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FTA는 적어도 한국에서는 '죽은 개'다. 그럴 수밖에 없다. 유력한 대선 주자가운데 어느 누구도 이 문제를 꺼내 들기를 원하지 않는다. 이명박 후보, 정동영 후보 모두 기본적으로 찬성이다. 권영길 후보가 있지만 아직은 족탈불급이다. 그 사이에 문국현 후보가 있다.

신자유주의에 반대하면서 새로운 대안을 모색한다는 점에서는 반갑지만, 한미FTA에 대해서는 모호하다. '전략적 모호성'으로 얼마를 버틸지 모르나, 신자유주의와 한미FTA의 연관을 보지 못하는 인식상의 한계는 그저 안타까울 따름이다. 나름대로 '진보적인' 문 후보 지지자들도 애써 이점을 외면하면서 모르쇠로 가고 있다. 해서 지난 1년간 전국적 쟁점이었던 한미FTA는 대선을 코앞에 둔 지금 아무것도 아니다. 이는 김근태, 천정배의원등 한미FTA에 반대했던 대권 주자들이 일찌감치 사퇴하거나 탈락했을 때 어느 정도는 예측했던 것이다. 하지만 좀 과도하다. 이번 대선에서 한미FTA에 대해서는 아예 말하지 않기로 '침묵의 카르텔'이라도 맺었는지 묻고 싶다.

▲ 한국일보 10월16일자 16면.
‘한미FTA’ 일제히 침묵하는 대선 주자들

미국은 어떨까. 올해 말이 한국의 대선이라면, 내년 말에는 미국의 대선이 있다. 한나라당 이명박 후보처럼 미국에서는 민주당 힐러리 상원의원이 독주하고 있다. 그렇다면 미국 대선에서도 한미FTA가 '죽은 개'처럼 취급될까. 그렇지 않다. 다음 주 11월 5일에는 미-페루FTA에 대한 미 상하양원 표결이 있을 예정이다. 이를 앞두고 민주당 후보들간에 묘한 신경전이 읽힌다.

먼저 가장 선명한 입장을 밝힌 쪽은 에드워즈 상원의원이다. 명확한 반대이다. 특히 미-페루FTA에 포함된 '투자자-정부소송제'로 인해 페루의 실패한 사회보장 민영화의 개선이 불가능해졌음을 최대의 우려 사항으로 지적한다. 페루의 민간 사회보장기업에 대한 최대 투자자인 미국의 시티은행이 페루FTA 투자챕터와 금융서비스챕터에 근거해, 연금제도 민영화 철회시 페루 정부를 상대로 거액의 소송을 제기할 수 있음에 주목한다.

에드워즈와는 달리 오바마 의원은 노동, 환경조항의 개선이 이루어 졌음을 들어 미-페루 FTA에 찬성의사를 밝혔다. 반면 부동의 선두를 달리는 힐러리의 경우 아직 입장표명을 유보하고 있다. 현재 상하 양원을 장악하고 있는 다수당인 민주당의 당 지도부는 일단 찬성 입장을 보이고 있는 상황에서 다음 주 미 의회 표결결과에 비상한 관심이 쏠리고 있다.

미국의 한미FTA에 대한 관심과는 상당히 대조적

그렇다면 한미FTA는 어떨까. 상황이 자뭇 다르다. 마찬가지 에드워즈 상원의원의 경우 한미FTA에 대해서도 "현재 형태로"는 반대하겠다는 입장을 명확히 하고 있다. 문제는 역시 힐러리의 선택이다. 알려진 것처럼 힐러리는 특히 자동차조항을 들어 한미FTA '재협상'을 강력히 요구한 상태이고, 나아가 미국이 체결한 모든 FTA에 대한 5년 주기의 재평가를 주장한 바 있다.

여기에는 민주당의 전통적 고객인 미 최대노조인 미 노조총동맹 산별회의 (AFL-CIO)의 선택이 중요하다. 현재 부시정부가 체결한 4개의 FTA 즉 페루, 파나마, 콜롬비아, 한국 가운데 노조측은 페루와 파나마 FTA에 대해서는 중립적인 입장을 취한 반면, 한국과 콜롬비아 FTA에 대해서는 강한 반대 입장을 표명하고 있다. 특히 주요한 이유 가운데 하나는 한국과 콜롬비아가 노조활동가에게 '세상에서 가장 위험한 나라'라는 것이다. 나아가 미국의 '시민통상운동'(CTC: Citizen's Trade Campaign)을 비롯한 시민사회단체는 부시가 체결한 4개의 FTA 모두 실패한 모델에 불과한 NAFTA의 재판이라는 점에서 일찌감치 반대 운동에 나섰다.

그렇게 보자면 한미FTA에 대해서는 힐러리를 비롯한 대선주자 다수, 민주당 지도부, 노조, 시민사회단체 모두가 한결 같이 반대하고 있다. 이는 다음 주에 표결에 들어가는 미-페루FTA와는 달리, 한미FTA의 의회통과 가능성이 매우 낮음을 의미한다. 최소한 힐러리가 요구하는 의미에서의 '재협상', 더 정확히는 '재-재협상'이 없이는 아니 미 민주당이 OK할 때까지 재협상을 하지 않는 한 내년 미 대선까지 한미FTA의 미 의회통과는 어렵다.

그렇다면 아예 쟁점조차도 형성되지 않은 채, 정부 측의 황당하기 짝이 없는 일방적 광고만 난무하는 한국과 이른바 '국익'에 대한 명확한 관점 하에 찬반 토론이 있는 미국을 비교해 어느 쪽이 바람직한지는 불문가지이다. 다시 한 번 확인하지만 한미FTA는 그 구체적 협상내용에 있어서도 실패한 퍼주기 협상이었다. 미 민주당이 시비 거는 것은 미국 자동차의 한국내 점유율과 자국의 수입관세 2.5% 철폐를 연계하자는 안을 부시의 무역대표부가 관철하지 못한 점이다. 다시 말해 챙길 것 다 챙긴 처지에 남은 이 한 개를 시비로 삼아 한미FTA에서 더 긁어내고자 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렇게 열심(?)인 미 민주당과 비교해 한미FTA라는 초대형 프로젝트에 접근하는 우리 대선주자의 태도는 너무나 대조적이다. 해서 어쩌겠는가. 이번 대선에서는 힐러리를 찍자!?.

젊은 시절 운동권 주변을 '대충' 서성댄 기억이 있는데, 아직도 손을 못 씻었다. 태어나 한 일이라고는 읽기, 쓰기가 다이고, 여태 모자라 아직도 계속한다. 그래서인지 학문적 오지랖이 꽤나 넓다. 주특기가 정치사상사이고, 누가 보든 말든 통일문제, 한미관계, 국제통상도 오래전부터 계속해오고 있다. 스크린쿼터 때문에 한 10년 가까이 영화인들과 손발을 맞추어 왔고, 한미FTA 때문에 너무 자주 TV에 등장했다고 핀잔도 많이 먹었다. "불신(不信)만이 살 길이다"를 모토로, 불신의 정치철학을 세워보는 프로젝트를 혼자 추진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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