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션계는 냉정합니다. 진보한 디자인은 박수를 받지만, 진부한 디자인은 외면당합니다.” 슈퍼모델 출신의 <프로젝트 런웨이 코리아>(이하, <프런코>) 진행자인 이소라의 부정확한 발음으로 화제가 되었던 코멘트도 슬슬 귀에 익어갈 무렵인데. 끝난다. 누가 <프런코>의 첫 번째 우승자가 될지 이제 곧 공개를 앞두고 있다.

<프런코>는 케이블 방송 온스타일에서 야심차게 준비한 리얼 서바이벌 프로그램. 2004년 미국 브라보 채널에서 시작한 <프로젝트 런웨이>의 포맷을 정식으로 구매하고 지난 2월 7일 방송을 시작하였다. 디자이너에게 <프런코>는 꿈의 무대다. 도전자들은 우승을 위해 매주 미션을 수행한다. 그리고 ‘꿈의 무대’인 런웨이에서 평가를 받는다. 디자이너는 물론 패션계 관련자에게 혹독한 평가도 받아야 하며, 때때로 셀러브리티(celebrity)와 신경전이 벌어지기도 한다. 결국 매주 한 명씩 탈락하는 ‘우승’을 향한 ‘리얼’ ‘서바이벌’이다. <프로젝트 런웨이> 모습 그대로다.

▲ '프로젝트 런웨이 코리아' 공식 블로그
반면 시청자들에게 <프런코>는 하나의 쇼이고, 오락프로그램이다. 때때로 디자인과 패션에 대해 품평을 하고, 격론을 하기도 하지만, 다분히 ‘쇼’이기 때문에 시청자들은 민감하게 반응한다. 패션 아이템을 소개하고, 패션계 동향을 풀이하는 ‘인포메이션’보다는 스타가 입은 드레스를 평가하고, 경쟁에서 누가 승리하게 될지 지켜보는 긴장감을 즐긴다.

그래서 어렵다. ‘리얼’이면서 동시에 ‘패션’까지 섭렵해야 하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면 의미는 있으나 시청자들에게 ‘쇼’로 즐기기에 무거운 과제다. 그러면 누가 <프런코> 따위의 프로그램을 보겠는가. 서울패션위크 혹은 패션쇼 현장에 차분히 앉아 런웨이 위의 모델들과 디자이너들의 옷을 감상하는 편이 유익할지도 모르는데. 따라서 ‘방송’이라는 포맷 속에서 경쟁하는 디자이너, 그리고 그들의 패션을 품평할 수 있는 재미까지가 현재의 <프런코>의 의미다.

인기를 검증받은 프로그램 <프로젝트 런웨이>의 한국판이라는 점에서 실패와 성공의 경계는 아슬아슬하였다. 일단 시작은 순조로웠다. 아니 생각보다 대박이었다. 토요일에서 일요일로 넘어가는 밤 12시 본방임에도 불구하고 2%가 넘는 시청률로 방송계를 강타했다. 고작 2%? 케이블업계에서 시청률 2%는 지상파의 30%와 맞먹는다고 하니, 만만하게 볼 상대는 아니다. 첫 방송에서 1.48%의 평균 시청률로 시작하여, 8회에는 2.28%, 그리고 9회에는 2.07%로 집계, <프런코>의 시청률은 그 자체로 화젯거리를 만들었다.

캐릭터의 완성, 이거 짜고 치는 거 아냐?

▲ '프로젝트 런웨이 코리아' 공식 홈페이지
출연진들에 대한 관심과 호응도 빼놓을 수 없는 <프런코>의 묘미. 지난해 7월 공개모집에 참여한 지원자는 500여명, 세 번의 오디션에 걸쳐 TV 프로그램 출연의 기회를 얻은 14명은 계한희, 유상욱, 이은정, 최혜정, 이우경, 이명신, 남용섭, 정재웅, 이승희, 김홍범, 소예인, 경초롱, 김재민, 신재은이다. 22살부터 42살까지, 출연자의 연령층의 폭도 생각보다 넓었고, 해외파에서 국내파를 아우르는 출연자들의 경력도 눈여겨 볼 만한 무엇이었다. 더욱이 14명의 참가자들은 뚜렷한 개성을 품고 있었고, 개성은 방송을 통해 곧바로 ‘캐릭터’로 드러났다.

첫 탈락자로 결정된 ‘계한희’. 스타일리시한 옷차림과 한국어가 조금은 어색했던 ‘계한희’는 최연소 참가자. 유학파다. 외국에서 태어나 외국에서 자랐다고 하니 유학파보다는 해외파라고 하는 것이 나을지도. 그녀는 차가운 첫인상을 풍겼고, 직설적인 화법의 소유자였다. 결국 탈락자로 결정되자 그녀는 “쇼일 뿐이고, 몰라보시는 저 분들 실수죠”라며 ‘리얼’서바이벌 프로그램 <프런코>에 일침을 가했다.

유상욱은 어떠한가. 이걸 부드럽다고 표현하는 것이 정확할지 모르겠지만, 그는 콧소리가 가득 섞인 말투와 아기자기한 제스처로 주목을 받았다. 그리고 그는 탈락이 결정된 이후 진행된 인터뷰에서는 ‘눈물’까지 보였다.

방송에 부적격한 말들을 쏟아내시는지, 유독 방송에서 “삐~” 처리가 된 부분이 많았던 김재민. 국내파로 ‘동대문 원단 시장 쯤이야’ 남들보다 튀는 자신감으로 2회 우승을 거머쥔 성격 강한 이명신. 방송에서는 최혜정을 둘러싼 우글우글 괴소문의 진원지처럼 보였던 그녀는 네티즌들의 호불호, 명확한 지지를 받았지만, 결국 탈락하고 말았다. ‘퉁이아범’이라 불리며 ‘트랜스포메이션(transformation)’의 대중화를 가져온 정재웅도 빼놓을 수 없는 <프런코>의 캐릭터다.

출연자들의 캐릭터가 점차 자리를 잡아가고, 계한희의 첫 번째 탈락 소식에 어안이 벙벙했던 시청자들은 ‘리얼’을 의심했다. 4회 최혜정을 둘러싼 소문들로 의상실의 분위기가 음흉해지고, 결국 5회 최혜정은 다른 참가자들의 속닥거림에 분노하며 가방을 싸는 해프닝도 발생하였다. 뒤를 봐주는 누군가가 있다. 곧 ‘백’이 있다는 최혜정의 루머는 ‘거짓’임이 밝혀졌지만, 네티즌들 사이에서는 그녀가 아닌 다른 참가자들의 ‘백’을 의심하기도 하였다. ‘리얼’이라는 타이틀이 무색할 만큼 소문들이 나돌았고, 팬카페를 둘러싸고 루머는 여전히 진행 중이다.

손발 오그라지는 쇼의 양념, 이소라 그리고 간호섭

▲ '프로젝트 런웨이 코리아' 심사위원단 ⓒ'프로젝트 런웨이 코리아' 공식 홈페이지
<프런코>의 도전자가 ‘꿈의 무대’의 주인공이라면, 이소라와 간호섭은 <프런코>가 발굴한 인물이다. 도전자들이 짜고 치는 것은 ‘리얼’에서 용납할 수 없지만, 이소라와 간호섭은 ‘쇼’의 양념이기 때문에 다분히 ‘연출’한 흔적이 역력하다. 이만큼도 이해할 수 없다면, 다큐멘터리를 봐야할지도 모른다.

그렇게 이소라는 <프로젝트 런웨이> 하이디 클룸의 역을 맡았고, 간호섭은 팀건의 역을 소화해냈다. 번역된 문장을 책을 읽듯이 읽고 있다, 탈락자들과 포옹을 나누는 그녀의 몸짓이 어색하다는 평가 속에서도 꿋꿋하게 런웨이의 주인장 노릇을 한 이소라. 오랜 공백 기간을 깨고 나온 이소라는 하이디 클룸은 분명 아니었지만, <프런코>를 어떻게든 대표하는 인물이 되었다. 손발 오그라드는 “런웨이를 떠나셔도 좋습니다”라는 그녀의 말은 웃음거리, 수다거리를 제공하기에 충분하였고, 그녀 덕분에 엄정화도 <프런코>에서 볼 수 있었다.

간호섭. 나긋나긋한 말투 속에 숨겨진 ‘4차원’ 코드. 그는 <프로젝트 런웨이>에 팀건이 있다면 <프런코>에는 간호섭이 있다라고 말할 만큼의 캐릭터 강한 멘토로 자리 잡았다. “타잔 부인” “지구용사 백터맨” “신발주머니” “당근주스” “떡볶이” “아프리카 호떡” 등 도전자들의 의상에 대한 4차원적 평가는 쇼의 재미를 더했고, 간호섭 교수는 심지어 지상파에 호출을 받아 SBS <육감왕>에 출연하기도 했다.

‘리얼’과 ‘쇼’의 아슬아슬한 시소게임

드디어 공개된다. 이미 팬카페를 통해 스포일러가 공개되고, 서울패션위크에 등장한 최종 우승 후보자 3명의 컬렉션의 사진이 언론매체를 통해 알려지면서 시청자들은 방송 이전부터 시끄럽다. 표절과 루머가 여전히 불씨처럼 남아 있다. ‘리얼’에 대한 의심이고, 공격이다. <프로젝트 런웨이>와 비교대상이 되어 공격이 더욱 거세기도 하다. 부둥켜안고 우는 도전자들의 탈락 현장과 ‘언니’ ‘오빠’하며 ‘경쟁’보다는 ‘관계’에 주목한 이야기 축이 불편하다는 이들도 있다.

그래서 어쩌면 모든 것은 소문이고, 구설수일지도 모른다. 때때로 ‘리얼’이기보다는 ‘쇼’에 가까운 연출과 구성일지도 모른다. 14명의 참가자들에게 요구되는 것은 디자이너의 재능과 더불어 ‘쇼’에 어울리는 ‘끼’ 혹은 ‘개성’일지도 모른다. 그래도 무플보다는 악플이 낫다고, 어찌되었든 입소문을 타야 하는 것이 ‘냉정한 방송계’의 진정한 ‘리얼’일지도 모른다.

‘리얼’과 ‘쇼’의 시소게임의 본격적인 시작 <프런코>. 빅토리아 홍, 질 벤시몬, 엄정화, 이승연 등이 <프런코>를 위해 심사위원단으로 참여한 것은 ‘쇼’이지만, 그/녀들의 평가는 ‘리얼’했는가? 14명의 도전자가 런웨이에 서고, 짧은 시간에 옷을 만들어야 하는 것은 ‘쇼’라고 할 수 있지만, 그/녀들의 옷과 디자인은 ‘리얼’한 무엇이었는가? <프런코>의 마지막 방송을 남기고 뒷북치는 이야기가 아니다. 시즌 2를 기대하면서 <프런코>에게 보내는 응원의 메시지다. 왜냐고? ‘방송계는 냉정하니까’. ‘진부한 방송은 외면당하니까’. ‘진보한 방송은 박수를 받으니까’.

참고로, <프로젝트 런웨 코리아> 최종회를 앞두고 온스타일에서는 ‘프런코 DAY 특집’을 준비하였다. 18일 오후 2시부터 장장 10시간이다. 1화부터 9화까지 방송이 끝나면 드디어 밤 12시 대망의 최종회가 펼쳐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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