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평’이란 무엇인가? 이 질문은 ‘철학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과 닮았다. 과거 ‘회사원 철학자’로 유명했던 강유원 씨는 철학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플라톤을 인용하며 “대상을 지적으로 탁월하게 다루는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같은 원리로 비평이 뭐냐는 물음에도 비슷한 대답을 돌려줄 수 있을 것 같다.

만일 정치를 비평한다고 한다면 우리는 정치란 무엇인지, 대상이 되는 사건 내에서 정치는 무엇을 했는지, 정치인이 선택한 수의 효용성은 어느 정도나 되는지를 따지고 해설해야 할 것이다. 문학을 비평한다고 하면 작가가 무슨 생각을 갖고 이런 글을 쓴 것인지, 그런 생각을 만든 사회적 조건은 무엇인지, 이런 글이 잘 팔리는 이유는 무엇인지 등등을 따지는 과정이 될 거다. 물론 비평은 이 이상의 논점들까지 전부 다룰 수 있다. 그래서 훌륭한 비평가들은 글을 읽는 사람으로 하여금 훨씬 더 고차원적인 사고를 하도록 만든다. 좋은 비평은 대상을 지적으로 탁월하게 다룸으로써 나 자신과 우리 사회에 대한 인식의 넓이와 깊이를 확대한다.

오늘날 가장 지독한 지경에 빠져있는 건 영화 비평인 것 같다. 오늘날의 인터넷에 범람하는 대다수의 영화 비평들은 사실상 ‘별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별점’은 영화를 상품으로 만든다. 내가 만원 안팎의 돈을 주고 이 상품을 살만한 것인지를 따지는 데에는 기가 막히게 효과적이다. 영화를 상품으로 다루는 ‘나’에게 내러티브가 어쨌다느니 쇼트의 연결이 어쨌느니 하는 얘기는 다 지적 허영일 뿐이다. ‘나’는 비평가의 욕망을 지적 허영을 대중에게 전시하는 걸로 이름값을 높여 돈을 벌자는 것으로 간주한다. 따라서 비평의 실질적인 내용은 됐고 비평가가 이 영화를 ‘까’는 것인지 ‘쉴드’치는 것인지를 따지는 게 훨씬 중요하다.

게임 비평이라는 건 사실 거의 찾아볼 수 없다시피 하지만, 영화 비평의 범주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보통은 요소를 나눠 점수를 매긴다. 5점 만점에 스토리는 4점, 그래픽은 3점, 게임성도 3점, 최적화 정도는 5점…. 게임 비평가는 이렇게 매긴 점수를 종합해서 자신 있게 말한다. “이 게임은 플레이 타임은 짧지만 충분히 제 값을 하며 한 번쯤 즐겨볼만한 가치가 분명히 있습니다!”

그러나 영화나 게임 역시 ‘창작물’이란 걸 다시 상기할 필요가 있다. 창작물은 말 그대로 어떤 사람이 자신의 의식을 갖고 만든 결과물이란 뜻이다. 여기서 창작자의 의식은 사회적으로 구성된다. 그래서 창작물은 그게 아무리 ‘망작’의 범주에 드는 것이라 할지라도 사회의 어떤 단면을 반영한 표현들을 담고 있기 마련이다. 이 표현들에 주목하면서 분석하고 해설하며 통찰을 얻도록 하는 게 좋은 비평의 조건이다.

그렇다면 좋은 ‘게임 비평’이란 어떤 것일까? 앞에서 되짚어본 것과 같이 비평이란 대상을 지적으로 탁월하게 다루는 작업이다. 게임을 지적으로 탁월하게 다루려면 게임 속으로 완전히 빠져 들었다가 다시 세계와의 접점을 찾아 빠져 나와야 한다. 우리가 게임 ‘리뷰’를 찾아보면서 ‘별점’에 집착하는 이유는 게임 속으로 들어간 이후 다시 세계로 나올 생각이 없기 때문이다. 반대로 보통 세계에 대한 분석에 매진하는 사람들은 게임이라는 창작물에 별 관심이 없다. 게임이 오늘날 특히 한국의 문화산업에서 일종의 ‘잔여물’처럼 취급되고 있다는 게 이런 상황을 방증한다.

그러나 사실 게임은 세계와 가장 긴밀하게 맞닿아 있는 매체 중 하나다. 문학, 미술, 음악 등 전통적인 종류의 것은 물론 영화와 같은 매체들 모두 감각기관의 한계로부터 벗어나기 어렵고 수용자와의 관계가 일방적으로 구성된다는 공통된 특성을 갖는다. 그러나 게임은 양방향적 체계를 통한 상호작용을 기본으로 현실을 모사하는 데 중점을 두고 있다. VR(Virtual Reality) 혹은 AR(Augmented Reality)과 같은 기술의 발달은 게임과 현실과의 접점을 거의 무한대로 늘리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다른 여타의 매체보다 비평을 통한 인식과 이해의 확대 가능성이 더 큰 게 사실이다.

이렇게 보면 ‘제대로 된’ 게임 비평을 하기는 참 어려운 일인 것 같다. 왜냐하면 2시간 내외로 대상에 대한 분석을 끝낼 수 있는 영화와는 달리 게임은 보통 최소 8시간에서 최대 몇 십 시간에 이르는 과정을 거쳐야 그 정체를 완전히 파악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훌륭한 게임 비평가는 게임을 진실로 좋아해야 하고, 게임 그 자체와 그야말로 혼연일체가 될 수 있는 사람이어야 한다.

즉, 좋은 비평가는 세계 그 자체에 대한 지적 통찰력을 갖추고 있어야 하고, 그것으로 세상에 대한 인식과 이해의 폭을 넓히려는 욕망을 갖고 있어야 한다. 즉, 앞에서 제시한 조건과 엮어보면 좋은 게임 비평가는 ‘오타쿠’이면서 동시에 ‘인문학자’의 영혼을 갖고 있어야 한다. 경험적으로 우리는 이런 사람이 흔치 않다는 걸 잘 안다.

<게임, 세상을 보는 또 하나의 창> 이경혁, 로고폴리스, 2016.

<게임, 세상을 보는 또 하나의 창>은 이런 흔치 않은 사람이 쓴 책이다. 저자 이경혁은 스스로 ‘게이머’를 자처한다. 책에서 다루는 게임의 종류를 보면 그야말로 전방위적이다. <룸>과 <페르소나4>, <데모크라시3>가 하나의 책에 같이 나온다는 건 굉장한 일이다. ‘오타쿠’의 영혼을 가진 게 아니면 이런 포트폴리오(?)는 구성할 수가 없다. 그러므로 이경혁은 확실한 오타쿠다.

그런데 책의 목차를 다시 보면 이 사람이 단순한 ‘오타쿠’에만 그치지 않는다는 걸 알 수 있다. 게임을 그야말로 다각적 관점에서 비평한다. 한국에서 게임의 위치와 게이머들의 문화를 먼저 다루고 게임에 의해 반영된 세계, 게임 속에서 묘사되는 인간의 일면들, 매체로서 게임 고유의 특성을 차례로 돌아본다. 이런 욕망은 굳이 앞의 표현으로 보자면 ‘인문학자’의 것이다. 이렇게 보면 이경혁은 게임 비평가로서 필요한 자질을 두루 갖춘 사람이 분명하다.

실제로 책을 읽어보면 게임 비평가로서 그의 눈은 날카롭다. GTA(Grand Theft Auto) 시리즈에서 모사하는 도시의 핵심을 도로, 건물, 사람으로 잡고 현대문명에 대한 통찰과 게임 특유의 매체적 문법을 동시에 조망하는 대목은 이 책에서 보여주는 어떤 통합적 시각의 백미 중 하나로 꼽을 수 있다.

여기서 책의 내용을 다 설명하면 독자들의 입장에선 사서 볼 이유가 없어질 테니 더 쓰고 싶어도 길게 쓸 수가 없다. 책의 두께에 비해 가격도 저렴해 평소 ‘연쇄할인마’에 돈을 쓰느라 도서 구매에 소극적인 사람들에게도 추천할만하다. 굳이 점수를 매기자면 5점 만점에 내용의 깊이 5점, 소재의 다양성 4점, 디자인 3.5점, 저자의 몸무게 5점이다. 한번 쯤 사볼만한 책 정도가 아니라 게이머라면 누구나 책장에 갖춰놔야 할 교양서가 되어야 하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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