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SNS가 우리사회 이슈를 생산하고 있다. 대표적인 게 '여혐'이었다. 사실 여혐은 5천 년 전부터 있었던 개념이다. 여혐은 새로운 현상이 아니다. SNS라는 물적 조건의 변화가 사회를 변화시킨 것이다. 문제를 볼 때, 정치경제학적, 사회적 조건을 보는 게 중요하다. 예를 들면, 인권 개념이 나온 이유는 무엇일까. 해부학이 발달했기 때문이다. 인간의 몸을 해부해보니 다르지 않다는 걸 알게 된 사람들이 거기서 인권 개념의 아이디어를 가져온 거다”

지난 17일 오후 7시, 서울 중구 서울시 NPO지원센터 1층에서 민주언론시민연합 8월 회원의 날 기념 강연회 <정희진과 나누는 ‘젠더와 저널리즘’>이 열렸다. 이날 여성학 강사 정희진 씨가 강연자로 나서, 최근 SNS에서 벌어지는 ‘일베와 메갈리아 사태의 원인과 대책’에 대해 이야기했다.

남성중심적 시각의 기존 언론

정희진은 강연을 시작하며 언론과 젠더 논의에서 보편적으로 나오는 문제가 “언론이 남성중심적인 시각을 가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무지는 바로 권력’이라면서 언론이 가진 남성주의적 시각이 여성에 대한 잘못된 해석을 재생산한다고 비판했다.

정희진은 대표적인 예로, 1995년 이후 여성의 외도 사유로 이혼 소송청구가 높아진 사례를 들었다. 그는 “한 언론이 이 통계를 가지고, ‘여성이 혼외 관계를 많이 갖는다’는 기사를 냈는데, 과연 이 통계로 여성이 남성보다 혼외 관계를 많이 한다고 볼 수 있을까”라면서 “사실은 남성들이 바람을 폈을 땐 이혼소송으로 가지 않지만, 여성의 경우에는 이혼소송으로 가는 경우가 더 많다”고 밝혔다. 그는 언론이 사회적 현실과 남성중심주의적 문화를 반영하지 않은 채 ‘여성혐오’에 가까운 기사를 낸 일례라고 말했다.

민주언론시민연합 8월 회원의 날 기념 강연회 <정희진과 나누는 ‘젠더와 저널리즘’> (사진=미디어스)

매체의 발달과 언론 윤리

정희진은 최근 ‘메갈리아를 어떻게 생각하는지’와 ‘여성들이 혐오에 대해 혐오로 대응하는 것에 동의하냐’는 질문을 가장 많이 받았다고 한다. 그는 이런 문제들이 갑자기 불거진 이유로 ‘매체의 발달’를 지적했다.

정희진은 실제로 한 언론에 글을 기고하던 교수가 자신이 쓴 글에 대해 온라인 여론에 뭇매를 맞고, 하차한 사례를 거론했다. 그는 “과거에는 온라인을 가상세계로, 오프라인을 현실세계로 구분했다. 하지만 지금은 온라인과 오프라인 모두 ‘현실세계’”라면서 “이 두 현실세계가 싸워 한 현실이 다른 현실을 엎어버린다”이라고 설명했다.

정희진은 가상세계 즉, 온라인의 특성을 두 가지로 꼽았다. 하나는 온라인 여론이 ‘과잉재연’을 통해 확산되기 쉽다는 것이다. 그는 “개인이 5명 정도의 친구들과 3개에서 10개까지 아이디를 가지고, 한 사람을 비판하면 100명쯤 돼 보인다”고 말했다.

다른 하나는 한 개인이 온라인에서는 현실세계의 나와 다른 자아를 가지고 활동할 수 있다는 점이다. 그는 “현실세계에서 내가 아는 한 친구는 그런 애가 아닌데, 페이스북을 보면 완전히 다른 아이가 돼 있다”면서 “이런 친구들은 페이스북을 멋있고 세련되게 꾸며 자기 이상의 것을 표현하려고 한다”고 말했다.

정희진는 이와 같은 가상세계에 윤리적인 문제가 발생한다고 지적한다. 그는 “미디어는 메시지, 미디어는 인간의 확장”이란 언론학자 마샬 멕루한의 말을 거론하며 “SNS를 통해 개인이 하나의 매체를 가게 돼, 세계의 주체가 됐다. SNS에서 무슨 얘기를 떠들어도 표현의 자유란 명목으로 보호된다. 그런데 이게 사실은 표현의 자유가 아니라 표현의 권력”이라고 주장했다.

정희진은 현재 벌어지는 일련의 사태들이 사실은 ‘매체문제’인데 ‘젠더문제나 세대문제’로 이전됐다고 설명한다. 그는 “지금 세대는 일자리가 없다. 게다가 있는 일자리는 최고의 아이디를 갖췄거나 숙련된 사람만 원한다”면서 “지금 아이들은 노력해도 소용없다는 것을 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과거에는 전문가가 되기 위해선 공부를 해야 했다. 근데 지금은 자체를 실현하는 것이 어렵다보니, 청년 세대들이 SNS를 통해 전문가들이 노력하고 공부해서 생산한 것들을 쉽게 지적하고 거기서 권력감과 자아도취를 느낀다”고 언급했다.

정희진은 “이와 같은 이들은 SNS에 자기 노동력이 있다고 생각한다”면서 “이들은 그 노동력을 자아성취나 돈으로 보상받지 못하고, 타인을 망가뜨리는 방식으로 만족감을 얻으려 한다”고 말했다. 그는 “다시 말해 SNS은 장난감이고, 이것은 쾌락을 주는 장난감이다”고 지적했다.

정희진은 일베와 메갈리아 또한 ‘쾌락’의 관점으로 분석한다. 그는 “여자 일베는 어떤 면에서 앞서 말한 쾌락을 알게 된 것”이라며 “정치적 올바름에 앞서, 이들이 쾌락이나 쾌락의 형식에 완전히 매료된 상태에서 나왔기 때문에 이들이 진정한 페미니스트냐고 묻는 것은 ‘넌센스’”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여자 일베는 남자들이 이런 권력을 누리고 있다는 것을 느꼈을 것이고, 일베는 자신들만의 독점적 공간을 빼앗긴 것에 대한 분노가 치밀었을 것”이라면서 “문제는 젠더가 아니라 미디어라는 매체의 권력”이라고 말했다.

정희진은 “여혐(여성혐오)는 5천 년부터 있었던 개념”이라면서 “메갈리아 사태의 근본 원인은 SNS가 권력을 갖고 이를 쾌락적으로 이용하게 된 것”이라고 재차 강조했다. 그는 “Gender War(성전쟁)이라고 불릴 정도로 일이 커졌다. 앞으로는 온라인에 대한 철학적 성찰이 필요할 것”이라며 “SNS의 문제를 누가 어떻게 보고 개입해야 할까. 고민해봐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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