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루하고, 뻐근하다. 화창하다 못해 잔인하기까지 한 4월의 주말에도 TV는 쉴 새 없다. 그리고 귀찮고, 돈 없고, 시간 없는 다양한 이유들로 주말 TV 앞에 앉아 있어야 하는 우리 무리들의 ‘리모컨질’은 여전히 바쁘다. 무리들이여! 이번 주말에는 KBS에 채널을 고정해보길 권한다.

KBS 봄개편이 코앞이다. 다양한 프로그램이 신설되고, 몇몇 프로그램은 사라진다. 개편의 묘미는 새로움에 대한 흥분도 있겠지만, 사라지는 무엇을 추억해야 하는 씁쓸함에서 제 맛이다. 동물원을 방불케 한 <주주클럽>이 근 7년 만에 문을 닫는다. 4주후의 조정 기간도 없이 <부부클리닉 사랑과 전쟁>은 9년 6개월, 279회를 끝으로 막을 내린다. ‘몇 대 몇’을 외치던 허참 아저씨도 <가족오락관>을 통해 이제는 볼 수 없다. 무려 26년 방송이라는 기록을 남긴 채. 이런 ‘장수’프로그램에게 명함을 내밀기도 민망한 경력의 프로그램도 봄개편에서 사라진다. ‘장동건’을 첫 번째 게스트로 박중훈의 파워를 과시했던 <박중훈쇼 대한민국 일요일밤>이 4개월, 17회로 마침표를 찍는다. 유희열에게 바통을 넘기는 <이하나의 페퍼민트>는 지난 해 11월 21일 방송을 시작하여, 5개월 21회로 끝을 맺는다. 음악프로그램의 진행자 ‘이하나’는 이제 볼 수 없다.

프로그램의 질적 평가와 비평은 잠시 접어두자. KBS를 떠올리게 하는 ‘장수’프로그램부터, 숱한 논란 속에서 시작한 ‘순간’과도 같이 사라져버리는 프로그램까지, 주말 TV를 놓치지 말자.

“4주 후에 뵙겠습니다” : 부부클리닉 사랑과 전쟁(17일, 금 23:05~24:15, 2TV)

▲ '부부클리닉 사랑과 전쟁' 홈페이지 캡처
떼쓰는 할아버지 ‘노구’보다, 구구절절 사연 깊은 딸들을 두고 있는 ‘민현주’ 사장보다, 차분하고 절제있는 ‘신구’와 ‘정애리’를 만날 수 있는 <부부클리닉 사랑과 전쟁>. “4주 후에 뵙겠습니다”라는 유행어를 만들기도 한 이 프로그램은 1999년 10월 첫 전파를 탔다. 스타가 없는 인기프로그램으로 자리매김, 동시간대 시청률 1위를 고수하고 있다. 평균 시청률은 15~20% 가까이라고 하니 늦은 시간 금요일임을 감안하면 홈런인 셈이다. 덕분에 지난해에는 <사랑과 전쟁 - 열두 번째 남자>라는 제목의 영화로 만들어지기도 하였다. 흥행성적은? 그냥 덮자.

허나 최근 광고 판매가 부진하게 되었고, 결국 9년 6개월이라는 시간이 무색하게 <부부클리닉 사랑과 전쟁>은 폐지의 수순을 밟고 말았다. 선정성과 자극성은 불륜, 고부간의 갈등, 폭행, 육아 문제, 집안 갈등 등의 소재에서 드러났고, 흘깃흘깃 보이는 출연자들의 속살은 양념과 같았다. 하여간 실화를 바탕으로 한 재연 드라마는 시청률에서는 성공을 보였지만, 비평계의 반응은 냉담했다. 제작진은 프로그램이 결혼 생활에 반면교사가 되기를 희망했지만, 시청자들은 ‘막장’ 코드에 반응하였다.

비슷한 소재가 주인공의 이름과 상황만 바뀐 채 리플레이 되던 <부부클리닉 사랑과 전쟁>. 그럼에도 불구하고 끝난다니 아쉽다. 신구의 “4주 후에 뵙겠습니다”를 더 이상 들을 수 없고, 하나같이 ‘바람’만 피워대던 오빠들도, 언니들도 이제는 볼 수 없기 때문이다.

4월 17일, 늦은 금요일 밤 11시5분부터다. <내 남편은 슈퍼맨>이 끝이다. 영광의 마지막 회를 장식할 <내 남편은 슈퍼맨>은 착한 남자와 결혼한 연화에 대한 이야기다. “여차저차 스토리는 전개되고, 어느 날 연화에게 날벼락이 떨어지는데…” 궁금한 이들은 닥본사. 뭐 신경민 앵커만큼은 아니지만 “4주 후에 뵙겠습니다”를 외치며 부부생활에 대해 조언을 한 신구 아저씨의 클로징 코멘트까지 듣는다면 금상첨화다.

고작 5개월에 아름다웠던 : 이하나의 페퍼민트(17일, 금 24:15~24:45, 2TV)

▲ '이하나의 페퍼민트' 홈페이지 캡처
윤도현에게 바통을 넘겨받은 이하나, 이제 유희열에게 그 바통을 넘긴다. 이미 세상 모든 유희열 팬들은 4월 21일 <유희열의 스케치북> 첫 녹화방송을 고대하고 있다는데.

지난해 11월 KBS 가을개편은 정치적 색깔을 잔뜩 머금고 이루어졌다. 단연 돋보였던 인물은 윤도현. 7년간 <윤도현의 러브레터>의 진행자였던, 그이의 이름을 타이틀에 걸었던 음악프로그램이 폐지된다는 소식이 알려지면서, 그리고 그게 눈앞에 사실로 드러나면서 말이다. 촛불정국과 언론계의 크고 작은 악재, KBS 사장 교체와 이에 반대했던 ‘사원행동’ 소속 직원들의 보복성 징계. ‘왜 윤도현이야?’ 윤도현 자신도 놀랄 정도로 급히 이루어진 <윤도현의 러브레터> 폐지는 결국 촛불집회 참가 등 정치적 의혹으로 풀이된 채 <이하나의 페퍼민트>로 바뀌었다. 음악인이 아닌 배우의 진행에 많은 이들이 우려했고, <윤도현의 러브레터> 폐지 결정에 대한, 그 자체만으로도 <이하나의 페퍼민트>는 신설부터 따가운 시선을 감내해야 했다.

진행이 어색하다는 평가 속에서도 시청자들은 음악프로그램으로 <이하나의 페퍼민트>를 지켜봤지만, 결국 혹독한 겨울을 지나 봄꽃이 무르익을 즈음, 그녀는 피겨스케이팅 코치 ‘이수인’으로, K본부에서 M본부로 이사갈 채비를 하고 있다. 누군가는 ‘팽’ 당했다고 한다. 누군가는 윤도현과 함께 한국대중음악상 MC를 본 것이 화근이라고도 이야기한다. 배경이 무엇이 되었건, 그녀는 결국 마지막 방송 녹화 당시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고작 5개월에? 그래도 무대 위에서 열정을 뿜어낸 그녀는 충분히 아름다웠다.

마지막 방송에서는 양희은, 에픽하이, 아마도 이자람 밴드, 동물원, 장기하와 얼굴들, 요조, 짙은, 국카스텐, 검정치마, 킹스톤루디스카를 볼 수 있다. 날이면 날마다 오는 기회는 아니다. 마지막이어서일까, 출연하는 가수들도 참으로 흐뭇하다. 참, 동방신기 팬들에게도 적극 권한다. 에픽하이가 동방신기의 <주문-미로틱>을 불렀단다. 18일 0시15분을, 2TV 잊지 마시라.

“몇 대 몇” : 가족오락관(18일, 토 17:10~18:00, 1TV)

▲ '가족오락관' 홈페이지 캡처
오유경, 정소녀, 김혜영, 김자영, 김영미, 최영미, 이유리, 전혜진, 장서희, 오현정, 손미나, 변우영, 윤지영, 박주아, 박사임, 이정민, 김새롬, 김보민, 이선영. 낯익은 이름들이 보이는가. 그녀들의 공통점이 무엇인지 아는가. 이 모두는 허참 아저씨의 파트너였다. 가수 ‘주’하고 ‘이현지’가 안 보인다고? 여긴 Mnet이 아니라 KBS <가족오락관>이란 사실을 잊지 마라.

26년간 ‘몇 대 몇’을 외친 허참. 폭탄이 터지기 전에 퀴즈를 맞히고, 시끄러운 음악이 나오는 큰 모형 귀를 달고는 옆 사람에게 정확하게 단어를 전달해야 한다. 스피드 퀴즈 문제의 정답을 알아내기도 바쁜데, 지폐까지 세라고 한다. 불투명 상자 속의 무엇인가를 손의 촉감으로 재빨리 알아내야 한다. 주부 방청객들과 함께 노래를 완성시켜야 하기도 한다. 볼과 볼 사이에 무엇을 넣고 빠르게 날라야 하기도 한다. 그러고 나면 허참은 외친다. “몇 대 몇?”

지금은 버라이어티 예능 프로그램에 시청률과 스타 모두를 넘겨버려야 했지만, 그 옛날 <가족오락관>은 TV 오락프로그램의 대명사였다. 가수 서수남은 자신의 블로그(blog.naver.com/suhsoonam)에 <가족오락관> 마지막 방송 후기를 포스팅했다. “그동안 출연한 스타만도 남진, 조용필, 김혜수, 유재석, 이효리, 월드스타 비에 이르기까지 1만 여명에 이르고 허참씨와 함께한 여자 MC만도 모두 21명이나 되구요. 프로그램의 활력소인 주부방청객 숫자만도 11만명에 이른답니다. 서수남은 유난히도 가족오락관과 인연이 많아 최다 출연자의 한 사람으로 마지막 녹화에 참여하면서 감회가 남달랐습니다. 그저 아쉽고 섭섭할 뿐입니다.” 굳이 그의 글이 아니더라도 <가족오락관>은 무수한 기록을 쏟아냈다. 하긴 26년이라는 시간은 그저 흐르지 않으니, 얼마나 많은 기억을, 그리고 기록을 품고 있을까. 그래서 1237회라는 숫자는 <가족오락관>의 모든 것이다.

허참 아저씨는 마지막 ‘몇 대 몇’을 외칠 채비를 하고 있다. 오랜만에 아니면 처음이라도 최장수 유행어 ‘몇 대 몇’을 들어보자. 18일 오후 5시10분이다.

‘오랑이’ 안녕 : 주주클럽(19일, 일 11:45~12:40, 2TV)

▲ '주주클럽' 홈페이지 캡처
주인공은 강아지, 돼지, 고양이, 곰, 백호, 당나귀, 고래, 원숭이, 오랑우탄, 라쿤, 구렁이, 염소다. 분명히 빠진 주인공들이 있을 텐데 그들에게는 심심찮은 양해를 구한다. 2001년 첫 방송을 시작으로 수많은 동물들을 주인공으로 출연시키며 일요일 오전시간을 시끄럽게 했던 <주주클럽>도 이제 끝이다.

동물을 오락화하고 상품화한다는 비판과 인위적인 연출, 즉 방송에 필요한 화면을 위한 동물 학대 등에 대한 문제점을 지적받기도 한 동물프로그램의 대표 프로그램인 <주주클럽>. 하지만 때때로 사람과 동물 사이의 교감과 유대를 그려 박수를 받기도 하였다. 하지만 폐지 이유는 명확하게 발표된 것이 없다. 일단은 봄개편을 두고 더욱 의미 있는 프로그램이 <주주클럽>의 뒤를 이었다고 맘 편하게 생각해 보자.

동물을 사랑합니까. 동물과의 교감을 원합니까. 그럼 일단 KBS를 떠나는 강아지와 돼지, 고양이, 곰, 백호, 당나귀, 고래, 원숭이, 오랑우탄, 라쿤, 구렁이, 염소와 마지막 인사를 나누자. 19일 오전 11시45분에. 행여라도 그들과의 이별이 아쉬워도 너무 슬퍼는 말라. 일요일 오전 9시30분 SBS의 <TV 동물농장>은 여전히 살아있다.

장동건은 어디서 보지? : 박중훈쇼 대한민국 일요일밤(19일, 일 23:20~24:30, 2TV)

▲ '박중훈쇼 대한민국 일요일밤' 홈페이지 캡처
시청률 한자리수. 흥행 배우 박중훈에게 TV는 처참한 숫자를 안겨줬다. <온에어>의 인기 스타 오승아(김하늘 분)도 시청률 4%라는 우울한 성적표를 받아야 했다. 장동건을 시작으로 정우성, 김태희, 엄정화, 송윤아, 김하늘 등 스타 배우들이 <박중훈쇼>를 찾았지만, 이상하리 만큼 그/녀들은 시청자들에게 관심 밖이었다. 월요일을 맞이해야 하는 강박이 절정에 오르는 일요일 밤 11시~12시 사이에 방송을 했기 때문일까. 하여간 ‘박중훈’이라는 스타를 내세워, 시사교양토크쇼를 선보이겠다는 제작진과 박중훈의 선언은 4개월 만에 문을 닫고 말았다.

지루하고, 평면적이며 질문조차 형편없는 토크쇼. ‘talk'도 없고, ’show'도 없는 그런 토크쇼라는 평가가 쏟아져 나왔다. 영화 홍보 프로그램으로 전락한 것은 아니냐는 비판도 받았다. 결국 제작진은 버라이어티 형식을 빌려 <박중훈쇼>의 회생을 꾀했지만, 진행자인 박중훈은 단호하게 거절하였다. 그리고 결론은 폐지.

초호화 게스트도 빠져나갈 수 없는 시청률의 굴레. 이는 비단 방송의 상업성으로 이야기할 문제만은 아니다. TV 토크쇼에 대한 구성과 기획에 대한 질문을 던지고 있다. 쇼는, 그의 쇼는 배우 이미연과 가수 김장훈을 마지막으로 문을 닫는다.

일요일의 늦은 밤, 월요일에 대한 강박이 최절정에 달해 불안한 이들에게 추천한다. <박중훈쇼>를 시청하면 조금이라도 맘의 안정을 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 워낙 평면적이고 정적인 프로그램이니까 말이다. ‘그렇담 장동건은 TV에서 언제 보지?’라고 생각하시는 분들에게도 권하고 싶다. 게스트를 섭외해 온 박중훈의 노력에 박수라도 쳐주자. 19일 밤 11시20분이다. 그에게 박수칠 시간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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