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른바 ‘박연차 리스트’라 불리던 것이 이제는 ‘노무현 게이트’가 되어버렸다. 박연차 태광실업 회장에 대한 수사가 이제는 노무현 전 대통령이 박 회장으로부터 얼마를 받았는가에 초점이 맞춰지고 있다는 뜻일 테다.

언론매체를 통해 전해지는 검찰 ‘관계자’의 말을 들어보면 검찰에서는 600만 달러의 최종 종착지가 노무현 전 대통령이라는 것을 확신하고 있고, 그것을 검증하는 작업들을 하고 있다고 보인다. 그리고 매일매일 새로운 소식들이 검찰발로 보도되고 있다.

가장 최근 신문에서는 노무현 전 대통령의 아들 건호씨가 대주주인 투자사 ‘엘리쉬&파트너스’가 박연차 회장의 돈 250만 달러 중 일부를 인터넷 서비스업체 등 국내 기업 2곳에 투자한 사실을 확인하고 수사중이라는 기사가 떴다. 그리고 건호씨가 투자한 국내사에 노 전 대통령의 부인 권양숙씨의 동생 기문씨가 투자한 사실도 확인했다고 한다.

▲ 4월 16일 동아일보 6면 기사.
그렇게 오늘도 신문은 600만 달러가 노무현 대통령에게로 흘러들어간 ‘정황’이란 퍼즐 조각들을 열심히 수집하는 중이다.

그런데 이것들이 굉장히 복잡하다. 워낙에 등장인물도 많고, 박연차 회장과 노무현 전 대통령 측의 말이 서로 다르고, 600만 달러의 돈의 흐름도 얽혀있는 것처럼 보이고, 이를 보도하는 언론에서는 매일매일 새로운 사실이라며 앞다퉈 검찰 관계자의 말을 인용하면서 추측기사를 써대고 있으니 그 진실이 무엇인지도 헷갈린다.

그런데 의외로 이 문제는 간단했다.

검찰의 말을 들어보면 박연차 회장은 총 600만 달러를 노무현 전 대통령에게 전달했다라고 진술했다고 한다. 여기에서부터 진실찾기에 들어가보자.

500만 달러의 진실은?

▲ 4월 13일자 동아일보 3면 기사.
먼저 덩치가 큰 500만 달러의 사실관계를 확인해 보면 이렇다. 박연차 회장은 노무현 전 대통령 퇴임 이틀 전인 2008년 2월 22일 500만 달러를 노 전 대통령의 조카사위인 연철호씨가 설립한 창업투자회사 ‘타나도 인베스트먼트’로 송금했다. 이것은 명백한 사실이다. 계좌의 추적을 통해서 확인된 부분이다.

그런데 문제는 이를 두고 박연차 회장은 노무현 전 대통령에게 준 것이라고, 노무현 전 대통령도 이를 알고 있었다고 ‘주장’하고 있고, 노무현 전 대통령은 퇴임 이후에 이 사실을 알았고 순수한 투자금이었으며 실제 투자가 이뤄졌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 둘 사이에 서로 다른 ‘주장’을 하고 있는 셈이다.

이 500만 달러를 두고 검찰은 계좌추적을 통해 돈이 노무현 전 대통령에게 들어간 단서들을 열심히 찾는 중이다. 그러고 나서 ‘박연차 리스트’이든 ‘노무현 게이트’이든, 문제가 복잡해졌다. 500만 달러 중 일부가 노무현 전 대통령의 아들 건호씨가 대주주로 있는 회사로 들어갔다는 것이다.

그리고 지금까지 검찰수사를 통해 나온 계좌 흐름 정황을 보아하니, 연철호씨가 설립한 ‘타나도 인베스트먼트’ 투자회사에서 건호씨가 대주주로 있는 ‘엘리쉬&파트너스’라는 곳에 투자가 있었다는 것, 그리고 그 ‘엘리쉬&파트너스’라는 곳에서 국내 기업 2곳에 투자를 했다는 것, 또한 알고 봤더니 투자된 국내 기업 중 한 곳은 권양숙씨의 동생 기문씨가 투자를 하기도 했다는 정도다. 이것으로 노무현 전 대통령이 받았다고 볼 수 있을까?


100만 달러의 진실은?

100만 달러의 사실관계도 확인해 보면 이렇다. 박연차 회장은 2007년 6월 말 100만 달러가 든 가방을 정승영 정산개발 사장을 통해 청와대에서 정상문 전 청와대 총무비서관에게 전달했다. 이것은 사실이다. 정상문 전 비서관도 100만 달러가 든 가방을 받은 것은 인정했다.

그런데 갈리는 지점은 또 여기에 있다. 박연차 회장은 이것을 “노무현 전 대통령에게 건넨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고, 노무현 전 대통령 측은 “권양숙 여사가 받은 것”이며 노무현 전 대통령은 이 사실을 나중에 알았다고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검찰은 또다시 이 100만 달러가 어떻게 쓰였는지를 열심히 추적하고 있다. 노무현 전 대통령 측에서는 채무변제에 사용했다고 주장했지만 검찰은 이 돈이 노 전 대통령의 아들 건호씨에게 건네졌을 것이란 확신을 가지고 수사하고 있다. 그러고 나서 이 또한 ‘박연차 리스트’이든 ‘노무현 게이트’이든, 문제가 복잡해졌다. “돈을 건넸다”는 것을 전제로 한 수사는 ‘누가’, ‘언제’, ‘어디서’, ‘무엇을’, ‘어떻게’, ‘왜’가 따라와줘야 하기 때문이다.

▲ 4월 11일 동아일보 3면 기사.
검찰은 그럴 것 같다는 ‘정황’에 매달리고 있다. 때는 2007년 6월 30일 평창 동계올림픽 유치 지원차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총회가 열리는 과테말라로 출국했을 당시. 노 전 대통령은 7박 8일 일정으로 과테말라를 다녀오는 길에 미국 시애틀과 하와이에 들러 현지 교포와 간담회를 가졌다고 한다.

여기에서 검찰이 의혹을 가진 것은 시애틀에서 1박 2일 머무는 동안 노 전 대통령 부부의 공식일정이 오후 4시 간담회 하나밖에 없었다는 점이다. 간담회가 끝난 뒤 다음날 오전 9시 50분 경 시애틀을 떠날 때까지 공식 행사가 없어 최소한 16시간 동안 일정이 없었다는 것인데, 이때 건호씨를 접촉했을 가능성을 보고 있다.

그리고 ‘왜’라는 물음에 있어서는 건호씨의 미국 유학시절의 호화로운 생활을 들고 있다. 스탠퍼드대 인근 마운틴뷰 지역 주택 단지의 2층집에 살았다는 둥, 폴크스바겐 투아렉과 현대 그랜저TG 2대가 여기에서 나온 것이다. 또한 이것으로 노무현 전 대통령이 받았다고 볼 수 있을까?

그러나 문제는 의외로 간단하다

박연차 회장과 노무현 전 대통령 사이의 돈거래가 굉장히 복잡하게 보인다. 그러나 문제는 의외로 간단하다. 왜냐하면 박연차 리스트 수사에서 달라진 것이 없으니 말이다. 단지 ‘정황’이 그럴 것 같다는 것이 덧붙여지고 있을 뿐. 그리고 그 정황들에 대해서 언론에서도 끊임없이 ‘그럴 것이다’로 가고 있는 중이다. 중요한 것은 ‘정황’이 아니다.

‘정황’이 아니라 현재 드러난 ‘사실’에 의하면 노무현 전 대통령이 직접 받은 돈은 ‘없다’다. 계좌흐름상 500만 달러는 연철호씨가 받았고, 정상문 전 총무비서관도 100만 달러는 권양숙씨에게 전달했다고 진술했고, 권양숙씨 역시 그렇다고 수긍했다.

그렇다고 봤을 때, 남은 것은 다시 노무현 전 대통령이 600만 달러가 오간 것을 언제 알았느냐 하는 것이다. 이는 박연차 회장의 돈이 노무현 대통령 측으로 흘러들어갔다는 기사가 나올 때부터 중요한 문제였고 지금도 마찬가지다. 정확하게 이야기하면 이 부분에서 박연차 회장과 노무현 전 대통령 사이의 주장이 갈리고 있는 것이다.

‘노무현게이트’라며 언제나 이 사건과 관련해 선제적으로 기사를 쓰고 있는 동아일보의 3월 31일자 기사에서도 “돈은 노 전 대통령 퇴임 직전 건네진 것으로 알려졌지만 노 전 대통령이 그 사실을 언제 알았는지에 따라 ‘거액이 전달됐다’는 사실은 해프닝이 될 수도 있고 범죄가 될 수도 있다”라고 실었다.

▲ 3월 31일 동아일보 3면 기사.
“600만 달러의 최종목적지는 노무현 전 대통령”이라는 확신에 찬 검찰수사는 오히려 온갖 ‘정황’들만을 양산하고 있을 뿐 ‘진실’에는 다가가지 못하고 있다. 정상문 전 총무비서관이 알았다면 노무현 전 대통령도 알았을 것이고, 배우자인데 권양숙씨가 박연차 회장에게 돈을 받았다는 사실을 노무현 전 대통령이 모르지 않았을 것이며, 아들 노건호씨가 대주주로 있는 ‘엘리쉬&파트너스’에 박연차 회장의 500달러 중 일부가 들어갔다는 것은 곧 노무현 전 대통령이 돈을 받은 것이나 마찬가지다라는 논리만이 나올 뿐이다.

언론보도에 의하면 2007년 8월 서울 S호텔에서 박연차 회장과 강금원 창신섬유 회장, 정상문 전 비서관 등 3명이 만나 노무현 전 대통령이 퇴임 후 재단에 필요한 자금에 대해 논의했다고 한다. 이곳에서 박 회장이 50억원을 낼 수 있다며, 홍콩 계좌에서 500만 달러를 건네겠다는 뜻을 밝혔으나 강 회장은 명의가 분명하지 않은 돈을 받을 수 없다며 이를 거절했다고 한다.

다시 검찰은 여기에 주목하고 있다. 500만 달러라는 ‘금액’이 일치하고 연철호씨에게 건네진 금액의 계좌가 ‘홍콩계좌’였다는 ‘정황’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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