌라시’를 생산하는 쪽도, 이를 활용하는 재벌기업, 정치권, 언론사, 수사기관 등도 문제라고 지적했다. 이 사설 내용대로라면 조선일보의 보도 역시 ‘찌라시’에 근거한 것이 된다. 일종희 ‘자해’성 사설이었던 셈이다. 이후 조선일보는 우병우 민정수석 관련 보도를 자제하면서 조만간 거취가 결정될 수 있다는 희망 섞인(?) 전망을 내놓기도 했다. 즉, ‘우리도 그만 할테니 우병우 민정수석만 내려달라’는 제스츄어로 해석할 수도 있는 대목이다.

그런데 박근혜 대통령이 16일 하나마나한 개각을 단행하면서, 사태는 조선일보가 전망한 대로 흘러가지 않는 모양새가 됐다. 애초 유력한 전망은 박근혜 대통령이 개각 인선 이후 우병우 민정수석 거취를 결정할 거라는 거였는데 청와대 관계자들은 그것조차도 쉽지 않을 거라는 얘기를 흘리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동시에 이날 MBC는 뜬금없이 이석수 청와대 특별감찰관이 모 언론사 기자에게 감찰 내용을 누설했다는 단독 보도를 감행했다. 바로 다음 날인 17일 조선일보는 박근혜 대통령의 개각 인선에 대한 그야말로 날 선 비판을 내놓고는 우병우 민정수석 관련 의혹을 다시 보도하기 시작했다.

MBC가 이석수 특별감찰관과 사실상 ‘내통’하고 있다는 뉘앙스로 보도한 모 언론사는 이런 정황으로 미루어볼 때 조선일보일 가능성이 커 보인다. MBC 보도에 의하면 이석수 특별감찰관은 우병우 민정수석의 처가 땅 문제는 감찰 대상이 아니라고 설명하면서 “지금 보고 있는 것은 아들 운전병 인사랑 정강”이라고 발언했다. ‘정강’이란 우병우 민정수석이 ‘절세’를 목적으로 만든 가족기업의 이름이다. 조선일보는 17일 <禹처가, 화성땅 차명보유 물증 나와> 제하 기사에서 우병우 민정수석 처가가 자신들이 소유한 골프장 주변 부동산을 차명 보유 했다는 의혹을 보도하면서 “또 배임·횡령과 탈세 문제로 이석수 특별감찰관이 조사 중인 우 수석의 가족회사 ㈜정강의 경영에 우 수석이 관여했다는 증언도 나왔다”고 썼다. 해당 기사가 17일 지면에 실렸다는 건 16일에 쓰여 졌다고 볼 수 있는데, 이 전까지 ‘이석수 특별감찰관이 우병우 수석 가족회사를 조사 중이다’라고 보도한 매체는 사실상 없었다. 다들 가능성을 예측한 정도였다.

조선일보 17일자 기사

MBC 보도에서 반복 언급되는 ‘SNS’는 현실적으로 판단해볼 때 트위터나 페이스북 등 보다는 카카오톡이나 라인 등의 형태인 것으로 추정된다. 조선일보는 18일 지면에 MBC 보도에 대한 대대적 반격을 펼쳤는데 <‘감찰관·기자 대화내용’ 담은 SNS, 누가 몰래 들여다봤을까>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이번 사태는 국민 대다수가 사용하는 SNS 내용이 당사자 동의 없이 유출된 것”이라고 쓰고 있다. 트위터나 페이스북을 ‘국민 대다수가 사용하는 SNS’라고 볼 수는 없을 것이다.

조선일보는 MBC의 보도 근거가 된 ‘언론사 보고 문건’의 출처가 정확하지 않다는 점에서 이석수 특별감찰관에 대한 ‘불법 사찰’ 가능성을 제기하고 있다. 조선일보는 28일 1면 <특별감찰관을 불법사찰했나>, 5면 <‘감찰관·기자 대화내용’ 담은 SNS, 누가 몰래 들여다봤을까> 제하 기사에서 MBC의 특별감찰관 대화 내용이 담긴 SNS 대화 내용 입수 경로를 크게 세 가지로 추측했다. 첫째는 수사기관이 법원에서 영장을 받아 합법적 감청 절차를 거쳤을 가능성인데 이는 내란죄 및 살인 강도 등 강력범죄로 제한돼 있으므로 가능성이 없다. 둘째는 이석우 특별감찰관 등 대화 당사자들이 제3자에게 대화 내용을 알려준 것을 MBC가 입수했을 가능성인데, 이 경우 MBC는 통신비밀보호법 위반에 해당할 수 있다. 셋째는 도청이나 해킹을 통해 SNS 내용을 불법을 빼냈을 가능성이다. 조선일보는 사실상 세 번째 가능성에 무게를 싣고 있다.

조선일보 18일자 5면

우병우 민정수석이 검찰, 경찰, 국정원 등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는 점을 고려할 때 이러한 추측은 충분히 해볼만한 것으로 보인다. 우병우 민정수석이 영향력을 발휘한 걸로 알려진 대표적 인사 중에는 최윤수 국가정보원 2차장의 사례가 수차례 거론된 바 있다. 최윤수 2차장은 그간 언론 보도에 의하면 대공과 국내 정보를 담당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SNS 대화내용이 어느 시점에 이뤄진 것인지에 따라 앞서 살펴본 ‘찌라시’에 대한 경찰 압수수색이 출처가 됐을 가능성도 있다.

MBC 보도가 사실일 경우 이석수 특별감찰관이 현행 법령을 어긴 것인지 여부는 논란이 될 가능성이 있어보인다. 조선일보는 이날 <감찰내용 누설됐다고? “이미 언론 보도됐거나 법조항에 나오는 내용”> 제하 기사에서 MBC가 법 위반이라고 주장하는 내용에 대해 “내용 대부분이 이미 언론 보도로 알려진 내용이거나 특별감찰관법에 특별감찰관의 업무로 정하고 있는 것이어서 처벌 대상에 해당하는지 의문”이라는 지방법원의 한 부장판사 발언을 인용했다. 그러나 조선일보의 기사 내용대로라고 하더라도 우병우 민정수석의 가족기업 문제가 특별감찰 대상이라는 걸 밝힌 점은 다소 논란이 확대될 수 있는 부분으로 보인다.

동아일보 18일자 기사

동아일보는 같은 날 <이석수 특별감찰관의 ‘부적절 행보’>라는 제하 기사에서 “이석수 특별감찰관이 우병우 대통령민정수석비서관에 대한 감찰 내용과 진행 과정을 구체적으로 유출했을 뿐 아니라 감찰 착수 당시부터 우 수석의 사퇴를 전제로 한 감찰을 진행해 공정성을 훼손한 정황이 드러났다”고 지적했다. 또, 동아일보는 이석수 특별감찰관이 우병우 민정수석의 사퇴를 여러 차례 언급했다는 점을 두고 “이런 발언들은 특별감찰관이 고위공직자의 비위 사실에 대한 조사라는 직무 범위를 넘어서 정치적인 판단까지 한 것으로 해석될 수 있다. 정치권에서는 이를 두고 ‘특별감찰관이 이 기회에 이름을 날려 야당 공천 받으려 하는지 의도가 의심스럽다’는 얘기도 나온다”고 까지 썼다.

중앙일보 18일자 기사

이석수 특별감찰관과 MBC 보도에 등장하는 모 언론의 부적절한(?) 관계에 대해서는 중앙일보 역시 나름의 암시를 하고 있다. 중앙일보는 이날 <이석수, 우병우 수석 감찰내용 누설했나 진실게임> 제하 기사에서 현직 경찰관이 우병우 민정수석이 타고 다니는 차량이 개인 소유인지 법인 소유인지 정보를 알려준 혐의로 모 경위와 기자가 형사입건 됐다고 보도했다. 이 경찰관은 우병우 수석 주소지 관할 경찰서인 강남경찰서에 근무했다고 한다. 이는 MBC 보도에서 이석수 특별감찰관이 “이건 뭐 다른 얘기지만 경찰에 자료 좀 달라고 하면 하늘 쳐다보고 딴소리 하고 그래. 경찰은 민정 눈치 보는 건데 그거 한 번 애들 시켜서 어떻게 돼가나 좀 찔러봐봐”라고 발언한 것을 연상시킨다.

이런 일련의 상황은 우병우 민정수석이 ‘청와대 문건 유출 사건’을 처리하면서 보여준 바 있는 ‘물타기’로 귀결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우병우 민정수석을 둘러싼 여러 의혹에 대한 문제가 특별감찰의 공정성과 특정 언론사와의 결탁으로 ‘프레임 전환’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이석수 특별감찰관의 정치적 공정성에 대해서는 따로 따져봐야 할 문제겠으나 먼저 짚지 않을 수 없는 것은 우병우 민정수석의 호위무사로 나선 MBC의 태도다.

MBC는 이날 시사 라디오프로그램 <신동호의 시선집중>에 ‘강성 친박’으로 분류되는 새누리당 이장우 의원을 출연시켜 이 문제에 대한 입장을 밝히게 했다. 이장우 의원은 “만약에 (특별감찰 내용이 유출)되었다면 중대한 사안이고 국기문란”이라면서 “신속한 조사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청와대와 친박계는 우병우 민정수석을 감싸고 MBC가 ‘자객’처럼 등장해 특정 언론을 겨누고 있는 것처럼 느껴지는 대목이다.

언론의 본령은 권력을 감시하고 견제하는 것이지 권력을 비호하는 것이 아니다. MBC가 만에 하나 권력을 비호하기 위한 의도로 불명확한 내용을 보도한 것이라면 비판의 대상이 되지 않을 수 없다. 이후 상황을 좀 더 면밀하게 지켜볼 필요가 있겠지만, 적어도 분명한 것은 우병우 민정수석을 둘러싼 의혹이 유야무야될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는 것이다. 언론이 이 과정에 들러리를 서는 건 용납될 수 없다는 걸 깨달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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