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년만의 폭염에도 에어컨을 켜지 못하고 모셔둬야 하는 심정. 날씨 때문에 덥고, 정책 때문에 열불 나는 여름이다. 올림픽마저도 더위에 지쳐 시들할 정도다. 이럴 때는 밤이 돼도 잠을 들 수가 없다. 깬 것도 아니고 잠든 것도 아닌 좀비 상태로 멍하니 티비를 주시하게 되는데, 그나마 <해피투게더>가 마련한 걸그룹 특집에 냉커피 한 잔 마신 정도의 시원함을 느낄 수 있었다.

KBS 2TV <해피투게더3> '끝까지 살아남아라 <예능행>' 특집

데뷔 10년차 소녀시대 써니부터 EXID 솔지, 여자친구 예린, 라붐의 솔빈, 멜로디데이 차희 그리고 요즘 KBS가 애정하는 구구단의 세정까지 여섯 명의 걸그룹 멤버들이 <해피투게더>를 찾았다. 그런데 조합이 영 이상했다. 써니의 말처럼 10년차 걸그룹 멤버인 써니와 데뷔 1개월 된 세정이 나란히 앉은 그림은 도무지 콘셉트를 이해하기 어려웠다.

예상컨대, 이번 <해피투게더> 녹화는 상당히 길었을 것이다. 그나마 유재석이 여섯 명의 걸그룹 멤버들을 특성과 입장에 맞춰서 특유의 진행 실력을 보였으니, 망정이지 자칫하면 역대급 망작이 될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 원인은 다른 때와 달리 이번에는 여섯 걸그룹 멤버들을 하나로 묶는 콘셉트가 부재했단 점에 있다.

KBS 2TV <해피투게더3> '끝까지 살아남아라 <예능행>' 특집

그럴 때 아주 쉽게 가져다 쓰는 것이 아이돌의 예능 적응 훈련이다. 요즘 폭발적인 화제를 몰고 있는 영화 <부산행>을 패러디에 예능행이라는 타이틀을 붙였지만 지난 특집들과 달리 뭔가 성긴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특히 많이 어린 걸그룹 멤버들 사이에서 써니와 솔지가 포지션을 정하기가 난감했을 것이다. 동갑이지만 교류가 없던 두 사람은 서로 친해질 기회를 갖지도 못한 채 어색한 표정들이었다.

그럼에도 아직 그룹 인지도를 쌓지 못한 멜로디데이 차희, 라붐 솔빈 그리고 구구단의 세정 등은 필사적이었다. 반면 요즘 트와이스와 쌍벽을 이루며 2016년의 완전 대세로 등극한 여자친구 예린은 무척이나 조심스럽고 소극적인 모습이어서 큰 대조를 이루었다.

KBS 2TV <해피투게더3> '끝까지 살아남아라 <예능행>' 특집

일단은 라붐의 솔빈이 가장 적극적이었다. 하나도 힘든 개인기를 무려 11개씩이나 준비해왔다면서 기상천외한 성대모사를 선보여 가장 확실한 웃음을 주었던 점이 인상에 남는다. 그런가 하면 이번에 출연한 여섯 명 중에서 가장 인지도가 떨어지는 편인 멜로디데이 차희 같은 경우에는 개인기도, 소위 말하는 예능 MSG도 능숙치 않는 모습이 계속되면서 그것이 캐릭터로 잡혀 오히려 기억에 더 강하게 남았다.

그렇게 식상하더라도 걸그룹 멤버들의 예능 경쟁까지만 했으면 괜찮았을 것이다. 예능 꿀팁을 준다면서 뜬금없이 엠씨의 질문에 리모컨 버튼을 누르라고 했다. 질문도 참 식상했다. 비밀연애를 한 적이 있는지, 다른 멤버들 질투한 적이 있는지다. 도대체 비밀연애 경험이나, 다른 멤버에 대한 질투가 어떻게 예능 꿀팁이 된다는 것인지 납득할 수가 없었다.

KBS 2TV <해피투게더3> '끝까지 살아남아라 <예능행>' 특집

그렇게 맥락 없이 우왕좌왕했음에도 녹화 분량이 부족했던지 마지막에는 뜬금없이 여섯 명에게 소녀시대 Gee 안무를 시켜놓고는 틀리면 물총을 쏘아댔다. 나름 쟁반노래방에서 착안한 것이기는 하지만 재미도 없었고, 괜히 걸그룹들을 괴롭히는 이상한 아저씨들로만 비쳤다.

그동안 몇 번 <해피투게더>는 걸그룹 멤버들로 소소한 재미를 봤었다. 그러나 그때는 분명 전체적인 맥락이 존재했다. 그럼에도 걸그룹들이 열심히 예능하는 모습은 상큼하고 시원했지만 뒷맛이 개운치만은 못했다. <해피투게더> 제작진은 알아야 할 것이다. 걸그룹은 만능이 아니다. 또한 뭐든 시켜도 되는 것도 아니다. <본분올림픽>의 교훈을 잊지 말기 바란다.

매스 미디어랑 같이 보고 달리 말하기. 매일 물 한 바가지씩 마당에 붓는 마음으로 티비와 씨름하고 있다. ‘탁발의 티비 읽기’ http://artofdie.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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